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아......!"

밀어붙여진 욕망이 파고들어 왔다. 깊숙이 삽입된 그것은 여전히 크고 뜨거웠지만, 다인은 전부 받아들이고 싶어졌다. 더 깊숙이.

제29화

5장. 소박맞은 신랑의 분노 (6)

"으음......."

은룡의 입술에서도 참는 듯한 숨결이 새어 나왔다. 한층 부드러워진 내부가 뿌리까지 그의 욕망을 삼켜 갔다. 다인은 쾌락에 발갛게 물든 은룡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보듬자 은룡이 다인의 손을 쥐고 그녀의 손바닥에 뺨을 문질렀다. 전부 집어삼키고 싶었다.

다인의 손바닥에 입을 맞추며 은룡은 허리를 밀어붙였다. 이미 깊고 은밀한 곳까지 도달한 선단이 한층 그곳을 압박하며 꿈틀거렸다. 다인의 입술에서 신음이 흘러나오는 것에 신경을 기울이며 은룡은 움직였다.

"앗! 아아......."

쾌락으로 가득 찬 숨결이 사랑스러워서 미칠 것 같았다. 은룡은 그 자신이 다인을 몰아세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으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흐아, 읏....... 응음......으읏....... 아앗......!"

젖은 속살이 파들거리며 페니스에 달라붙어 왔다. 꿀처럼 흐른 애액이 다인의 엉덩이를 타고 질척질척하게 흘렀다. 은룡은 뜨거운 키스를 퍼부으며 다인을 부둥켜안았다. 멈춰지지 않는 추삽에 다인은 숨을 삼키며 음란하게 꿈틀거렸다.

"아아, 앗....... 하아아아앙......!"

마침내 절정에 이르자 다인의 몸이 은룡의 팔 안에 축 늘어졌다. 은룡은 한발 늦게 절정을 맛보며 욕정이 식지 않은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방금 그녀를 안았음에도 갈증이 느껴졌다. 한 번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다인......."

속삭이자 다인이 젖은 눈망울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은룡은 입을 맞추며 비비적거리듯 반쯤 빠져나왔던 페니스를 다시 밀어 넣었다.

"흐읏......."

떨리는 입술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의 품속에 갇힌 다인이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오늘은 아직 다인을 풀어 줄 생각이 없었다. 은룡은 탐욕스러운 눈길로 다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단단한 팔 안에 갇힌 부드러운 여체를 탐하며 쾌락을 위해 움직였다.

두 사람의 시간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잠이 든 후에도 은룡은 다인을 놓아주지 않았다. 서로의 몸이 밀착될 정도로 강하게 끌어안겨져 다인은 숨을 삼켰다. 그녀가 몸을 비틀 때마다 빠져나가려 한다고 생각했는지 은룡은 더 세게 끌어안았다.

'지금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는 사실은 기억나지 않는 거야?'

다인은 달아오른 뺨을 은룡의 가슴에 기댄 채로 꼬무락거렸다. 한참 품에 안겨 있으면 팔이 서서히 느슨해졌지만 움직이면 다시 끌어당겨졌다.

'다인.......'

애원하듯 자신의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가 생각났다.

혹시...... 설마...... 아닐까. 다인은 한숨을 흘리며 단단한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숨결이 은룡의 피부를 간지럽혔지만 자신만의 고민에 빠진 다인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도 상대는 용이잖아. 내가 물어본 것만으로 전부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누가 만난 지 일주일도 안 되는 사람하고 결혼하느냐고.'

애초에 다인은 결혼을 생각해 본 일도 없었다. 자신의 앞가림하는 데만 급급해서 연애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월세 내고 학자금 대출 갚고 생활비 아끼고......, 그 피눈물 나는 상황에 겨우 연애 한 번 했던 것도 쓰리기만 했고. 그래서 연애는 조금 뒤로 미뤄 두고 돈을 모으고 경력을 쌓자고 생각했다. 이렇게 하루아침에 잘릴 줄 모르고.

'그치. 내가 이럴 때가 아니었어. 회사 잘렸는데.......'

은룡이 생활비를 대주겠다고는 했지만, 그에게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그는 떠나갈 테고, 다인은 스스로의 생활을 영위해 가야 했다.

'다시 구직 활동이라니......, 너무 싫어.'

불구덩이라도 좋으니 그냥 은룡에게 시집가 버릴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시 서류를 작성하고 면접 볼 생각을 하니 피가 마른다. 특히 면접을 보면서 느꼈던 모멸감을 떠올리자 저절로 우울해졌다.

"......왜 그러지?"

머리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다인은 화들짝 놀랐다. 반사적으로 품을 빠져나가려고 하자 은룡이 다인을 다시 침상에 눕혔다.

"앗."

시선이 마주 닿을 위치에 자리 잡고는 다시 끌어안았다. 은룡의 단단한 몸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할 참이라 다인은 고개를 돌렸다.

"이, 이제 깼잖아요......."

'그러니 놔줘요.' 하는 말은 차마 못한 채로 다인은 뺨을 물들였다. 은룡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한 팔로 다인을 끌어안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달아오른 피부의 감촉이 손끝에 묻어나는 듯했다.

"네 숨결이 간지러워서 깼다."

그 말이 왜인지 네가 날 흥분시켰다는 말처럼 들려서 다인은 부끄러워졌다.

"그, 그건 안 놓아주시니까......!"

"놔주면 달아났겠지."

"안 그래?" 하고 속삭이며 다인의 뺨에 입 맞췄다. 어느 틈엔가 다인에게 애정 표현하는 것이 익숙해졌지만, 은룡은 그것을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었다.

동요하는 것은 다인 쪽이었다. 같이 있으면 쉽게 품에 안기고 만져지고......, 그 외의 것들을 하게 되지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이렇게 애지중지해지는 느낌은 익숙해지기 쉽지 않다. 그녀는 이미 다 자라 버린 어른이었으니까. 평생 받아 본 적 없는 취급이니 당연했다.

"배, 배고프지 않으세요?"

생각해 보니 닷새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홍주를 마셨지만, 그걸로 허기가 사라진다는 건 은룡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배고픈가?"

그제야 은룡이 팔을 풀고 몸을 일으켰다. 다인은 허둥지둥 빠져나가려다가 뒤에서 끌어안겨졌다.

"이대로 있어도 된다."

은룡의 시선을 쫓아 방을 보니 어느새 방 안에 미닫이문이 보였다. 문 틈새로 안개가 흘러드는 듯싶더니 스르륵 문이 열렸다.

'우와아아앗!'

옅은 복숭앗빛의 의복을 걸친 시녀들이 음식을 날라 오고 있었다. 다인은 당황하여 덮고 있던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감췄다.

'쪽팔려!'

맹세코 다인의 집 안에 저런 사람들은 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보고도 못 본 척하는 듯한 얼굴로 침상에 가까운 탁자 위에 음식을 가득 차려 놓았다. 그들은 은룡을 향해 조용히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 다인은 멱살을 잡을 듯한 기세로 은룡을 돌아보았다.

"저, 저 사람들 뭐예요?!!"

"사역인형이라는 거다. 내 궁으로 가면 궁인들의 시중을 받을 수 있을 테지만, 여기서는 네가 불편할 것 같아 인형을 썼다."

"인형....... 방금 그 사람들이 인형이라고요?"

특징이라고는 없는 얼굴은 유달리 기억에 남지 않았다. 기억에 남는 것은 차라리 그 옷차림일 것이다.

"배고프다 하지 않았나?"

이불을 젖히고 은룡이 다인을 안아 들 것처럼 다가왔다. 다인은 제가 벌거벗은 것을 의식하고 당황했다.

"어젯밤에 이어 낮에도 무리를 시켰으니 걷기 힘들 거다. 내가 시중을 들어 주지."

아니, 필요 없거든요! 목욕 시중 들겠다고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부담스러워!!!

그러나 은룡이 하겠다고 들면 거부할 재간이 없다는 사실을 다인은 이미 알고 있었다. 거기다가 은룡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 상태로라면 갓 태어난 새끼사슴처럼 와들와들 다리를 떨게 될 것 같았다.

'으으으~, 다 은룡 때문인데!'

탓해 봤자 자신이 바라는 방식으로 반응이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절대로.


아파트에 하나둘씩 불이 들어왔다. 고층이었으나 상당히 낡은 아파트였다. 시기에 맞춰 페인트칠을 새로 하지 않아서 다 떨어진 페인트가 흉물스러웠다.

"이런 곳에서 살고 있었나......."

용왕의 신부가 살기엔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다. 천룡은 찌푸리며 다인과 은룡이 머무르고 있는 아파트의 베란다를 노려보았다. 그는 용왕이기에 같은 용왕인 은룡이 다인과 같이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혼사가 틀어졌을 텐데.'

여전히 같이 있었다.

시룡은 혼사가 틀어졌다는 사실만 알려 주고 그 이유를 다른 용왕들에게 알리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물을 먹은 것은 은룡이었으므로 다른 네 용왕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실인 건 맞았다. 문제는 그 은룡이 아직 신부 후보와 같이 있다는 데에 있었다. 처음에는 해치려는 것인가 싶어 주의를 기울였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괜한 걸음을 한 게 아닌가.'

애초에 신부의 마음이 은룡에게 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눈으로 직접 목격했으니까. 그래서 혼사가 틀어졌다는 소식을 알려 와서 놀랐다.

다인은 모처럼의 신부였다. 수십여 년마다 용족의 누군가 혼례를 치른다는 건 알았지만, 신부가 될 수 있는 인간 여자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저 스치는 것에 불과한 만남이었으나 퍽 마음에 남았다. 그 눈길이며 자태가. 그래서 쉬이 포기하지 못했던 거였다.

'흥. 신부의 마음이 굳은 거라면 참견할 필요는 없겠지.'

돌아서며 천룡은 힐끗 다른 용왕이 도사리고 있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기회를 노리고 있던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천룡이야 신부의 의사를 존중할 작정이지만, 다른 용왕들은 글쎄......?

'쓸데없는 폭풍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좋으련만.'

용끼리 싸움이 붙으면 가볍게는 폭풍을 불러일으키고 더 나아가면 지진 해일은 물론, 그 투기가 지상에도 미쳐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천룡은 가볍게 고개를 젓고는 어둠 속에 녹아들듯 사라졌다.

제30화

6장. 납치된 신부 (1)

"역시 불경기......."

다인은 일상적인 메일만 가득한 것을 보고 좌절했다. 스무 곳 이상의 회사에 이력서를 보냈음에도 아직 한 군데서도 연락이 없었다.

'은룡은 아직 장아찌 누름돌처럼 버티고 있고.......'

급한 대로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대량의 인력이 쏟아지는 시기. 바로 대학가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다인은 하필이면 이 시기에 맞춰서 회사에서 잘린 제 불운을 원망했다.

용 축제 자체가 여름의 비수기를 극복하려는 온천 도시의 노력이었다. 용 축제 전의 행사로 여의주를 훔쳐 오는 의식을 치르고 있었으니......, 이 시기의 퇴직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게 다!'

분노를 담아 다인은 원흉 은룡을 노려보았다. 여의주를 훔쳐서 빠져나와 회사에 복귀하기까지 아슬아슬하게 세이프였는데. 그걸 굳이 아웃으로 몰아낸 것은 은룡이었다.

"간지러운 시선이 느껴지는데."

나른하게 웃으며 은룡이 물어 왔다. 그 모습이 또 바람직하게 섹시하셔서 다인은 뺨을 물들이며 홱 고개를 돌렸다.

"아닙니다!"

그러나 은룡은 이미 먹잇감을 포착한 상태였다. 어젯밤에도 그 전날 밤에도, 그 전날에는 낮에도 실컷 탐식해 놓고 뭐가 더 남았는지 다인의 곁으로 다가와 착 달라붙어 왔다. 뒤에서 끌어안고는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간지럽힌다. 다인은 은룡의 품에서 몸을 꼬며 한숨을 쉬었다.

"아닌 거야말로 아니잖아. 말해 봐. 왜 그러지?"

"으......, 재취직 때문에요."

"생활비는 내가 준다고 했잖아."

그런 문제가 아니옵니다만. 본인을 곁에 두고 네가 날 차 버렸을 때를 대비한다고 말할 수는 없어서 다인은 머뭇거렸다.

"......생활비 안 받아도 되니까 나가시라면요?"

"약속했을 텐데. 매일 목욕 시중을 들게 해 주겠다고. 시중을 들려면 네 곁에 있어야 해."

"그, 그때는 정신없어서 말한 거지! 평생이라고는......, 하읏!"

목덜미를 가볍게 깨물려 다인은 화들짝 놀랐다. 은룡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더 강하게 품으로 끌어안겨졌다.

"약속은 약속이야."

"아......."

옷 위로 가슴을 만지기 시작하는 것에 다인은 당황했다. 은룡의 길고 우아한 손가락이 셔츠 단추를 풀며 다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네가 나와 혼례를 치르든 아니든지 간에, 나는 네 곁에 있을 거다."

"힉......."

브래지어를 밀어 올리고 맨살에 닿는 손가락이 능숙하게 가슴을 어루만졌다. 나머지 한 손이 내려오며 바지의 버클을 풀었다. 다인은 홧홧해진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 안 돼요....... 아침에도 해 놓고......."

"부족해."

귀에 숨을 불어넣듯 속삭여 다인은 몸을 움츠렸다. 허리가 들어 올려지며 바지가 무릎 아래로 끌어내려졌다. 속옷째로 바지를 벗겨 버리는 은룡에 다인은 당황한 듯 돌아보았다. 키스하려는 듯 다가오는 은룡의 입술에 머뭇거리는데, 띠롱 하고 알림이 울렸다.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니 메일이 도착했다는 표시가 떠 있었다. 다인은 은룡의 얼굴을 밀어내고 마우스를 잡았다. 마우스 포인트가 메일을 클릭하자 서류 전형에 통과했다는 문구와 면접 날짜와 시간 등이 나타났다.

