광주 인디 음악 라이브바 체험기
광주는 겉으로 보기엔 잔잔한 도시다. 전일빌딩 245의 긴 그림자, 금남로의 느리게 흐르는 버스, 주말마다 무등산 자락으로 몰리는 등산객. 그런데 후문 골목 하나만 틀면 공기가 바뀐다. 기타 픽 다운 스트로크가 철문 사이로 새어 나오고, 낡은 네온 간판이 미세하게 깜박인다. 광주의 인디 음악은 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자란다. 그 숨은 자리들을 몇 해에 걸쳐 드나들다 보니, 도시가 음악을 품는 방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글은 특정 장소를 홍보하려고 쓰는 안내문이 아니다. 나와 친구들이 밤을 떼우고, 귀를 맡기고, 때로는 조용히 뒤로 물러나 있던 장면들의 모음이다. 공연장 냄새, 앰프의 성격, 바텐더의 손놀림, 그리고 무대와 객석 사이에 떠다니는 기운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옮겨 보겠다.
골목과 계단, 그리고 문 앞의 공기
광주의 라이브바 주소는 대부분 간단하다. 문제는 마지막 50미터다. 가로등이 드문 골목에서 휴대폰 화면이 자동으로 어두워지고, 건물 벽면의 포스터가 새로운 순서로 덧붙여져 있다. 시멘트를 덮은 낡은 계단이 시작되면, 그때부터는 소리가 안내판 역할을 한다. 킥 드럼이 콘크리트로 전달되어 올라오고, 하이햇은 철제 난간을 통해 고음으로 퍼진다. 문 앞에 서면 망설이게 된다. 오늘 첫 팀의 곡이 이미 흘러나오고 있거나, 사운드체크 중 테스터의 목소리가 끊어진다. 이 한 장의 문을 넘는 데 필요한 용기는 대단한 성격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냥 문고리를 잡고 밀어 넣는 습관, 그뿐이다.
처음 문을 연 날은 비가 아주 약하게 왔다. 기온은 초여름, 실내 온도는 체감상 몇 도 더 높았다. 무대가 낮고 조명이 직설적이라서, 베이스 헤드의 적색 LED가 객석에 그대로 박혔다. 벽에는 손바닥만 한 페달보드 순정 스티커와 낡은 셔츠가 걸려 있었고, 바는 L자 형태로 10명 남짓 붙을 수 있었다. 나이대는 스물 초반부터 마흔 언저리까지 섞여 있었는데, 서로를 모르는 표정이 더 많았다. 그게 이런 공간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특정한 유대가 없어도 음악이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같은 방향을 보게 된다.
첫 곡의 세팅, 마지막 곡의 정리
인디 라이브바의 밤은 처음 30분 동안 성패가 갈린다. 사운드 엔지니어가 있는 곳도 있고, 밴드가 직접 믹스를 만지는 곳도 있다. 좁은 공간일수록 저역의 정리가 어렵다. 보컬이 먹히지 않도록 250 Hz 근방을 비워 줘야 하는데, 그걸 정확히 하는 곳은 많지 않다. 어떤 날은 오히려 무대 앞보다 뒤쪽 기둥 옆이 더 선명하게 들린다. 베이스 포트가 벽을 때리고 돌아오는 경로 덕에 생기는 달콤한 자리다. 몇 번 온 손님들은 그 지점을 알고 눈치껏 비집고 들어간다.
한 번은 록 트리오가 첫 곡을 시작하자마자 킥이 과도하게 부풀었다. 기타가 소리를 줄여도 보컬이 개선되지 않았다. 드러머가 두 번째 곡 들어가기 전에 직접 킥 마이크를 조금 빼고, 스네어 톱 마이크 앵글을 조정했다. 셋째 곡부터 귀가 열렸다. 당시 뒷바퀴처럼 도는 리프가 있어 노트북 메모장에 BPM을 찍어 놨다. 156에서 약간 빠르게 밀고 당겼다. 그 밤이 기억나는 건, 마지막 곡이 끝났을 때 드러머가 조용히 마이크를 잡고, 조용히 마신 사람들에게도 고맙다고 했기 때문이다. 가볍게 던지는 멘트였지만, 공간이 작을수록 말의 무게가 늘어난다.