"아, 내일?!"

옷이며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당황하며 몸을 돌리는데 은룡과 딱 눈이 마주쳤다. 헉.

"......."

착각은 아니겠지? 은룡의 몸에서 새카만 오라가 마구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다인은 식은땀을 흘리며 슬슬 엉덩이를 뺐다.

"저기....... 내, 내일이 면접이라......."

"그렇군."

잘생긴 눈썹을 치켜 올리며 은룡이 서늘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자못 사악하고 심술궂어 보여서 위기감마저 느껴졌다.

"저, 며, 면접 준비해야 해서....... 으앗?!"

급하게 바지를 추켜올리며 자리를 피하려던 다인은 바지가 무릎에 걸려 엎어지고 말았다. 팬티를 허리까지 끌어올리지 못했기에 엉덩이며 그 밖의 곳들이 은룡의 시선 아래에 드러났다.

'으아아악!'

돌아볼 것도 없이 다인의 엉덩이로 은룡의 시선이 꽂혔다. 당황하여 주춤주춤 돌아보는 다인을 은룡은 놀리는 듯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이건...... 새로운 형태의 유혹인가?"

"아, 아니......, 히익!?"

다인의 허리를 잡은 은룡이 허벅지까지 올라온 바지를 다시 끌어내렸다. 동시에 다인의 비부로 얼굴을 묻어 다인은 펄쩍 뛰어올랐다.

"안 돼......!"

"안 되는 건 여기다."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하며 은룡이 혀를 내밀었다. 갈라진 틈을 훑어 내리는 혀 놀림에 다인은 새빨갛게 물들었다.

"아앙....... 은룡...... 님......, 아앗......."

"이렇게 나를 유혹해 놓고 무사하리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바지와 팬티가 한꺼번에 발목을 빠져나갔다. 완전히 바지에서 풀린 다인의 다리를 쥐고 벌리며 은룡은 갈라진 틈새로 혀를 밀어 넣었다.

"아흐응......, 싫어......, 시간이......, 아앙......."

"지금은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다."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마. 속삭이며 은룡은 부드럽게 은밀한 곳의 입구로 파고들어 왔다. 점막을 맛보는 혀 놀림에 녹아내릴 것 같았다.

'안 되는데.......'

엉덩이만 들어 올려 애무받는 이런 체위도 부끄러웠지만, 정말로 면접을 준비해야 했다. 이러다가는 이전에 다니던 회사 꼴이 날 것이 분명했다.

"앗, 안 돼....... 아아앗?!"

정말로 뿌리치고 일어서려는데, 혀가 격렬하게 핥아대기 시작했다. 빳빳하게 세워 마치 범하듯 젖은 내벽을 탐하자 다인은 휘청거리며 방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하으......앙....... 싫어....... 그렇게 아앗......!"

"너는 정말로 이걸 좋아하는군."

흡족한 듯 웃으며 은룡은 애액에 젖은 꽃술을 만지작거렸다. 심술궂은 손놀림으로 뾰족하게 젖은 꽃눈을 문지르자 찌르르한 자극이 퍼져 나갔다. 움찔움찔 엉덩이를 떠는 다인의 허리를 한 손으로 잡은 채 쪽쪽거리며 핥아댔다.

"힉....... 흐윽...... 아흐흑......."

이대로 절정을 느껴 버리면 그 틈에 삽입될 게 분명했다. 그 이후로는 은룡의 뜻대로 휘둘릴 것을 알기에 다인은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했다. 그러나.......

'기분 좋아.......'

"흐으......으응....... 아흐앙....... 아앙......."

민감한 곳을 핥아질 때마다 온몸이 녹아 버릴 것 같았다. 퍼져 나가는 달콤한 열락에 손끝까지 야릇하게 울렸다. 은룡은 다인이 참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듯 짓궂게 웃었다.

"그래. 뒤로 미룰수록 감미로운 법이지."

"흐아아!"

깊숙이 혀를 묻어 혀로는 닿지 않는 곳을 핥으려는 듯 맹렬하게 빨아댔다. 다인이 견딜 수 없는 듯 표정을 흐리며 헐떡였다. 그 틈에 은룡은 애액에 흠뻑 젖은 꽃눈을 미끈미끈하게 비비고 튕기며 괴롭혔다.

"히익, 읏! 아앗, 앙대......, 앙대엣....... 아아아아아......!"

참지 못하고 도달한 다인이 엉덩이를 격렬하게 튕겼다. 은룡은 야릇하게 웃으며 혀를 뽑고는 벌름벌름 수축하는 비부를 들여다보았다. 젖은 속살의 안쪽까지 씰룩대며 도달하는 모습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음란했다.

"하아....... 아아......."

도달한 여운으로 축 늘어진 다인을 내려놓았다. 은룡은 급하게 옷을 벗고는 다인의 엉덩이를 다시 들어 올리게 했다.

"이젠 내 차례다."

뜨겁게 속삭이며 은룡은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아직까지도 파들파들 떨리는 속살로 페니스를 삽입하자 "헉." 하는 신음성이 다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내일 면접을 보는 시간 전에는 놓아주지."

그것도 많이 봐줬다는 투였다. 신음하던 다인이 돌아보자 은룡이 곧바로 허리를 세웠다. "아앙." 하고 교성을 울리는 다인의 엉덩이를 붙잡고 푸욱푹 찔러 든다.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일주일 내내 이렇게 있어도 좋다."

"그런 법이......, 흐아아앙!"

밀어붙여 오는 은룡에게 안겨 다인은 내내 시달렸다.


'내가....... 반드시 너. 쫓아내고 만다!'

미용실은커녕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 것도 간신히 끝냈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남아 있는 정장 중에서도 가장 좋은 옷이었다. 요즘 은룡이 툭하면 다인의 옷을 찢으려고 그래서 남아 있는 옷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었다.

"이다인 씨."

사무실에서 나온 직원이 명단을 보고 이름을 불렀다. 새로 뽑을 직원은 2명뿐이고, 서류 전형에 합격한 이는 모두 6명이었다.

여러 명을 한꺼번에 면접하지 않고 한 명씩 불러내어 압박 면접을 보려는 모양이다.

다인은 제 차례가 되자 벌떡 일어났다. 벌써부터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애써 다리에 힘을 주어 씩씩하게 사무실로 들어갔다.


'전에 있던 회사에서 퇴직하게 된 이유가 뭡니까?'

면접을 보았던 회사 빌딩에서 나와 다인은 터덜터덜 걸어갔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가야 했다.

'제대로 대답했는지 모르겠네.'

'애인이 침실 밖으로 내보내 주지 않아서 무단결근으로 잘렸습니다.'가 정직한 대답일 테지만, 그런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뽑지 말아 달라는 소리와 진배없는데.

'내 성실한 회사 생활을 위해서도 은룡 님을 내보내기는 해야겠는데.'

말로는 안 나갈 것 같았다. 지은 죄가 있으니 매몰차게 대하기도 어렵고. 어물쩍 넘기다 보니 침상을 같이 쓰는 나날도 점점 길어지고.......

'무엇보다 내가 은룡 님한테 익숙해지고 있다는 게 제일 문제야.'

오늘도 아침부터 목욕 시중을 받았다. 삽입하지는 않았지만, 그 품에 안겨 손길을 받으며 두 차례나 절정을 느꼈다.

'돌아가면 또 그러겠지.'

기분은 좋지만 계속될 수 없는 관계였다. 같이 지내는 나날이 길어지니 이 사람(?) 무해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살짝 들고.

'아냐아냐! 완전 유해해! 내가 회사 잘린 게 누구 때문인데! 지금도 무릎이 후들거리고.......'

회사도 잘렸겠다, 여행 간다는 핑계를 대고 훌쩍 떠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 한 달 정도 지방을 돌다가 돌아오면 은룡도 포기하지 않을까?

문제는 다인의 얄팍하기 짝이 없는 지갑과 가벼운 통장 잔고였다. 앞으로 재취직이 될 때까지의 기간을 생각해 돈을 아껴야 한다는 사실까지.

"으으......."

다인은 소심한 인간이었다. 필요할 때는 대범하게 나서는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그랬다. 그녀는 평생을 풍족하게 살아 본 역사가 없었다. 머리를 식히려, 혹은 휴식 기간을 가지려 배낭 하나를 달랑 짊어지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은 죄다 남의 일이었다.

'도시하고 마을은 살리고 나는 죽는구나. 차라리 마을 이장한테 찾아가서 사기 친 것에 대한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해 봐?!'

아득바득 이를 갈며 억울함을 생각하던 다인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앞서 걷던 사람이 걸음을 멈추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리 사람이 많지 않던 통행 길에 드문드문 걷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멈춰져 있다. 제자리에 멈춰 선 것이 아니라, 어딘가로 이동하든가 기다리던 모습 그대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모두 멈춰 서 있었다.

제31화

6장. 납치된 신부 (2)

"어?"

다인은 눈을 깜박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나만 움직이는 거야?'

석상처럼 멈춰 선 사람들 사이로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다인은 그것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렸다. 그가 사람들 사이로 걸어오고 있었다.

음. 뭔지 몰라도 엄청 강한가 보네. 이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멈출 수 있는 도술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 범상치 않은 자가 분명했다.

다인은 자신이 별달리 특별할 게 없다는 걸 알기에 자신만 움직이는 이유를 눈치챘다. 지금 다가오는 저 사람의 목적이 다인인 것이다.

'튀자.'

홱, 등을 돌린 다인은 내달렸다. 두 번 생각하지도 않았다. 다인을 향해 다가오던 누군가가 당황하는 듯한 기색이 느껴졌으나 돌아보지도 않았다.

알 게 뭐람? 그녀 인생에 특이한 존재는 은룡으로 충분했다. 이미 차고 넘치니까 더 접근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다인은 쌩하니 달아났다.


기가 흐트러졌어.

매일 밤, 제 품에 안고 녹아내릴 때까지 탐한 여인이다. 그녀의 목덜미에 각인을 남기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반려의 계약을 맺으면 그녀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계약 전에는 마땅한 수단이 없어 다인의 목에 제 기운을 불어넣어 각인을 새겼다. 문제는 용왕의 각인을, 다른 용왕이 지울 수 있다는 데에 있었다.

은룡은 각인으로 다인이 어디에 있고 어떤 상태인지 대략적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다만 너무 가까이에서 살피면 다인이 싫어할까 봐 거리를 두고 있을 뿐이다.

'무슨 일이지?'

한낮에 다인이 두려움을 느끼고 급히 이동해야 할 만한 상황. 그녀는 분명 사람이 많이 다니는 대로로 움직이고 있었다.

시룡이 은룡과 다인의 혼례가 틀어졌다는 사실을 다른 용왕에게 알릴 것이라 들었다. 그들이 다인에게 접근할 거라는 것쯤은 예상할 수 있었다.

누구냐? 그가 분노로 몸을 굳히는 것만으로도 하늘이 일그러졌다. 푸른빛이 완연하던 여름의 하늘이 찌푸려지며 잿빛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은룡 님."

은룡의 가신이 질겁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용궁에 인터넷 전용 광케이블을 까는 문제로 불러들인 자였다.

"신부를...... 데리러 가야겠다."


멈춰 있던 사람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인을 제외한 모두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태평한 얼굴로 거리를 걷는다. 다인을 지나쳤다. 무작정 반대 방향으로 달리던 다인은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도 쫓아오고 있나? 언뜻 금빛으로 빛나는 무언가를 살짝 본 것도 같았지만......, 모르겠다.

바쁘게 걸음을 옮기던 다인은 문득 누군가와 부딪혔다. 화들짝 놀라며 쳐다보자 어깨를 잡혔다.

"......왜 그렇게 놀라."

잔잔한 목소리가 차분하게 울렸다.

짙은 회색의 머리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다인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상대의 이름을 떠올렸다.

"용연...... 님."

무표정했던 그의 얼굴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비쳤다.

"기억하고 있네......."

"네?"

"내 이름." 하며 다인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다인의 어깨 너머로 눈길을 주었다.

"왜...... 돌아봐?"

느릿한 어조로 용연이 물어 왔다.

다인은 아까 사람들을 멈추게 한 것이 용연인가 아닌가를 두고 고민했다. 만약 그라고 한다면 시치미를 떼고 있다는 건데. 용연이 그렇게 거짓말에 능숙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아까. 사람들이 전부 멈췄었어요."

"알아......." 하며 시선을 내려 다인을 바라보았다.

"나도 그래서 왔어."

네가 여기 있을 것 같았으니까. 뒷말을 삼키며 용연은 가만히 다인을 바라보았다. 다인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얼굴이었다.

"요, 용연 님이 하신 건가요?"

"......."

용연은 고개를 저었다. 다른 용의 힘이 미친 거였다. 용연이 판단하기로 제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힘을 쓰는 이는 모였던 다섯 용왕 중에서도 딱 두 사람뿐이었다.

흑룡이나 진룡. 흑룡은 쉬이 그럴 것이라 예상되는 인물이었지만, 진룡은 좀 달랐다. 겉으로는 친절해 보이는 얼굴을 보이면서 속은 새카맣다. 둘 중 어느 쪽일까?

"아니....... 세 사람인가?"

성큼 앞으로 걸음을 내디딘 용연이 다인을 제 뒤로 숨겼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비구름이 몰려들며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기 시작했다. 하늘을 저리 물들이며 나타나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도 급했던 모양이다.

쿠르르릉! 하늘이 용의 기운에 반응하여 울부짖었다.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내려올 듯한 기색에 사람들이 허둥지둥 가던 걸음을 서둘렀다.

용연은 다인이 왔던 방향으로 누군가를 발견한 듯 시선을 두었다.

"......진룡."

용왕으로서의 복장 그대로인 용연과는 달리 진룡은 사람들 틈에 섞여도 위화감이 없을 모습이었다. 맞춘 것이 분명한 고급 슈트 차림에 햇살을 녹여 만든 듯한 금발과 푸른빛이 선연한 벽안이 기이하게도 잘 어울렸다. 꼭 인간인 것같이.

"용연."

화사한 웃음을 띤 아름다운 얼굴과는 달리 그의 푸른 눈동자는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왜 여기에 있지?"

그 말은 꼭 왜 방해를 하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내가 원하니까." 하며 용연이 힐끗 자신의 뒤에 감춘 다인을 바라보았다.

소년 같은 용모와는 달리 훤칠하게 큰 용연의 등에 가려 다인은 누가 나타났는지도 볼 수 없었다. 다만 진룡이라는 용연의 말을 듣고 그가 나타났구나 싶었을 뿐이다.

순간 용연도 진룡도 흠칫 하늘을 보았다. 바싹 날을 세운 그들의 모습에 다인이 겁먹을 찰나, 진룡이 중얼거렸다.

"빨리도......."

쿠르릉! 콰광! 굵은 뇌광이 하늘에서부터 일직선으로 꽂혔다. 새하얀 빛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선명한 푸른 불꽃에 진룡이 흠칫 두어 걸음 물러섰다.

"은룡......."

신음하는 듯한 쓰린 목소리로 진룡이 중얼거렸다.

번쩍이는 불빛이 가신 자리에는 은룡이 서 있었다. 얼어붙을 듯한 눈빛으로 진룡을 노려보고는 용연이 있는 방향을, 정확히는 그의 뒤에 숨어 있는 다인을 보았다.

"......."

가라앉은 눈으로 은룡을 보는 용연의 시선과, 만지면 베일 듯한 은룡의 시선이 뒤엉켰다. 용연은 물러나지 않고 힐끗 다인을 돌아보았다. 은룡은 용연이 다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불쾌한 듯 성큼성큼 다가왔다.

'앗.'

은룡이다. 안심하며 용연의 등 뒤에서 나가려던 찰나 용연의 품에 안겼다. 그가 손바닥으로 다인의 얼굴을 감싸자 다인은 순식간에 정신을 잃었다. 늘어진 다인을 한 팔로 안은 채 용연은 은룡을 쳐다보았다.

은룡도 용연을 보았다. 서늘한 푸른 눈동자에게 불꽃이 튀었다.

"용연."

분노에 찬 목소리에 대기가 쩌르릉 울렸다. 이미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두 방울씩 투둑 하고 떨어지기 시작한 빗방울에 모두가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도망쳤다. 세 용왕과 다인의 위로도 비가 쏟아졌으나 빗방울이 무형의 막에 부딪힌 것처럼 좌우로 미끄러졌다.

"......나도 그녀와 얘기하고 싶어."

고저가 없는 낮은 목소리로 용연이 답했다. 진룡은 힐끗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한 은룡의 뒷모습을 훔쳐보았다. 그의 전신에서 푸른빛이 도는 은빛의 기가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내 여인이다."

"혼례는 틀어졌잖아......? 그녀가 답한 거라 생각해."

"대답을 원했다면......."

분노에 찬 눈길이 정신을 잃고 늘어진 다인에게로 향했다.

"그녀를 잠재우지 않았겠지. 다인을 놓아줘."

이미 인내심에 한계가 온 듯 은룡이 성큼성큼 다가가기 시작했다. 용연은 고개를 저으며 다인을 양팔로 끌어안았다. 그의 몸에서 암회색의 빛무리가 퍼져 나오며 이마로 뿔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너희들......, 여긴 시가지야."

짜증스레 물러서며 진룡이 말했다. 그러나 이미 용연도 은룡도 그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진룡의 시선은 그들보다도 용연의 품에 안긴 다인에게로 향했다.

"멍청한! 신부가 다쳐도 괜찮은 건가?!"

차가운 일갈에 은룡이 흠칫 진룡을 보고 다시 다인을 보았다. 용연 또한 사랑스러운 것을 보듯 다인을 바라보았다.

"......다치게 하지 않아."

용연이 다인을 놓으며 그녀의 몸을 허공에 띄웠다. 그녀의 등 뒤로 화려하게 채색된 가마가 나타나더니, 다인의 몸이 가마가 있는 방향으로 끌려갔다.

"다인을 내려놔!!"

달려드는 은룡의 몸이 은청색의 비늘로 감싸였다. 반듯한 이마로 용의 뿔이 솟아나며 내뻗은 손끝으로 날카로운 손톱이 돋아났다.

다인을 가마에 옮긴 용연이 은룡과 맞부딪쳤다. 암회색의 비늘이 순식간에 그의 온몸을 덮었다. 두 용이 뒤엉키며 긴장된 공기 중으로 뇌전이 튀어 올랐다.

"용연, 은룡!! 그만둬!"

진룡이 고함을 질렀지만 두 용은 멈추지 않았다. 서로에게 달라붙어 이빨을 드러내고 서로를 물어뜯었다. 비늘로 뒤덮인 두 용의 몸이 희게 빛나며 크기를 늘리기 시작했다. 현신하려는 모습에 진룡은 이를 악물며 다인을 태운 가마를 쳐다보았다.

이 와중에도 가마는 둥실 떠올라 구름 위로 날아가고 있었다. 방향은 분명 용연의 용궁이 있는 쪽이었다.

"어리석은......!"

실체를 드러내는 와중에도 은룡의 시선은 다인을 태운 가마로 향하고 있었다. 진룡의 말대로 시가지에서 싸움을 벌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은룡은 용연을 끌어안고 하늘 높은 곳으로 날아올랐다.

"젠장."

진룡 또한 허공에 몸을 띄우며 자신의 가신들을 불렀다. 훌쩍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것만으로도 목격자가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나기를 피해 카페나 건물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그들을 촬영하고 있었다.

【용연과 은룡을 촬영한 인간이 있다. 처리해.】

【네. 폐.......】

대답을 다 듣기도 전에 진룡은 구름 위로 날아올랐다.

쿠르릉! 쾅!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두 용이 뒤엉켜 싸움을 벌이는 것만으로도 사방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뇌전이 튀어 올랐다.

제32화

6장. 납치된 신부 (3)

'어디에.......'

진룡은 그들 너머에서 흔들리고 있는 작은 가마를 발견했다. 용연의 용궁으로 날아가는 것을 은룡이 막았는지, 가마는 더는 이동하지 못한 채로 허공에서 이리저리 회전하고 있었다.

'이런!'

다인은 저 안에 정신을 잃은 채로 쓰러져 있을 것이다. 가마가 저 정도로 흔들린다면 그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은 어떤 상태인지 걱정스러웠다.

진룡은 당장 가마가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으나, 두 용왕이 부딪칠 때마다 대기가 진동하며 사방으로 묵직한 기운이 날아왔다. 진룡 또한 현신하면 그 기운을 받아 내지 못할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처럼 연약한(?) 모습을 하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이 멍청이들이......!"

애가 타는 눈길로 진룡은 무형의 기운에 부딪혀 다시 날아가는 가마를 쳐다보았다. 이 힘의 파동 사이에서 가마는 용케 부서지지 않고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가마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튕겨지고 있음에도 그 안은 고요했다. 그 안에 고인 용연의 힘이 쿠션처럼 다인의 몸을 받쳐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서로 싸우는 와중에도 다인이 탄 가마가 그 영향을 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진정한 최선은 두 용이 싸움을 멈추는 것이었지만.

'어?'

밀려오는 힘의 파동에 가마 안까지 저릿하게 울렸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끌어올린 다인은 어두운 가마 안임을 깨닫고 화들짝 놀랐다.

'뭐, 뭐야? 여기 어디야?'

방이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좁고 그녀가 아는 가마보다는 훨씬 넓었다. 다인은 주저앉은 채로 주위를 돌아보다가 창문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쿠르르르릉!!

"꺄악!"

건물 안에서 저 높은 하늘에서 울리는 천둥을 듣는 것과는 달랐다. 바로 곁에서 울리는 엄청난 굉음에 다인은 화들짝 놀라며 귀를 틀어막았다.


【다인!!】

싸우는 와중에도 은룡은 다인이 비명을 지르는 걸 알았다. 용연도 그를 눈치채고 흠칫 제가 기운을 불어넣은 것이 잘못되었나 당황했다. 서로를 뿌리치고 가마로 달려드는 것을 다시 뒤엉켜 물어뜯었다.

거칠고 억센 발톱이 강철보다도 단단한 비늘을 뚫고 은룡의 옆구리를 찢어 놓았다. 은룡 또한 크게 포효하며 용연의 목줄기로 이빨을 박았다.

크아아아아아아! 하늘을 뒤흔드는 울부짖음에 진룡은 어느 정도의 피해를 각오하고 가마를 향해 날아갔다. 가마에 달려 있는 작은 창문이 열리며 반가운 얼굴이 밖을 내다보는 것이 보였다.

"흐윽......."

놀란 다인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용의 울음소리가 구분이 되지 않아 누가 다친 것인가 불안했다. 그래서 기어이 두려움을 누르고 창밖을 확인한 거였다.

'너무 크고.......'

무서웠다.

은룡이 용이라는 것을 알고 경계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어렴풋한 마음으로 그를 인간처럼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용이었다. 호랑이나 사자 따위는 한입에 집어삼켜 으적으적 씹어 먹을 수 있는, 하늘과 땅을 아우르고 도시 한두 개쯤은 가볍게 쓸어버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용연의 목을 부러트리려 고개를 흔들던 은룡도 그 시선을 느꼈다. 푸른 눈동자가 움직여 허공에 떠 있는 가마를 보았다. 다인이 창문을 통해 저를 지켜보고 있음을 눈치챘다.

【다인.......】

그 얼굴에 떠오른 두려움에 은룡의 가슴도 내려앉았다. 그녀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보일 것인가. 나는 그녀에게 있어...... 괴물에 지나지 않는가?

주춤거리는 그 틈을 용연은 놓치지 않았다. 단숨에 은룡의 이빨을 뿌리치고 은룡의 목에 제 이빨을 박아 넣었다. 몸부림치는 두 용의 상처에서 피가 후드득 떨어지며 금세 서로의 몸을 붉게 물들였다.

"아......, 안 돼!"

죽을 것 같다. 마음이 급해진 다인은 제가 하늘 높은 곳에 떠올라 있음도 생각지 못했다. 허둥지둥 가마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휘청, 밖으로 떨어지려는 그녀의 허리를 누군가 홱 붙잡아 끌어올렸다. 놀란 다인이 몸부림치며 그를 돌아보았다.

"위험합니다."

진룡이었다. 상냥한 미소를 달고 있었지만, 긴장된 기색을 완전히 숨기지 못했다. 다인은 진룡의 팔에 안긴 채로 추락하는 두 용을 바라보았다. 구름을 뚫고 그 아래로 떨어질 기세였다.

"은룡......!"

다인의 시선과 손끝이 은룡을 향하자 진룡이 당황한 낯빛으로 다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미 진룡은 안중에도 없었다.

파즈즈즈즈!! 구름 위로 황금빛 빛무리가 길게 찢어지더니 공간의 틈새가 벌어졌다. 검게 소용돌이치는 내부에 진룡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룡 님."

공간의 틈새는 순식간에 떨어지는 두 용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상처가 맞물리듯 천천히 공간의 입구가 좁아져 갔다.

"......지금 들어가지 않으면 한동안 못 보는데."

장난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시룡이 두 사람의 높이까지 날아왔다. 다인은 생전 처음 보는 용보다도 은룡이 더 중요했다.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은룡 님은요?!"

"도시 한복판이든 위든 아래든 용끼리는 싸워서는 안 돼. 둘은 그걸 어겼으니 한동안 이공간에 가둬 둘 생각이야."

빙글빙글 웃으며 시룡은 황금색 눈동자로 다인을 응시했다.

"쫓아가려면 지금뿐인데. 보내 줄까?"

다인은 눈을 깜박였다. 한순간 무서울 정도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그러나 그 생각들 속에서도 마음은 한결같았다. 단 한 가지 마음이 수많은 상념과 고민을 쓸어버렸다.

"보......, 보내 주세요."

"다인!"

놀란 진룡이 굳은 얼굴로 다인을 보았다. 그러고는 시룡을 노려보았다.

"저는 보낼 수 없습니다! 신부가 죽기라도 한다면......."

"그녀는 마음을 정했다."

서릿발 같은 냉기가 걸린 얼굴로 시룡이 말했다.

다인을 안고 있던 진룡의 손끝이 떨렸지만, 그는 다인을 내주지 않았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이계의 틈이 닫힐 테고, 그러면 다인은.......

"보내 주세요."

다인이 단호한 얼굴로 진룡을 보며 말했다. 그녀를 보는 진룡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다인은 진룡이 이러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주향의 궁전에서 잠깐 얼굴을 보았을 뿐인 만남이 전부가 아닌가.

"그 사람한테 가야 해요."

"진룡."

시룡의 무시무시한 시선이 진룡의 팔에 꽂혔다. 시룡은 평소 가벼운 모습을 보이기는 해도 수많은 용왕과 용들을 통솔하는 수장이었다.

"그녀를 놔줘."

"......위험할 겁니다."

쓰린 듯 중얼거리며 진룡은 다인을 놓아주었다. 다인의 몸이 중력의 영향을 받아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시룡의 앞으로 내려왔다. 시룡은 싱긋 웃으며 다인의 손에 작은 돌조각 같은 것을 들려 주었다.

"이걸 줄게. 시간이 좀 길 테니까."

"네? 이게 뭐길래....... 으악!"

쳐다보는 사이 시룡이 다인을 훅 떠밀었다. 다인의 몸이 시공의 틈새로 추락하자 달려들듯 진룡이 멈칫거렸다. 그런 진룡을 붙잡은 것은 어느새 가까이까지 접근한 주향이었다.

"흐흐흥~."