정리의 태도도 공연을 완성한다. 앙코르 이후 무대 조명이 켜지고 나면, 베이시스트가 케이블을 여유 있게 감고, 보컬이 바닥에 떨어진 드럼 스틱 팁을 주워 바 앞에 올려 놓는다. 클럽이 스스로 존재하지 않듯, 공연도 혼자 유지되지 않는다. 관객이 의자를 들어 비켜 주는 것, 바텐더가 물잔을 다시 놓는 것까지 합쳐져 하나의 밤이 끝난다.
바의 손놀림과 컵의 채도
라이브바에서 음료는 단순히 목을 축이는 용도가 아니다. 입 안의 온도와 점성이 사운드를 듣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적당히 달고 산뜻한 음료는 고역의 자극을 둥글게 만들어 주고, 상대적으로 드라이한 술은 리듬의 분할을 또렷하게 만든다. 광주에서 인상적이었던 바는 이 차이를 이해하고 있었다. 술을 많이 팔려는 태도가 아니라, 공연의 흐름을 무너뜨리지 않는 방향으로 권하는 느낌이었다.
사과향이 나는 하이볼을 추천받은 날, 첫 팀의 템포가 120 근방에서 출렁이던 박자였는데, 꽤 잘 어울렸다. 탄산이 혀를 치고 빠지면 기타의 딜레이 테일이 짧게 들렸다. 반대로 진한 라거를 마셨던 밤에는 드론 성향의 신스 팝 팀이 나왔고, 긴 서스테인과 바닥에서 올라오는 저역이 어색하지 않았다. 바텐더에게 요즘 어떤 팀이 자주 오느냐 물으면, 의외로 대답이 단순하다. 어제도 신인 팀이 나왔고,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렇다고. 그게 지역 라이브씬의 기본 구조다. 현장은 새로울 수밖에 없고, 바는 그 새로움을 안정적으로 흘려보내는 배관의 역할을 한다.
컵의 채도도 미묘한 차이를 만든다. 불투명한 머그에 담긴 차보다 얇은 글라스에 담긴 탄산이 조명 반사를 더 잘 잡아준다. 무대 오른쪽 조명에서 튀는 하이라이트가 컵 표면을 타고 움직이고, 그게 곡의 전개와 이상하게 맞아떨어질 때가 있다. 이런 작은 상관관계가 반복되면, 그 공간에 대한 몸의 기억이 생긴다.
목요일과 토요일, 그리고 비오는 날
요일에 따라 라이브바의 공기가 달라진다. 목요일은 음악을 들으러 온 사람들이 많다. 소리가 크더라도 대체로 말 수가 적고, 공연 사이의 인터미션에도 크게 떠들지 않는다. 토요일은 친구와 함께 온 손님이 많다. 팀이 셋 이상 나오면 첫 팀, 둘째 팀 사이에서 객석이 크게 한번 돌고, 그 다음부터는 무대가 관객의 에너지를 다시 끌어 모아야 한다. 이건 어느 도시나 비슷한데, 광주는 토요일의 중반부가 특히 분기점이다. 이유를 딱 집기는 어렵지만, 아마 이동 동선이 넓지 않은 탓일 것이다. 다른 놀거리가 가까운 곳에 모여 있어 금방 빠졌다 다시 들어오는 흐름이 잦다. 팀이 초반에 에너지를 다 쓰면 후반에 손해를 본다.
비 오는 날은 드럼 사운드가 좋아진다. 습도가 적당히 올라가면 탑과 바텀의 컨택이 부드러워지고, 심벌의 하이가 덜 날카롭게 들린다. 반면 기타 스트링은 손가락에 더 걸리고, 튜닝이 쉽게 풀린다. 어떤 기타리스트는 이런 날 얇은 피크를 쓰거나 디스토션 게인을 조금 낮춘다. 한 번은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는 금요일 밤, 네 곡째에서 기타가 갑자기 플랫하게 주저앉았는데, 보컬이 바로 키보드를 꺼내어 세 곡을 건반 중심으로 바꿔 이어갔다. 관객은 흔들리지 않았다. 작은 공간에서의 유연함이란 이런 것이다. 정해진 세트리스트가 있어도 현장에 맞춰 바꾸는 팀이 결국 기억에 남는다.