콧노래를 부르며 시룡은 다인의 몸에 반투명한 막을 씌웠다. 시공의 틈으로 떨어지는 그녀가 자칫 잘못하여 틈새 어딘가에 부딪혀 몸이 찢기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연보랏빛 방어막에 싸인 다인의 몸이 시공의 틈새로 삼켜지고......, 공간이 완전히 복원되었다. 그러나 두텁게 자리 잡은 구름만은 여전히 짙게 펼쳐지고 있었다.

"너희들이 멍청한 짓을 벌일 줄은 예상했다만......."

시룡은 빙글 몸을 돌려 진룡을 노려보았다.

"이건 좀 예상 밖인걸?"

"......자초하신 일이죠. 왜 매번 상극인 용만 불러내십니까?"

주향이 진룡의 팔을 놓으며 통박을 주었다. 시룡은 불퉁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비슷한 놈들은 비슷한 인간만 고른단 말이야. 그런 인간으로는 용의 곁에서 버텨 내질 못해."

"이공간에서 인간은......."

진룡이 차갑게 내려앉은 눈길로 비난하듯 시룡을 보았다.

"숨조차 쉬기 어렵습니다. 어쩌자고 그녀를 보내신 겁니까?"

"반려의 계약을 맺으면 되는데 뭐. 알면서."

시룡은 태연자약한 얼굴로 턱을 매만졌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용연이 좀 불쌍해지겠지만......, 그건 자업자득이니까."


대기가 비명을 지르듯 찌르릉, 하고 울렸다. 다인이 곁에 없으니 마음껏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상대에게 뒤엉켜 단단한 비늘 속에 감춰진 몸을 찢어발기고 뼈를 부쉈다. 강물처럼 흐르는 피가 이공간의 대지를 적셨으나 상관하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이는 감히 제 반려를 탐하려는 자요, 사랑하는 이를 빼앗으려는 자였다. 이미 괴물로 보이고 말았으니 괴물이 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무섭게 몰아닥치는 은룡을 상대로 용연 또한 악에 받친 듯 맞섰다.

의식의 날 다인을 선택한 것은 나머지 네 용왕들이었다. 은룡은 마지못하여 그것을 수긍했음을 알고 있는데, 왜 하필이면 그란 말인가! 그런 은룡이 다인에게 제대로 대해 줄 리 만무했다. 은룡의 성정이 차갑고 냉혹함은 모든 용들이 알고 있었다. 그런 은룡 곁에서 다인이 말라죽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크와아아아악! 맞붙어 서로를 물어뜯고 이미 생겨 버린 상처 위로 발톱을 박아 넣는다. 용이란 참으로 강인하고 강대한 존재이나, 서로가 비등한 힘을 가진 탓에 점점 쌓여 가는 상처는 참혹하기만 했다.

"그만해!"

저 하늘 높은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두 용이 흠칫 위를 쳐다보았다. 막 닫히기 시작한 이공간의 입구로 보랏빛 구체가 떨어지고 있었다. 은룡도 용연도 그 구체 속에 들어 있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제33화

6장. 납치된 신부 (4)

당황한 두 용이 하늘로 솟구쳤다. 그러나 용연보다도 은룡이 더 필사적이었다. 은룡은 용연을 지상으로 떨쳐 내고 떨어지는 다인을 받았다. 용의 손아귀에 닿자 보호막이 되어 주던 구체는 '팍!' 하고 깨어졌다.

용의 거대한 손아귀에 떨어진 다인은 급격히 고갈되는 숨결에 당황했다. 이곳은 지구보다 산소가 희박하기라도 한 듯 숨쉬기가 어려웠다.

은룡도 그것을 눈치챈 듯 당황했다. 그가 다인을 쥐지 않는 반대편 손을 움직여 보호막을 만들어 주자 숨통이 트인 듯 참았던 숨을 토해 내며 헉헉거렸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남은 모든 힘을 짜내어 다인에게 쏟아부은 듯 은룡의 몸이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저와 같이 다인이 추락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거라 생각했는지, 필사적으로 힘을 짜내어 속도를 줄였다.

콰아아아앙!! 은룡의 몸이 지면에 추락하며 돌조각과 흙먼지가 튀어 올랐다. 다행히 보호막이 그 정도 충격은 감싸 줄 수 있는 것인지 다인에게는 흔들림 정도가 다였다.

문제는 먼저 추락한 용연이었다. 그가 힘을 비축한 채로 은룡을 기다리고 있었다. 은룡은 간신히 거동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은룡은 숨을 몰아쉬며 손아귀에 얹어 놓고 있던 다인을 뒤로 물러서게 했다.

다인은 당황한 얼굴로 두 용을 쳐다보았다.

'싸우면 안 돼!'

용연도 은룡도 이미 치명상을 입었다. 은룡의 상처는 또 한 번 용연의 공격을 받으면 위험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은룡은 제 몸으로 다인을 감추며 용연의 시선에서 그녀가 벗어나게 하려고 했다.

"은룡 님을 다치게 하지 마!"

다인의 외침에 용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용연은 머뭇거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는 은룡을 쳐다보았다. 이것이 단순히 제 높은 자존심을 위하여 다인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것인지, 진심으로 그녀가 귀중해져서인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다인의 마음이 확고하다는 거였다. 그녀는 은룡을 선택했다.

용의 모습임에도 그가 상처받은 것을 알았다. 본래도 무언가 표정으로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용연은 고개를 돌리기 전에 다인을 오래 눈에 담았다. 그 시선에 원한이나 원망은 깃들어져 있지 않았다. 단지 기억에 새겨 두려는 것뿐.

한동안 멍하니 다인을 쳐다보다가 용연은 몸을 돌렸다. 그의 상처에서 무섭도록 피가 흘러 그가 지나가는 땅을 적시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편이 나을 테지만 다인은 그를 불러 세울 수가 없었다.

은룡을 해칠지도 모르는 존재를 붙잡아 두어서는 안 되었다. 적어도 지금은. 다인의 안에서 은룡보다 중요한 이는 없었다.

용연의 존재가 멀어지자 은룡은 가빠진 숨결을 드러내며 다인을 제 눈앞으로 옮겼다. 그는 지쳐 있었지만 다인을 이대로 둘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이런 위험한 곳에 왔다고 꾸짖거나 연유를 묻는 건 나중의 일이었다.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 같았기에.

"은룡 님......."

대꾸할 힘조차 비축해야 했기에 은룡은 입을 다문 채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척박한 땅에 햇빛도 거의 들지 않는 곳이었다. 흙과 돌, 바위가 대부분인 척박한 땅이었다. 용을 벌주기 위해서 열어 놓는 이공간.

'이런 곳으로 다인을 보내다니!'

시룡의 짓임을 알았기에 더 이가 갈렸다. 벌을 주는 것은 그와 용연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인간인 다인에게는 몇십 배는 더 견디기 힘든 곳일 텐데!

바위로 된 산 중턱에 커다란 입구가 보였다. 이곳은 본디 오래전부터 용이 벌을 받기 위해 갇히는 공간이었다. 그러니 이곳에 보내졌던 용이 사용했을 법한 거처가 발견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은룡은 실수로라도 다인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든 채로 바위굴로 이동했다.


바위굴은 깊고도 넓었다. 높은 천장과 안쪽까지 쭉 뻗어 있는 길고 구부러진 통로. 거기다 한쪽으로는 맑은 물까지 흐르고 있었다. 용이 몸을 쉬면서 상처를 치료하기에 적합한 공간이었다.

문제는 다인이었다.

'어쩌자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인이 보내졌기에 제 목숨을 건졌다는 걸 알았다. 다인이 끼어들지 않았더라면 용연도 은룡도 죽을 때까지 싸웠을 것이다. 둘의 힘이 비등하니 그렇게 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다인......, 이곳은 인간의 몸으로는 버티기 힘든 곳이다.】

알고 있다는 듯이 다인이 끄덕였다. 아까 보호막이 깨졌을 때에 숨쉬기가 어려워졌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용의 반려가 되면...... 내 기운을 받아 육체가 강해진다. 용만큼은 아니어도 이 척박한 땅에서도 버틸 수 있어.】

진실을 말하는 것이었지만 은룡은 제 자신이 초라해지는 듯한 기분을 맛봤다. 마치 이 상황을 이용하여 그녀와 반려의 계약을 맺는 것 같았다.

【당장은 싫더라도 그렇게 하자. 시룡의 허락을 받으면 나중에 반려의 계약은 다시 풀 수 있으니.......】

그렇게 되면 은룡은 용으로서의 힘 절반을 잃게 된다. 용왕으로서의 지위는 잃지 않겠지만, 허울뿐인 용왕이 될 가능성이 컸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인의 의사에 반하여 반려의 계약을 유지할 생각은 없었다. 그 자신이 간절히 그것을 원한다 해도.

"......."

다인은 표정을 알 수 없는 시선으로 은룡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무서워하는 것은 아닌가. 저와 비교하면 그저 무섭도록 크고 강인하기만 한 몸을, 괴물처럼 느껴질지도 모르는 이 모습을 그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전 느껴 보지 못한 두려움에 은룡은 애가 탔다.

"......반려의 계약을 맺은 후에, 그 후에 얘기해요."

【그래.】

은룡은 천천히 보호막째로 다인을 자신의 옆에 내려놓았다. 다인은 시룡이 주었던 돌조각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채로 은룡이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피로와 상처에서부터 오는 고통으로 눈이 흐려진 채 은룡은 계약을 불러내고 있었다. 날카로운 손톱이 허공에 도술의 진을 그리고 빛의 문자가 그 위에 새겨졌다.

용의 손바닥만큼 커다란 그것이 푸른빛을 뿜어내며 찬연하게 빛났다. 은룡은 지친 듯한 한숨을 흘리며 다인을 보았다.

【다인.】

은룡은 이미 도술의 진에 손바닥을 대고 있었다. 아직 보호막째인 다인은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그녀가 걷자 보호막도 따라서 움직이고 있었다.

다인은 허공에 그려진 진의 맞은편에 서서 손바닥을 가져갔다. 팍! 하고 보호막이 깨져 당황했으나 손바닥을 떼지는 않았다. 은룡의 걱정 가득한 눈동자가 다인을 주시하고 있었다. 다인은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진을 올려다보았다.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신기하게도 가냘픈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여인인 듯하면서도 사내 같고, 사내 같으면서도 여인인 듯한 기묘한 목소리가 하나의 의지를 담고 다인에게 물었다.

【이자의 반려가 되겠는가?】

"네......." 하고 대답하는 숨결에도 숨이 가빠 왔다. 그러자 다인의 손바닥이 맞닿은 곳에서부터 피처럼 붉은 기운이 번져 진 전체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다인이 멍하니 바라보는 가운데, 그것은 푸르게 빛나고 있는 도술의 문자들과 뒤엉켰고, 눈이 부시지만 시리지 않는 새하얀 빛으로 물들었다. 그러고는 뒤엉켜 있던 사슬이 풀리듯 한 올 한 올 각기 풀리어 절반은 은룡의 손으로, 나머지 절반은 다인의 손으로 퍼져 나갔다.

손등을 타고 손목까지 기어올라 기어이 어깨를 타고 몸 전체로 퍼져 나가는 그것이 기이했지만 두렵지 않았다. 그것은 다인의 심장 부근에도 스며들어 그녀의 혈맥을 더욱 단단하게 했고, 피부와 뼈, 근육과 장기까지도 하나하나 돌보는 듯했다. 다인은 마침내 숨을 쉬기가 한결 편해졌음을 깨닫고 안도했다.

반려의 계약이라 해서 복잡한 뭔가를 기대했던 다인은 허탈함을 느끼며 은룡을 보았다. 드디어 계약을 마친 은룡은 반쯤 눈을 감고 있었다. 무거운 머리는 툭 떨어져 바위로 된 바닥에 늘어져 있고, 상처에서는 아직도 무서울 정도의 출혈이 계속되고 있었다. 다인은 다급히 은룡의 머리로 달려갔다. 몸이 원체 길고 거대해서 오른손에서 얼굴로 가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은룡 님......!"

【괜찮다. 잠시 쉴 뿐이야.......】

지친 목소리로 말하고는 눈꺼풀을 떨어트렸다. 다인을 안심시켜 줘야 했지만, 버티기에는 너무 피곤하고 고통스러웠다.

다인은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로 은룡의 상처로 다시 달려갔다. 치료해 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팔을 벌려도 다 싸안지 못할 만큼 큰 상처였다.

'어쩌지? 이, 이대로 죽는 건.......'

은룡이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건 그의 말일 뿐이다. 왈칵 겁이 난 다인은 울 듯했다가 문득 시룡이 준 돌조각을 떠올렸다. 주머니에 넣었던 그것을 허둥지둥 꺼낸 다인은 그것이 새하얀 대리석 따위에 오밀조밀하게 조각한 장식임을 알았다.

"이게 뭐지?"

조각되어 있는 것은 아랍풍의 궁전이었다. 뭔가 글자가 쓰여 있는 것도 아니어서 흔들어 보고 들여다보다가 바닥을 살펴보았다.

작은 조각상의 바닥에는 태엽이 달려 있었다. 톱니바퀴 모양의 둥근 태엽이 받침대처럼 붙어 있어서 돌리는 구조였다. 뭐에 사용하는 물건일까? 이런 게 달려 있다면 돌리라는 얘기밖에는 안 된다. 다인은 태엽을 돌렸다.


【헉.......】

악몽을 꾼 것 같다. 은룡은 당황한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잠결에 제 반려를 깔아뭉개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는 것은 꽤나 끔찍한 것이었다.

'뭐지?'

주위를 돌아보던 은룡은 놀랐다. 그는 자신이 다인을 데리고 어느 바위굴로 몸을 피했음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환한 햇살이 높은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비쳐 들고 있었다. 그 자신이 용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그의 몸체 전부를 수용하고도 자리가 남을 수 있는 건물은 흔치 않았다. 그런데도 이 건물은 그러했다. 형태를 봐서는 아랍풍의 궁전에 가까운 곳이었다.

"은룡 님!"

넓은 입구. 그러나 지금 은룡의 모습으로는 드나들기 버거울 듯한 입구로 다인이 달려왔다. 차림새가 아까 보았을 때와 달랐다.

은룡은 그녀의 밝은 표정에 안도했다.

【다인.】

제34화

6장. 납치된 신부 (5)

"깨어나셨네요."

달려온 다인이 기쁨에 눈물을 글썽였다. 은룡은 당황하며 그녀를 보았다. 그사이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인가?

【왜 울지?】

"이틀 만에 깨신 거예요."

이틀? 이 척박한 땅에서 다인 혼자 이틀이나 버텼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서늘해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묻기 전에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저도 잘 몰라요. 여기로 절 보내 주신 분이 작은 장식품 같은 걸 주셨는데......."

여기로 보내 준 사람이라고? 분명 진룡은 아니었을 것이다. 진룡이라면 다인이 이런 위험한 곳에 혼자 떨어지도록 내버려 두었을 리 없다.

"바닥에 태엽을 돌리니까 흰 안개가 나오더니......."

정신을 차려 보니 여기였다. 은룡과 같이 거대한 궁전의 한 방 안에 서 있었다. 그리고.......

기척에 은룡이 고개를 돌렸다. 입구로 웬 허수아비 같은 목각 인형이 하나뿐인 다리를 깡충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양 어깨에 달린 팔과 관절이 분명하게 만들어져 있는 손으로 보아 시중을 드는 일은 할 수 있는 형태지만......, 저런 모습이라니 악취미였다.

'시룡의 것이군.'

사역 인형은 본디 인간이나 수인족과 비슷한 형태로 만드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었다. 사역 인형이라 해도 모시는 자의 기가 스며들어 의지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는 탓이다. 그러나 시룡은 심술을 부리듯 저런 형태로 만들어 놓는 경우가 흔했다.

"저 인형들이 치료하는 걸 도와줬어요."

말도 못 하게 되어 있는지 삿갓 같은 걸 쓰고 있는 익살스러운 얼굴을 끄덕끄덕했다.

그 말에 은룡은 제 몸을 돌아보았다. 상처가 난 곳마다 커다란 붕대가 감겨 있었다. 은룡은 울컥 목이 멜 것만 같았다.

【네가...... 이걸 했단 말인가?】

"저보다는 거의 다 사역 인형이 했어요."

아까 눈물을 글썽일 때는 언제고, 은룡이 깬 것이 기쁜지 방실 웃으며 답했다.

저 사람 같지도 않은 인형에 둘러싸여 피를 흘리고 있는 자신을 간호했을 다인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며 왔다.

"앗."

다인이 보는 앞에서 은룡의 모습이 빛에 휩싸였다. 평범한 인간의 눈이었다면 시리도록 푸른빛이어서 눈에 담을 수 없었을 테지만, 지금 그녀는 은룡의 반려였다. 그래서 은룡의 거대한 몸이 줄어들며 인간의 형태로 변하고, 갑주처럼 뒤덮여 있던 비늘과 신성하고도 단단한 뿔이 사라지고......, 서늘한 풍모의 미남자가 나타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은룡은 몸에 감겨 있던 붕대를 의식해서인지 상체는 벌거벗은 채 하반신에만 바지를 입고 있었다.

몸을 일으킨 은룡이 다인을 쳐다보았다. 제 본모습을 들켜 버렸으니 다인이 어떤 표정으로 자신을 볼지 장담할 수 없었다. 내가 만지려고 들면 두려워하며 달아날까 봐, 은룡은 차마 먼저 다가가지도 못했다.

다인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을 깜박거렸다. 은룡이 용의 모습일 때야 자칫 깔릴까 봐 주의하고 있었다. 지금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을 보고 달려가 끌어안을 뻔했으나, 그가 심한 상처를 입었음을 떠올렸다.

"......."

침묵한 채로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왜 그러는 거지? 다인은 갸웃하더니 은룡에게로 크게 한 걸음을 뗐다. 다가가서 은룡의 팔을 잡았다.

"침대로 가서 누우세요. 여기 말고도 방이 있어요."

본체가 작은 조각상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궁궐이었다. 다친 은룡이 신경 쓰여 다 살펴보지는 못했다. 은룡을 치료할 수 있는 물건을 찾으며 가까운 방만 살펴보았을 뿐이다.

은룡은 다인에게 잡힌 팔을 내려다보았다. 거리낌 없는 그 온기가 무척 소중했다.

"내가...... 두렵지 않나?"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며 은룡은 다인의 손을 잡았다. 그녀가 혹시라도 몸을 떨거나 손을 뿌리칠까 봐 꽉 잡지도 못했다.

"그야......."

구름 위에서 무섭게 포효하며 싸우는 두 마리의 용을 발견했을 때는 두려웠다. 기절한 은룡의 본체를 보고도 두려움을 느꼈다. 그 천지를 울리는 듯한 숨결과 제 딴에는 작다 느꼈을 뒤척임에도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완전히 무섭지 않다면 거짓이었다.

"은룡 님 몸에 붕대를 감을 때, 혹시 뒤척이시지 않을까 긴장하긴 했어요."

반려의 계약을 맺어 몸이 달라졌으니 깔렸어도 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간 몸 그대로였다면 온몸의 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터져 죽을 수도 있었다.

"......반려의 계약을 맺었으니 설사 그렇다 해도 다치지는 않았을 거다."

담담히 그 사실을 알려 주는 은룡의 표정을 다인은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에 은룡은 머뭇거렸다.

"왜 그렇게 보지?"

"그냥...... 좀 달라지신 것 같아서." 하다가 성큼 은룡의 앞으로 걸어왔다. 은룡은 무심코 움찔했다. 저를 똑바로 올려다보는 시선이 너무 올곧고 맑아서.

"상처 많이 아프세요?"

"아니. 이 정도면 금방 아물......."

눈을 피하며 대꾸하는데 품으로 다인이 덥석 안겨들었다. 은룡은 순간 몸이 굳었다. 홧홧하게 얼굴이며 몸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역린 만지면 안 되니까 키 좀 낮춰 주세요. 어깨 끌어안게."

은룡의 역린은 옆구리에 있었다. 때문에 다인은 옷을 입지 않은 은룡의 허리는 절대 끌어안으려 들지 않았다. 은룡은 떨리는 심장을 누른 채로 상체를 굽혔다. 다인이 은룡의 목을 꼬옥 끌어안았다.

"무슨 고민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부정적인 생각이시면 지워 버리세요. 그런 거 아니니까."

고민과 상념을 날려 버린 듯 다인의 태도는 단호했다.

안아도 될까? 잡아도...... 되는 걸까? 허공을 배회하던 은룡의 손이 다인의 가느다란 몸을 끌어안았다.

다인의 걱정과는 달리 은룡의 몸은 회복 단계에 이르고 있었다. 용은 강한 존재였고, 특히나 용왕은 더욱더 강했다. 한동안 정양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움직이고 무언가 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렇기에 은룡은 다인을 힘주어 끌어안더니 그대로 들어 올렸다.

'엑?'

아예 다인의 엉덩이를 받쳐 안고는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 뒤로 콩콩거리며 사역 인형들이 뒤따라오고 있었다.

다인은 제 눈을 피하는 은룡을 보고, 그가 뭔가 자신에 대해 고민한다는 걸 눈치챘다. 그러나 그 고민의 정체를 알 수 없어서 일단 껴안고 본 거였다. 나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주저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이기에.

"어, 저, 무, 무거우실 텐데......."

"팔 풀지 마. 더 세게 끌어안아 줘."

붉은빛이 돌아 요염해 보이기까지 한 얼굴로 은룡이 속삭였다. 다인은 어쩐지 부끄러운 생각에 은룡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상처...... 거, 건드리면 어떻게 해요."

"거의 다 나았어. 신경 쓰이면 붕대 떼어 낼까?"

"아, 안 돼요! 이틀 사이에 상처가 다 나았을 리 없잖아요!"

실은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다 아물었을 테지만, 은룡은 다인이 걱정해 주는 것이 좋아서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기분 좋아 보이는 은룡에 다인은 갸웃했다. 다인이 보기에 은룡은 이틀간 사경을 헤매다가 이제 막 정신이 든 사람에 불과했다. 그런데 자신을 이렇게 들어 올리고 움직이기까지 하다니! 은룡이 사람 모습으로 변하면 부축해서 침실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정말 괜찮은 건가? 그럴 리 없는데?'


바로 곁은 아니지만 좀 떨어진 곳에 침실이 있었다. 은룡은 침상에 다인을 내려놓고는 그 자신도 침상으로 올라갔다. 침상 가장자리에 앉은 다인이 저를 돌아보는 자태가 퍽 사랑스럽게 느껴져 가슴이 뛰었다.

"이리 와."

침상에 누워서 옆자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다인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은룡의 곁으로 와서 누웠다. 은룡은 다인을 끌어당겨서 안았다.

"편하게 주무시게 저 내려갈까요?"

"네가 있어야 안심이 되니까 곁에 있어."

맞닿은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체온이 달콤했다. 은룡은 다인이 저에게 좀 더 달라붙었으면 싶어서 더 끌어당겼다. 품에 안긴 다인이 꾸물거렸다.

"상처를 건드리겠어요."

"네게 닿으면 더 빨리 나을 거다."

"천만에요. 상처를 누르면 아플걸요?"

고개를 들며 다인이 반론하자 은룡은 미소 지었다.

"만져 보겠나?"

꽤 몸 이곳저곳이 찢기거나 물려서 뜯겼다. 다행히 수인족은 재생 능력이 있고, 용족의 재생 능력은 탁월했다. 이틀간 깨지도 않고 잠을 잤으니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거의 다 아물었을 거라고 보는 게 맞다.

"안 돼요."

다인이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은룡은 다인이 제 몸을 은근히 더듬어 주는 것을 상상하고는, 아쉬움에 군침을 삼켰다. 다인은 갸웃했다.

'뭔가 눈빛이.......'

음흉하다고 해야 할까? 기분이 나아진 것은 좋은 일이지만 꿍꿍이가 있는 표정이었다. 알 수 없어서 쳐다보고 있자니 은룡이 웃음 지었다.

녹아내릴 듯한 미소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평소에도 그런 식으로 웃어 줄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더 달았다. 그 정체를 파악하려 머뭇거리는 사이 다인을 껴안고 있던 손이 슬그머니 옷 속으로 들어왔다.

'앗.'

다인이 입고 있는 옷은 이 궁전 안에 있던 옷이었다. 겉옷은 찾았지만 속옷을 찾지 못해서 입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은룡은 브래지어의 방해 없이 다인의 가슴까지 어루만질 수 있었다.

"자......, 잠깐만....... 으읏."

가슴을 주물거리는 손에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막 깨어난 몸이 아닌가. 그런 몸으로 무리를 했다가 상처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아예 유방 하나를 손에 쥐고 주무르는 손길에 다인은 몸을 움츠렸다. 익숙한 손길에 벌써 유두가 일어서고 있었다.

"아......, 흐읏....... 안 돼....... 은룡 님...... 아직...... 몸이......."

"내 몸이라면 괜찮다."

귓가로 속삭이며 은룡이 품이 넉넉한 다인의 바지를 끌어내렸다. 이쪽도 속옷을 입지 못했기에 아무 어려움 없이 벗겨졌다. 매끈한 엉덩이를 주무르고는 곧바로 다리 사이로 손길이 파고들어 다인은 뺨을 물들였다.

제35화

6장. 납치된 신부 (6)

"아앙...... 응....... 그만......, 진짜 안 돼......."

"그리 걱정된다면......."

다리 사이로 진입한 손가락이 음란하게 갈라진 틈을 희롱해 왔다. 다인은 다리를 오므리며 거절하려고 했으나 은룡이 능란하게 유두를 괴롭히자 힘이 빠져나갔다.

"하아앙...... 으응......."

"네가 직접 해 주면 될 것 아닌가."

"아......, 무슨....... 아흑......."

멈칫하는 사이 은룡의 손가락이 다인의 비부로 들어왔다. 깊숙이 파고들어 다인이 좋아하는 곳을 매만지자 다인은 몸을 떨었다.

"내 위에 올라타라는 말이다."

속삭여진 음란한 말에 다인은 새빨갛게 물들었다.


"우으......."

얼굴이 타는 듯이 뜨겁다. 다인은 야속하다는 듯이 침상에 누운 은룡을 흘겨보았다. 그는 반듯하게 누워 감상하는 듯한 얼굴로 다인을 보고 있었다.

"어서."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재촉하는 말에 다인이 움직였다.

"읏......."

그녀의 은밀한 꽃잎은 은룡의 도움으로 흠뻑 젖은 상태였다. 다인은 다리를 벌리고 은룡의 허리를 끼는 형태로 자리를 잡았다. 다리가 벌어져 음란하게 젖은 꽃잎이 드러나자, 아플 정도로 뜨거운 은룡의 시선이 느껴졌다.

'난 몰라.'

수치심에 뺨을 물들이면서도 다인은 서서히 허리를 내렸다. 바로 들어갈 줄 알았으나 곧게 선 페니스는 다인의 입구로 들어가지 못하고 원을 그렸다.

"힉......."

힐끗 도움을 청하듯 은룡을 보았으나 그는 짓궂은 미소만을 띠고 있었다. 다인은 울상이 되어 은룡의 허리춤으로 손을 뻗었다.

"응......."

굵직한 페니스가 손바닥에 닿았다. 그 열기에 숨을 삼켰으나 그것을 제 비부에 누른 채로 천천히 허리를 내렸다.

"히익, 흣......."

들어온다....... 젖은 입구가 한없이 크게 벌어지며 뜨거운 열 덩어리가 파고드는 느낌에 소름이 끼쳤다. 한편으로는 무섭도록 치미는 음란한 열기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흐흑......."