셋리스트의 호흡, 지역성과 장르의 교차
광주 인디씬은 장르가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다. 같은 밤에 슈게이징 밴드와 포크 듀오가 나란히 설 때가 있다. 겉보기엔 어울리지 않을 조합이지만, 듣는 순서가 맞으면 관객의 귀가 자연스럽게 조정된다. 거친 디스토션의 잔향 위에 담백한 어쿠스틱이 이어질 때 느껴지는 차분함, 반대로 서정의 여운을 시끄러운 리프가 밀어낼 때 생기는 해방감. 운영자가 순서를 고민한다는 용인오피 느낌은 자주 받는다. 좋은 밤은 대개 이렇게 흐른다. 첫 팀이 공간의 한계를 테스트하고, 둘째 팀이 그 속도에 여백을 더한다. 마지막 팀은 둘을 묶어 자리를 마무리한다.
지역성은 가사에서 더 강하게 드러난다. 무등산, 충장로, 양림동, 첨단, 이런 지명이 뜬금없이 튕겨 들어올 때가 있다. 관객이 미소를 짓는 건, 그 장소를 공유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집어 들고, 같은 빗소리를 들었던 계절이 겹치기 때문이다. 한 밴드는 광천터미널을 이야기하며 8비트 드럼머신을 깔았다. 웃음이 났다. 서울의 한복판에서도, 부산의 바닷가에서도 들을 수 있는 편곡인데, 광주의 터미널을 통과하는 시간감각은 다르다. 이런 지점이 지역 인디의 매력이다. 장르의 근본은 보편적인 언어 속에서, 구체적인 삶의 감각으로 나온다.
사진과 기록, 그리고 기억의 오류
인디 공연을 다니며 사진을 찍는 일은 늘 애매하다. 이 공간의 공기는 플래시를 싫어한다. 그렇다고 고감도만 믿고 셔터를 눌렀다가는, 곡의 강약을 놓치고 노이즈만 남는다. 공연 내내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귀로만 들을 때보다 집중이 풀린다. 길게 찍을수록 남는 건 오히려 애매한 이미지들이다. 그래서 나는 한 팀 당 최대 세 장만 찍는다. 첫 곡 도입부, 중간의 정지 동작, 마지막 곡 피날레에서 한 장씩. 현장에서의 감정선을 깨지 않은 채 기록을 남기는 타협안이다.
기억은 어차피 틀린다. 이틀 전 공연이 어젯밤처럼 다가오고, 한 달 전 밤의 냄새가 갑자기 떠오른다. 누가 몇 번째 곡에서 어떤 코드를 쳤는지, 무엇을 말했는지 정확히 맞추기 어렵다. 하지만 틀린 기억이 공연의 의미를 무너뜨리진 않는다. 오히려 왜곡이 있어야 다시 보러 간다. 이 밤을 어떻게 기억하고 싶은가, 하는 기대가 다음 방문을 부른다. 공연이 끝나고 담배 냄새가 희미하게 남은 공기를 지나 밖으로 나오면, 비슷한 질문이 따라온다. 오늘의 소리를 내일의 나로 어떻게 옮길 것인가. 완벽한 답은 없지만, 그 과정 자체가 라이브바를 다시 찾게 만드는 동력이다.
대화의 규칙, 침묵의 기술
작은 공간에서의 대화는 기술에 가깝다. 곡 사이의 정적은 음악의 일부다. 무의식적으로 컵을 내려놓는 소리가 마이크에 잡히고, 옆자리의 웃음이 리버브에 실린다. 이때 필요한 건 과한 예의가 아니라 적절한 타이밍 감각이다. 곡의 꼬리를 듣고 박수를 먼저 시작해 줄 사람, 셋업 중의 미세한 피드백을 스태프에게 손짓으로 알려 줄 사람, 무대 앞에서 휴대폰 화면 밝기를 낮출 줄 아는 사람. 이런 작은 손짓들이 공연을 살린다. 누가 알려 주지 않지만, 자주 오다 보면 자연스럽게 배운다. 공간의 규칙은 규정집이 아니라 관찰의 축적에서 나온다.