허리를 점점 아래로 내릴수록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더 깊숙이...... 자신도 모르는 곳까지도 파고들어 오는 은룡의 욕망에 온몸의 신경이 쭈뼛 서는 듯했다. 굵직한 줄기가 내부를 가득 벌리고 뿌리까지 서서히 삼켜졌다.

마침내 은룡의 허리에 앉게 된 다인이 떨리는 숨을 내뱉었다. 다인은 바닥을 디디고 있던 다리를 움직여 침상에 무릎을 댔다. 다인은 처음부터 격렬하게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한계를 알았다.

다인은 은룡의 복부로 손을 옮겼다가 붙어 있는 커다란 반창고를 보았다. 분명 용일 때와는 크기가 다를 터인데, 그 커다란 붕대가 이런 반창고로 변한 것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손이 반창고에 닿을까 봐 다인이 얼른 손을 떼자 은룡이 붙잡았다.

"만져 다오."

유혹하듯 달콤한 음성에 다인은 뺨을 물들였다. 그의 청에 따라 조각 같은 근육을 더듬자 그에 반응하듯 낮은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움직이지는 않을 셈이냐?"

안타까운 듯 한숨을 흘리는 은룡에 다인은 머뭇거렸다. 그러다 결심한 듯 은룡의 배에 손을 대고 무릎으로 일어났다.

"흐윽!"

페니스가 빠져나가는 소실감에 온몸이 떨려 왔다. 다인은 새빨갛게 물든 얼굴로 허리를 내렸다.

"아아읏......!"

여린 살점이 밀려들어 가며 페니스가 깊숙이 파고들었다. 움직임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시각적인 자극이 컸다. 다인이 크게 다리를 벌린 채로 자신의 위에서 허리를 흔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은룡을 흥분시키기는 충분했다.

"나를 미치게 하려는 건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 은룡의 목소리에 다인이 젖은 눈을 들어 은룡을 보았다. 은룡은 제 복부에 놓여 있는 다인의 손목을 낚아채더니 홱 끌어당겼다.

"아흑!"

은룡의 위로 쓰러지며 깊숙이 삽입된 채인 페니스가 움직였다. 그 자극으로 몸을 꿈틀거리는 다인을 끌어안은 채로 은룡은 입술을 포갰다.

"흐읍, 읏......."

정신없이 입술을 빨리며 허덕이고 있는 다인의 허벅지를 은룡이 움켜쥐었다. 다인이 "어?" 하며 쳐다볼 찰나 은룡이 다인의 허리를 들어 올렸다.

"아앗?!"

본디도 은룡이 저를 가볍게 들 수 있다는 것은 알았다. 매일 밤 몸을 씻겨 주며 쉽게 그녀를 들어 올렸던 은룡이었다. 그러나 이리도 쉽게 들 수 있을 줄은 몰랐다. 페니스가 쑤욱 빠져나오며 질벽을 긁어내리는 감촉에 입술이 떨렸다.

은룡은 그 상태에서 다인의 허리를 아래위로 흔들기 시작했다. 불규칙하게 엉덩이가 움직이자 페니스가 질벽의 좌우를 비벼대듯 삼켜졌다 빠져나갔다.

음란한 자극에 다인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흐앙! 앙......아아앙....... 으응......!"

은룡의 가슴에 쓰러진 채로 헐떡이고 있자니 돌연 몸이 뒤집혔다. 아래위가 뒤바뀌어 당황하던 찰나 페니스가 쑤욱쑥 밀어붙여지기 시작했다.

"하악, 읏......아앙....... 은룡 님...... 히익......!"

크게 벌어진 허벅지가 침상에 눌러졌다. 완전히 노출된 비부로 페니스가 푹푹퍽푹 찔러들기 시작했다. 음란한 쾌락에 몸을 비틀며 다인은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은룡을 움직이지 않게 하려고 그의 허리 위에 앉기까지 했는데, 이래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앙......앙! 제가...... 할 테니까....... 으응......."

"나중에."

'나중이라니? 지금 몸을 움직이면 안 된다고요!' 하며 항의하려는 입술로 은룡의 키스가 쏟아졌다. 버둥거려 그의 아래에서 빠져나가려 하니 허리를 붙잡고 격렬하게 밀어 올렸다.

"흐아앙앙! 응응......으으응......! 앙대......아앗......!"

밀어내야 하는데 너무 기분 좋았다. 가느다란 허리를 붙잡힌 채로 다인은 흐려지는 머릿속을 털어내듯 고개를 흔들었다. 이 와중에도 페니스는 계속해서 삽입되어, 젖은 질벽을 밀어젖힐 기세로 맛보고 있었다.

"아아....... 아! 아! 아!"

이렇게 움직이게 두면 안 되는데. 의식은 있었으나 몸이 멋대로 쾌락을 좇아 버린다. 다인은 은룡의 품에서 신음하며 몸부림쳤다. 한계까지 부푼 쾌감에 발끝까지 저릿저릿하게 울렸다.

"하앗, 읏...... 아아아아아......!"

허리를 튕기며 도달하는 다인의 안으로 은룡이 허리를 밀어붙였다. 장대한 페니스가 부푸는 듯싶더니 기세 좋게 다인의 안에 사정했다. 먼저 절정을 맛본 다인은 축 늘어지며 끈적한 액체가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기분 좋아.......'

멍히 은룡을 쳐다보자니 거친 숨결이 쏟아졌다. 은룡은 뜨거운 입술을 맞대고 혀를 섞어 탐내듯 입 맞췄다.

"후아......아......."

이 시간이 너무도 좋았다. 사랑받고 있는 기분이 든다. 다인은 은룡의 허리를 끌어안으려다가 멈칫했다. 부드럽게 입술을 핥는 은룡을 바라보며 젖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몸은...... 괜찮으세요?"

이 상황에서 그걸 물어보는 건가? 은룡은 짓궂은 미소를 띠며 다인의 입술에 쪽 하고 입 맞췄다.

"서너 번 더 하면 괜찮아질 것도 같다."

"아, 안 돼요. 이번 한 번으로 만족하세요."

꼼지락거리며 금방이라도 빠져나갈 듯 다인이 말했다. 그것이 귀여워서 은룡은 일부러 더 다인을 꼭 끌어안았다.

"싫은데."

"엣, 앗......, 움직이시면...... 아흑......."

표정을 흐리는 다인에게 다시 입 맞추며 은룡은 제 허리를 격렬하게 움직였다. 한차례 사정한 탓에 더욱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내가 다 나을 때까지...... 도망칠 생각 하지 마라."

"으흣......, 그, 그러니까......요....... 제발...... 아앗......."

달아나려는 다인을 몰아세우며 은룡은 쾌락으로 가득 찬 숨결을 흘렸다. 아직 날은 밝았고 그의 욕구가 채워지려면 한참 시간을 들여야 했다.

"안 돼."

속삭이며 은룡은 질척질척한 비부로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저들을 얼마나 가둬 두실 생각이십니까?"

초조한 진룡의 물음에 시룡은 "글쎄......." 하고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애초에 용왕은 오래 이계에 두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아예 용왕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면 모를까.

"1년이나 10년쯤?"

진룡은 찡그리며 시룡을 노려보았다. 1년과 10년의 단위는 너무 다르다. 시룡이 저를 놀리려 한다는 것을 바로 눈치챈 것이다.

"화낼 것까지야. 그곳과 이곳은 시간의 흐름이 다르니 한...... 나흘 정도면 충분할 거다."

"나흘......입니까."

"어차피 그 안에서 은룡은 그녀를 반려로 삼았을 게다. 뭐 하러 관심을 두는 거냐? 응?"

"......."

이성이 무어라 한데도 마음이란 것이 그리 쉬이 잘라 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무모한 줄 알면서도 용연도 그리 달려든 거였다.

"더 길길이 날뛰며 싸우는 게 아니면 좋겠는데요."

주향이 시룡의 관심을 돌리며 말을 걸어 왔다. 시룡이 더 진룡의 속을 긁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때에는 진짜로 손을 써야겠지....... 주향, 인간들이 목격한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처리된 거야?"

"진룡의 가신들이 움직여 주어 제가 따로 지시할 것도 없었습니다."

"좋아."

시룡은 무릎을 치며 일어났다. 그들은 용연과 은룡이 맞붙었던 사거리의 커피숍 2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진룡."

자리에서 일어선 시룡이 그를 부르자 주향이 움찔 시룡을 보았다. 진룡은 이렇다 할 표정이 없는 얼굴이었다.

"이번은 그냥 넘어가지만 기억을 해 두고 있을 거다. 그러니 쓸데없는 짓 하지 마."

다인에게 따로 접근한 것은 상관없지만, 용왕으로서의 힘을 사용하여 다수의 인간을 일시적으로 지배했던 것은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힘의 사용이 용연을 불러들였고, 은룡과 용연의 충돌까지 일어났다.

"......명심하지요."

진룡은 차가운 목소리로 내뱉고는 모습을 감췄다. 시룡은 콧방귀를 뀌었다.

"저놈은 대답만 잘한단 말이야. 잘 차였어. 아주 꼬시다!"

제36화

6장. 납치된 신부 (7)

"전 진룡이었으면 했습니다."

"왜?"

의아한 듯 시룡이 주향을 돌아보았다. 주향은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이런 귀찮은 문제가 없었을 거라고요. 진룡이나 흑룡 같으면 금세 반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텐데. 용연이나 천룡...... 이런 놈들은......."

"은룡도 재주 없는 쪽이고?"

재미있다는 듯이 시룡이 물었다.

"재주 없다고는 못 하지만......, 은룡은 괜히 콧대만 높잖아요. 그 아가씨를 마지못해 승낙했을 뿐이고요. 제가 그 아가씨를 속이지 않았다면 그 아가씨는 여의주 없이 용궁을 나갔을 거고, 이번 의식도 혼례 없이 끝났을 거예요."

"해서 다 네 덕이다?"

"아니에요, 그럼?"

정색하며 대답하는 주향에 시룡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사실을 알게 되면 은룡은 그렇게 생각 안 할걸? 그 신부도 물론이고 말이야."

"윽. 그건......,"

"후환이 두려우면 결혼 선물이나 좋은 걸 준비해 보든가. 난 벌써 줬지만."

다인의 손에 쥐여 주었던 태엽 궁궐을 떠올리며 시룡이 말했다. 그 척박한 땅에서 좋은 거처가 되어 줄 물건이었다.

'은룡은 지금쯤 신이 났겠구나.'

"......우리 자기는 뭐 하고 있나 몰라."

"SNS 하시겠죠."

워낙 옛날 사람이라 신문물을 두려워하던 그녀지만, 최근 SNS를 탐닉하는 데 재미를 붙였다. 시룡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느라 자신의 말에 대답도 안 해 주는 부인을 떠올리고는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내가 왜 핸드폰 사용법을 가르쳐 줬을까?"

"부인님께서 물어보시니까?"

"어엉....... 그랬던 것 같아."

시룡은 푹 고개를 떨궜다.


"으응, 흑....... 하악...... 아아......."

좌우로 크게 벌어진 허벅지가 음란하게 흔들렸다. 다인은 은룡의 속삭임에 따라 허리를 들어 올리려고 했다. 힘을 주는 것은 발끝과 다리인데, 음부로 온통 신경이 몰려서인지 그곳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

"웃......."

찌걱거리며 페니스를 밀어붙이던 은룡이 낮은 신음성을 흘렸다. 표정을 흐리며 바쁘게 페니스를 찔러드는 것에 더한 쾌감이 몰아쳤다.

"아아아......!"

바르르 떨며 엉덩이를 내릴 듯하자 은룡의 심술궂은 손가락이 꽃눈을 튕겼다.

"흐아, 으응!"

달콤한 비명을 지르는 다인을 재촉하며 은룡은 깊숙이 찔러댔다. 다인이 타액을 흘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앙, 앙...... 으응! 으으응...... 더는...... 아앗!"

"안 돼."

"아! 아아....... 무리...... 아앗, 앗......."

자꾸만 침구 위로 처지는 엉덩이를 은룡이 한 손으로 받쳐 들었다. 벌리라는 듯 앞으로 끌어당기며 제 허리가 맞닿을 정도로 밀어붙였다.

"아아아아!"

가장 깊고 은밀한 곳까지 파고들어 오는 선단에 다인의 허리가 튕겨졌다. 은룡은 다인의 허벅지를 양손으로 들어 올린 채로 연달아 허리를 쳤다. 가장 깊은 곳이 연달아 찔리며 다인의 허리가 활처럼 젖혀졌다.

"흐악! 학! 아앗! 아아아아......!"

음란한 자극에 눈앞으로 새하얀 불꽃이 일었다. 다인은 은룡에게 잡힌 허벅지를 바르르 떨며 타액을 흘렸다. 미칠 것만 같았다.

"하악! 읏...... 앗, 아아...... 제발....... 흐으윽......."

"다인......."

"앗, 아아아......!"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고 의식이 튀었다. 벌름벌름 격렬하게 수축하는 질벽이 은룡의 페니스를 감미롭게 조여 갔다. 은룡은 숨을 삼키며 다인의 안에 허리를 밀어붙였다. 간발의 차로 정액이 뿜어져 나오며 비좁은 틈새로 퍼져 나갔다.

"하아...... 하아......."

축 늘어진 다인이 젖은 숨결을 흘렸다. 은룡은 깊은 숨을 몰아쉬며 다인에게로 상체를 숙였다. 다인이 팔을 뻗어 그를 끌어안자 은룡 또한 다인을 안았다.

"......키스해 줘야지."

은룡의 속삭임에 다인이 쾌락으로 흐려진 눈으로 그를 보았다. 고개 숙여 오는 은룡에게 가볍게 입 맞추자 은룡이 다인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흐윽......."

삽입된 채인 페니스로 내부를 젓듯 허리를 놀리며 속삭였다. 음산하고도 짓궂은 목소리였다.

"제대로."

"응......."

다인이 뺨을 물들이며 더듬더듬 은룡의 입술을 핥았다. 은룡은 놀리듯 입을 꾹 다물고 안을 내어 주지 않다가 다인이 울상이 되자 입을 열었다. 작고 부드러운 혀가 자신의 입안으로 침범하는 것만으로도 욕구가 일었다.

"으음......."

"더......."

열기를 띤 목소리로 은룡이 재촉했다. 다인은 제 안에서 불끈거리는 듯한 은룡의 페니스를 느끼며 그의 허리를 제 다리로 감았다. 은룡의 단정한 입술에서 기분 좋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나의 신부......."

속삭이는 부름에 다인은 열심히 혀를 움직였다. 더 느끼게 해 주고 싶고 기쁘게 하고 싶었다. 은룡은 황홀한 듯 신음하며 다인을 더욱 바싹 끌어안았다. 깊숙이 자리 잡은 페니스가 은룡의 움직임에 따라 젖은 속살을 맛보는 것이 느껴졌다.

"아흑! 읏...... 아아아......."

음란한 자극에 키스가 이어지지 못하자 은룡이 나직한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키스를 퍼부어댔다.

"하악! 앙, 아앗....... 응! 으흑......."

점점 격렬해지는 추삽에 다인은 키스하던 입술 틈새로 신음을 쏟아 냈다. 은룡은 그런 다인을 격렬하게 몰아세웠다. 그가 페니스를 뽑을 때마다 정액과 애액이 주르륵 흘러넘치며 다인의 엉덩이를 따라 흘러 내려왔다.

철썩철썩하는 질척한 소리에 다인의 뺨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아앙, 읏...... 아아......, 아아앙!"

은룡의 몸에 꼭 달라붙어 있어, 움직임이 격렬하지 않음에도 좋았다. 맞닿은 피부가 뜨겁고 출렁이는 유방이 은룡의 가슴에 문질러지는 것조차 쾌감으로 느껴졌다.

"앗...... 아아아아....... 아앗...... 아학......!"

은룡이 사정함과 동시에 절정을 맛보며 다인은 허리를 튕겼다. 그녀가 침상에 늘어지자 은룡은 웃으며 음란한 키스를 쏟아 냈다.

"아직 쉬게 해 줄 생각 없다만."

"에엣......?"

당황한 나머지 다인이 움찔 반응을 보이자 은룡이 심술궂게 웃었다.

"왜 놀라지? 우리는 이곳에 유폐되었으니...... 할 일이라고는 이것밖에 없지 않느냐."

"그, 그렇지는...... 몸을 회복하는 문제도......, 아앗?!"

밀어붙여진 페니스가 가장 깊은 곳을 희롱해 왔다. 저릿하게 퍼져 나가는 음란한 자극에 다인은 무심코 은룡의 페니스를 조이며 숨을 헐떡였다.

"내 몸이 다 나았다는 건 이미 증명해 보였다."

빙글빙글 웃는 은룡의 파란 눈동자가 욕정으로 타는 듯했다. 다인은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로 그런 은룡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하, 하지만...... 이미 많이 했는데......."

"이 정도로?"라고 속삭이며 웃는 은룡의 눈빛에 다인은 오싹해졌다. 다인은 은룡이 정신이 든 그 시간부터 벌써 8시간째 탐해지는 참이었다.

'이러다 전에 회사 잘렸을 때처럼 되는 건.......'

"으, 으으은룡 님! 전 인간이에요! 계속 그것만 할 수는!!!"

"그럴까?"

은룡은 가볍게 웃으며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려의 계약을 맺었다는 걸 잊은 모양이로군."

"네?"

얼빠진 얼굴로 다인이 은룡을 보았다. 그와 반려의 계약을 맺은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반려의 계약을 맺은 인간은 수인족의 반려로 살 수 있을 만큼 몸이 변하지. 나와 계약을 맺은 지 이틀이 더 지났으니 몸이 완전히 적응하여......."

야릇하게 웃는 은룡의 얼굴은 여전히 숨 막힐 정도의 미모를 자랑하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저승사자의 그것처럼 느껴졌다. "......내게 아무리 안겨도 죽지 않을 거다." 하고는 반론할 틈도 주지 않고 입술을 빼앗았다.

'하지만 그건...... 죽지만 않는다뿐이지 다른 건 어떻게 되는지 모르잖아요!'라는 말이 다인의 입안에서 맴돌았으나, 은룡의 아찔한 키스에 녹은 다인은 순식간에 그 말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여긴가."

부질없다는 건 알고 있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미친 짓이었다.

용연은 크게 입을 벌리고 있는 바위굴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상처가 다 나았으니 은룡의 상처 또한 그럴 것이라는 걸 알았다. 은룡과 얼굴을 마주하게 되면, 이번에야말로 죽을 때까지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이곳에는 피해를 입을 시가지며 인간들도 없었으니까.

'그녀는 무사할까?'

용연이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는 분명했다.

은룡이야 어차피 살아남았을 테지만, 인간인 그녀가 어찌 되었는지 걱정스러웠다. 은룡이 곁에 있었으니 반려의 계약을 맺었을 가능성이 컸다. 혹시라도 계약을 맺지 못했다면...... 벌써 이틀이나 지났으니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곁에 있어야 했을까.'

그러나 그 순간에는 다인과 은룡의 곁에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을 거절하는 다인의 앞에서, 처참하게 부서진 마음을 끌어안고 몸을 피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계약을 맺었을 테지만.'

그래도 확인해 보고 싶다. 질척질척하게 이어지는 마음을 끊어 내기 위해서라도 그래야 했다.

'왜 나는.......'

애초에 용연은 인간 반려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시룡의 부름을 받고 주향의 궁궐에 도착했을 때만도 남의 일처럼 생각했다. 누구를 보아도 마음이 동하거나 무엇을 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때까지만도 그 어떤 것에도 흥미를 갖지 못했으므로.

그러나 숲으로 들어오는 다인을 보게 되니 마음이 달라졌다. 그것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제 짝을 알아보는 것과 같았다. 내 마음에 빈 공간이 있어서 거기에 맞는 누군가를 알아내듯. 그녀가 보였다.

당황스러웠던 것은 용연 외에 다른 세 용왕도 비슷한 심정이었다는 거였다. 그런데도 다인은 그들 네 용이 아닌 은룡을 선택했다.

'이해할 수 없어. 왜 그였지?'

다인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으나......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용연이 다인을 알아보았듯이 다인 역시도 은룡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용연에게는 불행하게도 다인의 선택은 잘못된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다인을 돌려받으려던 은룡을 용연은 온몸으로 맞서야 했다.

제37화

6장. 납치된 신부 (8)

멀게만 느껴졌던 바위굴의 입구가 가까워졌다.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내부가 꽤 넓어 보였다.

정신을 차린 은룡에게 공격받을 수도 있다. 용연은 기척을 감춘 채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어째서?'

꽤 넓은 동굴이었지만 부상을 입었으니 깊숙이 자리 잡지는 못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다인도 은룡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아서 용연은 한순간 당황했다.

소리 없이 안으로 들어가던 용연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작은 조각상을 발견했다. 언뜻 보기에는 새하얀 바위 한 덩이에 섬세하게 조각을 해 놓은 모양새였다.

'이건.......'

태엽궁전이라고 불렀던가. 태엽을 감아 놓은 시간만큼 이계에 머물 수 있는 보물이었다. 톱니바퀴의 작은 한 마디가 하루면 다행이지만, 한 달이나 일 년인 경우가 있어서 주의해서 사용해야 하는 물건이었다. 보통의 용은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기물(奇物)이다. 용왕이나 용족의 수장인 시룡의 경우는 좀 다르지만.

'이 안에 있나.'

아마도 시룡의 짓일 것이다. 인간인 신부를 이곳으로 보내 놓았으니 이 정도 친절을 베푸는 것이 시룡의 성정에 맞았다.

'은룡과 함께 있겠군.'

씁쓸한 눈빛으로 태엽궁전을 내려다보던 용연은 돌아섰다.

은룡 혼자였다면, 다인이 목숨을 잃었다면 은룡은 이 물건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용의 강인한 육체를 가지고 있는 그들에게는 이 정도 황폐한 땅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두 사람은 같이 있었다.

얼어붙은 마음을 감추며 용연은 바위굴을 빠져나왔다. 그녀에게 있어 용연은 제 반려를 공격한 다른 용에 불과할 것이다. 그 사실이 그를 아프게 했다.


공간이 갈라지며 그 틈새로 빛나는 문자가 띠를 형성하며 기어들어 왔다. 마치 한 줄기의 끈처럼 나풀거리며 떠오른 '주술 문장'은 한 방향으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복도를 가로지르며 천천히 움직이던 사역인형도 그를 발견했다. 갸웃거리듯 삿갓을 쓴 머리를 움직이더니 이내 공손히 절을 했다.

주술 문장은 신경 쓰지 않고 복도와 몇 개의 문을 지나 어느 침실 문으로 달라붙었다. 침투할 곳을 찾듯 이곳저곳을 들쑤시던 주술 문장은 이윽고 열쇠구멍으로 들어갔다.

"으흑...... 으흐응...... 아앙......."

질척질척한 질내로 끊임없이 손가락이 들어왔다. 몇 주째 은룡에게 시달린 다인은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상태였다. 녹아내릴 때까지 은룡을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이다 정신을 잃었다. 하루 세 번 식사하게 하고 목욕 시중도 들어 주었지만, 그뿐이었다. 그 외의 시간에는 철저히 은룡의 품에 안겨 쾌락과 음란한 자극 사이에서 몸을 떨어야 했다.

지금도 야릇한 손길로 온몸이 씻겨진 후에 침실로 옮겨진 참이었다. 은룡은 아침 내내 안긴 여운으로 벌름거리는 다인의 비부를 달콤하게 괴롭히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 아흐......으응......."

깊숙이 삽입된 손가락이 관능적으로 꿈틀댈 때마다 비부가 녹을 듯한 자극이 쏟아졌다. 며칠째 반복된 음란한 시간에, 몸을 가누기도 어려웠다. 다리는 힘이 들어가지 않고 손끝까지도 달콤하게 저릿했다.

'더는 안 돼....... 안 되는데....... 너무 기분 좋아.......'

"아하아아앙...... 응읏......."

멍한 얼굴로 신음하던 다인이 무언가 다른 생각을 하는 듯하자 약한 곳을 괴롭혀 왔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데도 허리와 음부만은 제대로 반응하며 펄떡거렸다.

"으음......."

제 손가락에 달라붙어 오물거리는 다인의 은밀한 곳을 보니 참을 수 없어졌다. 은룡이 막 다인의 다리를 벌리고 페니스를 가져가려는데.......

"?!!!"

흠칫 돌아보던 은룡이 이불을 들어 다인의 나신을 가렸다. 대단한 기운은 아니지만, 시룡의 기운이 느껴진 탓이었다.

은룡이 침상에 둘러진 커튼을 살짝 젖히고 내려오자 주술 문장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세 시간 뒤에 공간을 열겠다. 준비하도록.

두 문장이 나오더니 주술 문장에서 빛의 입자가 흩어지며 글자도 사라졌다.

아쉽기 짝이 없었다. 이 '닫힌 공간' 안에서 다인과 호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3시간 뒤라면...... 서두를 필요 없겠군.'

침상으로 돌아간 은룡이 급한 손길로 커튼을 닫았다. 곧 다인의 녹아내릴 듯한 교성이 침실을 가득 메웠다.


3시간 뒤─.

메시지대로 공간이 열렸다. 이미 15분 전에 태엽궁전에서 나온 은룡은 다인을 안아 든 채로 시룡을 기다리고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태엽궁전에 비치되어 있던 것이었다.

"......."

대여섯 걸음 떨어진 자리에는 용연이 서 있었다. 다인은 용연이 무사하다는 것에 안도하고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은룡이 좀 나아지면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은룡이 정신이 들자마자 침실로 데려가고는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만지기 시작해 그런 말을 할 겨를이 없었다.

'안심해도 되는 거겠지?'

여전히 용의 생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며칠 새에 몇 번이나 얼굴을 보았다고 저러는 건지 납득할 수 없다. 그래도 진룡에게 맞서 자신을 숨겨 주려 했음을 기억하기에 다인은 용연이 무사한 것이 기뻤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순순히 물러나 주었다.

"나오시지?"

열린 공간 너머에서 시룡이 말했다. 은룡은 차원의 틈을 넘어 원래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은룡이 빠져나오자 용연 또한 뒤를 따랐다.

"......."

은룡은 힐끗 시룡과 용연을 쳐다보고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자리를 떴다. 다인이 시룡에게 고맙다는 말도 전하기 전이었다. 시룡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뭐......, 혼례 날에 보면 되겠지." 하며 시룡은 용연을 보았다. 용연은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상처는 다 나았냐?"

"......네."

무표정한 얼굴로 답하는 용연에 시룡은 쯧 하고 혀를 찼다. 차라리 이 녀석이 다인에게 선택받았더라면 더 나았을까.

'이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한가하면 술 대작 좀 해 주지?"

거절하지 않을까 싶었으나 용연은 의외로 끄덕였다. 시룡은 씨익 웃으며 용연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7장

신부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 절을 한다 (1)

"그, 그냥 가도 되는 거예요? 도와주셨는데 인사라도......."

"그럴 필요 없다."

은룡은 담담하게 말하며 제 품에 안겨 있는 다인을 보았다. 시룡의 얼굴을 보니 뒤로 미뤄 두었던 것이 떠올랐다.

반려의 계약. 원래 세계로 돌아오면 시룡에게 말하여 계약을 풀기로 했다. 다인도 그렇게 알고 있을 터였다. 알고는 있지만...... 역시나 계약을 깨고 싶지 않았다.

'어?'