침묵은 연주자에게도 중요하다. 간주에서 한 박자를 더 쉬고 들어가는 용기, 손을 떼고 가만히 서 있는 믿음. 작은 무대일수록 몸의 미세한 움직임이 크게 보인다. 솔로가 끝나고 언뜻 미소를 보였다가 바로 표정이 풀리는 지점, 조명이 바뀌는 순간 짧게 목을 푸는 동작. 이런 사이사이가 리듬을 만든다. 관객은 그 빈틈에서 숨을 고른다. 어느 밤에는 보컬이 가사를 잊고 반마디 정도를 비웠는데, 기타가 소리를 줄이며 뒷박만 살려 받쳐 줬다. 아무 일도 아닌 듯 다음 구절로 넘어갔다. 그 몇 초의 침묵이 그 팀을 나에게 각인시켰다.
입장료와 가격, 그리고 돈의 방향
광주의 인디 라이브바 입장료는 대체로 합리적이다. 팀 수에 따라 10,000원에서 20,000원 사이가 많고, 드링크 바우처가 포함되기도 한다. 카드 결제 비율이 높지만, 현금을 선호하는 공간도 여전히 있다. 중요한 건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가다. 작은 클럽의 구조는 단순하지 않다. 방음 보수, 장비 유지, 임대료, 인건비, 공연 홍보, 지역 행정 절차까지 골고루 손이 간다. 입장료가 모두 연주자에게 가는 구조는 드물고, 보통은 일정 비율이 클럽 운영에 남는다. 어느 쪽이 옳다는 정답은 없다. 지속이 목표라면, 각자의 몫을 명확히 하고 투명하게 공지해야 한다. 몇몇 곳은 SNS에 분배율을 주기적으로 공개한다. 신뢰는 작은 분모에서 나온다.
드링크 가격은 서울보다 약간 낮거나 비슷하다. 기본 칵테일이 만 원 전후, 생맥주는 5천에서 7천, 논알코올 옵션도 늘고 있다. 공연 도중 과음을 자제하도록 안내하는 문구를 붙인 곳이 있는데, 첫 방문 때는 조금 과해 보였다. 그러나 몇 번 들러 보면 그 이유를 안다. 작은 공간에서의 과음은 다른 사람의 청취권을 쉽게 침해한다. 술은 공연의 소스가 아니라 조미료다. 그렇게 봐야 서로 편하다.
새로운 팀을 찾는 방법과 실전 동선
처음 방문하는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건, 무엇을 들어야 할지 고르는 일이다. 네 이름의 팀이 포스터에 나열돼 있고, 장르 설명은 추상적일 때가 많다. 나는 두 가지 기준을 쓴다. 첫째, 셋 순서의 가운데 팀을 기준점으로 삼는다. 운영자가 가운데에 배치하는 팀은 대개 그날의 결을 결정한다. 둘째, 리허설 영상보다 라이브 포스터의 패턴을 본다. 최근 3개월 동안 이름이 꾸준히 올라온 팀은 무대 체력이 있다. 반대로 드문드문 등장하는 팀은 신선한 변수를 가져온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손해는 없다. 다만 귀의 피로도를 생각하면, 장르가 가까운 밤과 대비되는 밤을 번갈아 다녀 보는 게 좋다.
공간 이동의 동선은 짧게 잡는 게 정답이다. 택시로 10분 이내, 도보 20분 이내. 공연이 길어질수록 머리가 맑을 때 걸어 나올 수 있는 거리를 선호한다. 귀가 집에 돌아와서도 울릴 때가 있는데, 그때 15분 정도 산책이 도움이 된다. 빗물 소리나 차 소리가 귀의 잔향을 정리해 준다. 광주에서는 충장로와 금남로 사이를 걸을 때가 많다. 간판과 가게 불빛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길, 늦은 시간에도 안전한 동선. 이런 환경은 늦게까지 공연을 운영하는 데 중요한 조건이다.
연주자의 장비, 공간의 개성
광주 라이브바의 장비는 대체로 실용적이다. 최고급은 아니어도 손이 잘 타고 청소가 잘 된 느낌. 드럼은 펀치가 살아 있는 중저가 쉘에 적당한 댐핑을 해 둔 곳이 많다. 스네어의 텐션이 타이트하게 유지되는지는 그날 컨디션을 가르는 분기점이다. 기타 앰프는 핫 로드 계열과 브리티시 계열 하나씩이 기본 구성이었다. 둘 사이의 성격 차이를 이해하고 스왑할 수 있는 공간이면, 밴드의 폭이 넓어진다. 베이스는 다이렉트 박스의 퀄리티가 전체 사운드를 좌우한다. 좋은 DI 하나가 값비싼 헤드를 대신한다. 보컬 마이크는 SM58류가 기본인데, 컨덴서나 베타 계열로 바꾸는 순간 공간의 노이즈가 같이 올라온다. 그래서 대체로 다이내믹으로 간다.
무대의 높이는 낮은 편이 좋다. 관객과 눈높이가 맞으면, 박수의 타이밍이 맞춰진다. 조명은 과하지 않은 색 두세 개로 충분하다. 요란한 무빙라이트가 있는 곳보다, 고정 조명을 잘 배치한 클럽이 음악을 더 잘 듣게 한다. 바닥이 콘크리트인지 목재인지도 중요하다. 콘크리트는 저역이 단단하고, 목재는 따뜻하다. 밴드와 공간의 궁합을 보려면, 첫 곡의 킥과 베이스 라인이 바닥을 어떻게 타고 흐르는지 귀를 기울여 보면 된다.
관객과 연대, 그리고 팬의 탄생
지역 인디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관객의 반복 출석이다. 같은 얼굴을 다른 밤에 다시 본다. 서로 이름을 모른 채 고개만 까딱 인사하는 사이가 된다. 이 느슨한 연대가 팀을 버틴다. 상시 팬덤이 아닌, 공연을 중심으로 잠깐 생겼다가 흩어지는 응집력이 반복된다. 그 주기가 길면 팀이 지역을 넘어간다. 광주의 팀들 중 몇몇은 소셜에서 영상보다 공연 공지를 먼저 올린다. 이건 의도적인 선택이다. 현장을 먼저 채우고, 기록물은 다음으로 미루는 방식. 팬의 탄생은 스트리밍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시작된다. 기타 솔로의 첫 마디에서 전기가 살짝 끊겼다가 다시 붙는 순간, 보컬이 관객의 호응을 한 박자 늦게 받아 웃음이 터지는 순간. 이 친밀감이 스트리밍 숫자보다 오래간다.
실패의 밤과 수습의 기술
항상 좋은 밤만 있는 건 아니다. 모니터가 고장 나 보컬이 자기 목소리를 못 듣고, 드럼의 플로어 탐 러그가 미끄러져 타이밍이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럴 때 중요한 건, 멈출 용기와 이어 갈 기술이다. 어느 듀오는 두 번째 곡에서 신스가 먹통이 되는 바람에, 완전히 어쿠스틱으로 바꿔 버렸다. 관객은 처음 30초간 당황했다가, 금방 호응했다. 반대로 억지로 원래 계획을 밀어붙이려다 공연 전체가 흔들린 팀도 있다. 작을수록 전환은 빨라야 한다. 포기하는 게 아니라, 그 순간 가능한 최선의 무대를 선택하는 일이다.
실패의 밤이 남기는 것도 있다. 그날 이후로 그 팀은 장비 체크리스트를 공개했다. 전원 어댑터 여분, 패치 케이블 두 개, 튜너 배터리, 드럼 러그 테이프. 여기에 추가로 사운드체크 시간 이전에 각 곡의 초반 15초를 순서대로 짧게 돌려 보는 루틴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 루틴을 아는 관객은 사운드체크도 공연의 일부처럼 듣는다. 완벽을 기대하기보다, 준비의 디테일에 감탄한다.
먼 곳에서 온 팀과의 교환
가끔 타지역 팀이 광주로 내려온다. 이럴 때의 공기는 살짝 들뜬다. 지역 팀이 오프닝을 맡고, 외부 팀이 메인을 잡는다. 서로 다른 악기 줄의 굵기, 이펙트 지향, 무대 멘트의 템포가 대비를 만든다. 외부 팀은 대개 물량에서 앞선다. 장비가 꼼꼼하고, 라이팅 큐가 정확하다. 그러나 지역 팀이 가진 홈그라운드의 힘은 가사와 호흡에서 나온다. 어떤 밤에는 메인 팀이 완벽에 가까운 연주를 들려주고, 오프닝 팀이 마지막에 한 곡을 함께하며 객석을 깨운다. 그날의 주인공은 누구였냐는 질문이 무의미해진다. 교환이 발생하면, 모두가 얻는다. 같은 밤을 지나고 나면, 다음 주에 지역 팀의 관객이 늘어난다. 그게 순환이다.
귀의 피로, 몸의 신호, 그리고 다음 날의 일상
두 세트 이상을 집중해서 들으면, 귀가 쉽게 지친다. 특히 작은 공간의 중고역은 에너지가 쌓인다. 가끔은 곡 사이마다 물을 조금씩 마시고, 바깥에 나가 2분 정도 숨을 고른다. 장시간 서 있는 발바닥의 피로도도 무시하면 안 된다. 딱딱한 바닥에서는 한 시간 반이 넘으면 체감이 크게 올라간다. 그럴 때는 뒤로 살짝 물러나 벽에 등을 기대고 들어도 된다. 공연이 청각만의 행위가 아니라, 몸 전체의 균형을 요구한다는 걸 몇 번만 경험하면 알게 된다.
다음 날의 일상이 공연의 완성을 책임진다. 아침에 일어나 귀에서 약한 울림이 남아 있어도, 놀라지 마라. 대체로 반나절 내에 사라진다. 커피를 바로 과하게 마시기보다 물을 먼저 마시는 게 낫다. 전날 밤 들었던 멜로디가 머리에 맴돌면, 억지로 지우려 하지 말고 가볍게 흥얼거려 주면 된다. 이렇게 한 번 걸러진 멜로디는 의외로 오래 남는다. 그게 장기적인 팬이 되는 첫 단계이기도 하다.
음악을 중심으로 한 도시 읽기
라이브바를 다니다 보면, 도시의 지도가 달라진다. 점이 생기고, 그 점 사이에 선이 그어진다. 버스 노선은 목적지를 기준으로 다시 외워진다. 이 거리의 밤은 길고, 어떤 밤은 예상보다 빠르게 끝난다. 광주의 인디씬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넓지 않다. 그렇다고 작지도 않다. 정확히는 면적보다 깊이가 있는 쪽이다. 같은 공간을 반복해서 방문할수록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어느 날은 록이 공간을 차지하고, 어느 날은 포크가 숨을 넣는다. 같은 벽, 같은 바, 같은 무대인데, 조합에 따라 결과는 다르다. 그 변수가 이 도시의 리듬을 만든다.
라이브바의 밤이 도시를 바꾸는 방식은 소란스럽지 않다. 공연 하나가 끝나고, 쓰레기 봉투가 채워지고, 포스터가 한 장 더 붙는다. 다음 주의 일정이 올라오고, 그중 하나를 고른다. 이렇게 작은 반복이 쌓이면, 한 계절의 풍경이 완성된다. 광주에서 음악을 듣는 일은 그 반복을 상냥하게 받아들이는 일에 가깝다. 새날의 새 소리가 항상 특별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 소리가 어제와 다른 이유를 귀가 알아차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초행자를 위한 짧은 체크리스트
현금 소량과 카드 모두 준비. 일부 공간은 현금 할인이나 현장 결제만 가능할 때가 있다. 이어플러그를 챙기되, 너무 강한 차음은 피하라. 소리를 죽이지 않고 피로만 줄이는 타입이 좋다. 도착은 표시된 시작 시간보다 10분 일찍. 첫 팀의 첫 곡이 공연의 기준점을 만든다. 휴대폰 화면 밝기 최소, 촬영은 짧고 정중하게. 세 장 원칙을 추천한다. 귀가 동선은 가까운 거리로. 도보 15분은 머리를 식히기에 적당하다.
다시 그 문을 열기까지
한동안 같은 공간을 반복해서 갔다. 바텐더는 내 취향을 어렴풋이 알았고, 나는 그 바의 사운드 성격을 익혔다. 주말마다 새 포스터가 올라오고, 거기에 손글씨로 추가된 팀 이름을 보면, 어느 정도의 기대가 생겼다. 간혹 포스터가 뜯겨 나가거나 비에 젖어 글씨가 번지는 날도 있다. 그럴 때 오히려 밤이 좋았다. 정해진 것보다 우연이 더 많은 밤, 계획보다 발견이 많은 밤. 광주의 인디 음악 라이브바는 그런 밤을 여전히 만들어 낸다. 큰 무대의 완벽함과 다른 종류의 만족. 관객이 무대를 만들고, 무대가 관객을 만든다. 그 상호작용을 믿는 한, 다음 주에도 나는 그 문을 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