평소와 같은 서늘한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는 것을 감지하고 다인이 갸웃했다. 또 뭐가 문제인 걸까? 은룡의 옷자락을 잡은 채로 여전히 안겨 있었던 다인은 은룡의 감정 변화를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시룡이 공간을 열어 그들을 불러들인 곳은 예의 카페 2층이었다. 은룡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시룡을 본체만체하고는 총총히 계단을 내려왔고, 텅 비어 있던 카페 1층에서 공간 이동을 해서 다인이 사는 아파트 단지로 왔다.

그래서 지금 그들은 아파트 단지 입구에 서 있었다. 공주님 안기를 하고 있는 채로.

힐끗거리며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고 다인은 기겁했다.

"내, 내려줘요!"

"왜 그러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은룡이 말했다. 구경하는 사람들 중에는 핸드폰으로 몰래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다인과 눈이 마주치자 안 찍은 척하고는 도망친다.

"사, 사람들이 쳐다보잖아요! 경비 아저씨도 내 얼굴 아실 텐데......, 빨리요!"

"지금 네 몸 상태로는 걸을 수 없을 텐데?"

"그, 그래도 창피하단 말이에요!"

쩔쩔매는 다인에도 은룡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어차피 다 왔잖아. 그냥 견뎌."

"넷?!"

벙찐 얼굴로 은룡을 보았으나 그는 뜻을 굽히지 않을 것 같았다. 거기다 벌써 성큼성큼 단지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으아악!'

다인은 급히 얼굴을 숨기려 은룡의 품에 머리를 박았다. 머리 위로 은룡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으나 당장은 그게 급한 게 아니었다.

'으으......, 공간 이동을 할 거면 집 안으로 하면 되잖아!'

그러나 지금 다인의 집은 은룡이 이것저것 도술을 걸어 놔서 공간 이동을 하기에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다인이 집 앞에 나오는 것까지도 상정하여 복도와 엘리베이터까지 여러 보호 주술을 걸어 놓기까지 했다.

"......803호 아가씨 아냐?"

은룡이 다인을 안고 성큼성큼 걸어가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다인은 히익, 하고 몸을 움츠렸으나 대답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괴상한 목소리를 짜냈다.

"아닙니다."

"아닌 게 아닌 것......."

하다가 헛바람을 들이켜는 소리를 내며 눈을 피했다. 다인을 안고 있던 은룡이 경비 아저씨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분명 단정하고 아름다운 얼굴이었으나 눈을 마주치자 왜인지 오금이 저려 도저히 눈을 마주 볼 수 없었다.

'아이고. 내가 왜 이래......, 귀신하고 맞닥뜨린 것도 아니고.......'

심지어 노려보는 눈도 아니었다. 서늘한 시선이기는 했으나 무심히 보았을 뿐이다.

"아, 아니겠지요. 드, 들어가세요. 허허......."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경비 아저씨는 주춤주춤 물러났다. 곰이나 호랑이와 마주쳤다고 해도 이리 무서울까? 꿀꺽 침 한번 삼키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은룡이 시선을 돌리고 걸어가자, 경비 아저씨는 기어코 자리에 주저앉았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빗자루질을 하던 다른 경비 아저씨가 놀라 달려왔다.

"왜 그래? 저치가 뭐라고 했어?"

"아아아니......."

얼이 빠진 얼굴로 경비 아저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저 혼자 놀라서 주저앉았을 뿐이니까. 그러나 몸은 본능에 충실했다. 귀신이라도 맞닥뜨린 듯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대체 내가 뭘 본 거야?'

제38화

7장. 신부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 절을 한다 (2)

"또!!"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방전된 핸드폰을 충전시키고, 메시지를 확인한 다인은 절규했다. 지난번 본 면접의 결과가 좋았던 탓이다. 바로 이틀 뒤에 출근하라는 문자가 왔는데, 다인은 꼬박 나흘을 은룡과 다른 세계에 갇혀 있었다.

다급히 그 회사에 연락을 넣었으나, 다른 지원자에게 자리가 넘어갔다는 차가운 대답만 돌아왔다.

'으으으으~.'

한껏 좌절하는 다인을 은룡은 측은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또 떨어졌나?"

'누구 탓인데!!!'

한껏 눈에 힘을 주고 노려보았으나 은룡은 픽 웃었다. 은룡에게는 다인의 그런 표정이 그저 귀엽기만 한 모양이었다. 상대는 용이니 어쩔 수 없다. 기 자체가 다르니.

'엄마 메시지나 확인해야지.......'

응시한 회사 문자가 중요해서 엄마에게서 온 문자는 뒤로 미뤘었다. 그 내용을 확인한 다인은 다급히 핸드폰의 날짜를 확인했다.

'허억!'

"으, 은룡!"

새파랗게 질린 다인의 얼굴에 은룡이 다가왔다.

"왜 그러지?"

"어, 엄마가 올 거래요! 집! 집 원래대로 해 놔요!!!"

비명 같은 다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확히 24분 뒤. 예고도 없이 비밀번호가 눌리고 문이 열렸다. 다인의 엄마 홍미옥 여사의 등장에 다인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은룡을 간신히 설득해서 겨우 집을 원래대로 복구해 놨는데, 은룡은 아직 밖으로 내보내지 못한 상태였다.

'으아아악!'

나가라는 말도 못 한 채로 다인은 은룡의 팔을 잡은 채 굳어 버렸다. 태연히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오던 미옥도 흠칫했다. 다인을 보고, 다인의 곁에 선 은발의 미남자를 보고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어...... 으어......."

"어, 어, 엄마......."

기절초풍한 얼굴로 미옥은 은룡을 가리켰다. 그 손끝이 벌벌벌 떨리고 있었다. 다인은 약간 황당해졌다.

'그렇게 놀랄 일이야, 은룡이?'

"지......, 진짜 잘생겼네! 어머나!"

쪼르르 다인의 앞으로 달려와서는, 은룡을 힐끔거리며 다인의 팔을 따악따악 때렸다.

"세상에! 세상에세상에! 이 사람 누구야? 친구야? 어머나어머나어머낫!! 뭐 저렇게 잘생겼대애! 어머, 세상에! 저렇게 잘생긴 사람 첨 봐! 어머어머어머!"

말하는 것을 봐서는 은룡이 한국말을 못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다인은 이 불행한 오해를 바로 잡아야겠다고 판단했다.

"......이 사람 한국말 해."

"헙."

당황한 미옥의 입이 다물렸다. 삽시간에 잘 익은 홍옥처럼 변한 미옥이 다인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왜 진즉 말하지 않았냐는 비난이었다.

'어쩌라고!'

오자마자 감탄사를 남발한 건 미옥이 아니던가. 근데 왜 내 탓이야!

"그, 그래서? 누구? 무슨 관계?"

민망해서인지 미옥은 은룡에게 바로 묻지 못하고 다인을 향해 물었다. 다인은 뭐라 말할까 한순간 고민했다. 반려의 계약도 맺었는데 뭐.......

"그......, 나, 나랑 결혼할 사람."

"어."

미옥의 눈동자가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곁에서 잠자코 얌전히 있던 은룡 또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공간을 나왔으니 몇 주일 내로 시룡에게 가서 반려의 계약을 깨 달라 말해야 한다고 각오하고 있었다.

'진심인가? 아니면.......'

어머니 앞에서만 하는 거짓말일까 봐 초조해졌다. 은룡이 묻듯 다인을 보자 다인은 은룡의 심각한 얼굴을 보고 되레 놀랐다.

'뭐지? 내가 잘못 말한 거야? 반려의 계약 맺었잖아.......'

심각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시선이 뜨겁다. 다인은 저 눈빛이 뭔가를 두고 고민했다. 두 사람의 눈빛 교환에 미옥 또한 뭔가 어긋났음을 눈치챘다.

"뭐야. 우리 딸 혼자 착각한 거야?"

뾰족하게 울리는 미옥의 목소리에 다인은 흠칫했다. 분위기로 보건대, 다인 혼자 착각하도록 '은룡이 만들었다' 여기고 은룡을 꾸짖을 태세였다.

"아닙니다, 어머님. 제가 이제까지 결혼하자고 쫓아다녔는데도 좋은 대답을 듣지 못해서....... 다인 씨가 오늘 이렇게 말해 놀랐을 뿐입니다. 다인 씨만 좋다고 하면 저는 당장 결혼하고 싶습니다."

뜻밖에도 정중한 말이 은룡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가 용왕이고 평소에 사람들에게 하대하는 것을 보아 온 다인은 놀랐다.

은룡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미옥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그, 그랬어어....... 잠깐만." 하고는 다인의 팔을 잡아 은룡과 되도록 먼 자리까지 끌고 왔다. 집이 워낙 좁아서 현관문 앞이 제일 멀었다.

"왜? 저 잘생긴 사람을 왜 거절했는데? 외국인이라서? 실업자야?"

미옥의 표정을 보니 저 정도로 잘생겼으니 외국인이라는 건 문제가 안 돼! 라는 듯했다. 다인은 은룡을 거절했던 이유 등을 떠올렸다.

"그, 그런 것도 있고......, 저 사람 외국서 살아."

"아......."

미옥은 갑자기 내가 쥐고 있던 금덩어리가 알고 보니 도금이었더라~는 표정이 되었다. 저 빼어나게 잘생긴 젊은이를 사위 삼고는 싶지만, 내 딸 외국 가서 얼굴 보기 힘든 건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

'음. 우리 엄마는 표정에서 생각이 다 드러나네.'

다인의 말에 미옥은 마음을 결정한 모양이었다. 정말 눈물 나게 아깝기는 하지만, 내 딸을 일 년에 한두 번도 어렵게 볼 수는 없었다. 어떻게 키운 내 딸인데!

"저기요, 젊은이. 한국에는 무슨 일로 들어왔어요?"

"말씀 낮추십시오, 어머님."

은룡이 부드럽게 말하자 미옥의 얼굴이 붉어졌다. 주책이라는 생각이 들어도 기가 막히게 잘생긴 청년의 친절에 마음이 사르르 풀리려 했다.

"아아니, 무슨. 초면인데 그럴 수야 있나."

'사위 삼을 것도 아닌데.'

저 녹을 듯한 미소에 넘어갈 수는 없었다. 다인이 마음은 어떻게 녹인 것 같지만, 이 결혼은 결사 반대였다.

'어어? 엄마 낌새가 이상하다?'

다인은 다인대로 웃고 있는 미옥의 얼굴을 보고 당황하고 있었다. 저 얼굴은 어디까지나 점잖게 거절하려고 들 때에 나오는 표정이었다.

내가 은룡이 외국에서 산다고 해서?

"다인 씨의 어머님이면 제게도 어머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부디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겉으로 보기야 미옥이 엄마뻘이지만 은룡의 실제 나이는 훨씬 더 많을 터였다. 용이니까. 그 사실을 추측할 수 있는 다인은 은룡의 공손한 태도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은룡한테 저래도 괜찮은 걸까?

"아니, 그래도......."

"괜찮습니다. 말씀 편히 해 주십시오......."

만년 빙하도 녹일 수 있을 것 같은 미소가 저 싸늘한 은룡의 얼굴에서 피어났다. 미옥은 본래의 목적도 잊고 '아아.......'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어머님."

은룡의 입에서 그 마법의 단어가 흘러나오자 미옥의 입이 헤~ 벌어졌다. 그러다 돌연 정신을 차리려는 듯 눈에 힘을 주고 바로 섰다. 그런데도 은룡을 보는 얼굴이 풀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그, 그러면 내가 일단 엄마뻘인 건 맞으니까......."

'아뇨. 저 사람 우리 할아버지보다도 나이 많다고요!'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진실을 입에 머금은 채로 다인은 두 사람의 눈치를 봤다. 은룡의 태도로 보아 미옥을 완전히 함락시켜 결혼 허락을 받으려는 것 같았다.

"서서 말하기도 그러니까, 우선 앉자."

미옥이 방석을 찾듯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은룡은 익숙한 듯 장롱 속에서 방석을 꺼내 미옥의 자리에 깔아 주었다. 미옥은 그 친절보다도 능숙하게 방석을 꺼내는 모습이 상당히 거슬렸다.

'설마 이것들 동거하는 건 아니겠지?'

경계하면서 재빨리 돌아본 집 안에는 남자 물건은 안 보였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화장실로 쳐들어가 칫솔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다인이 잽싸게 치워 두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한국은 왜 들어왔다고?"

다인은 당황한 얼굴로 은룡을 보았다. 직업을 확인하겠다는 것 같은데......, 용왕이라는 직업을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잖은가!

"투자 계약 건으로 들어왔습니다."

"투......, 투자?"

미옥이 당황하며 다인을 보았다. 다인은 해 줄 말이 없었으므로 모른다고 고개를 저었다. 은룡이 선선히 설명했다.

"L리조트에서 초청해 와서......, 제법 큰 건이라 사람을 보내기보다는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이 나라는 처음도 아니고요."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다인은 슬금슬금 은룡 옆으로 다가가서 옆구리를 쿡 찔렀다. 미옥을 경계하듯 바라보며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투자라니, 그건 뭐예요?"

거짓말이라고 아무 말이나 막 하면 곤란했다. 미옥이라면 진짜로 확인해 볼 사람이었다. 은룡은 다인에게 머리를 기울였다.

"내가 투자한 건 맞으니까. L리조트는 시룡이 소유한 리조트 체인이야."

L리조트는 전 세계적으로 지부를 가지고 있는 리조트 체인이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독특한 명소였으나 특히나 자연재해가 묘하게 비껴간 곳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그런 불공정함이 있었나.......'

태풍도 해일도 그 리조트에는 묘하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그 리조트로 대피해서 목숨을 건졌다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다.

'나중에 해외로 여행가면 거기에 머물러야지.' 하고 다짐하는 다인의 앞에서 미옥은 당황한 듯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그, 그러니까 투자회사 임원이라는 얘기야?"

"아뇨. 제가 투자를 합니다."

다시 벙찐 얼굴이 되는 미옥에게 은룡은 쐐기를 박았다.

"개인 투자자입니다."

제39화

7장. 신부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 절을 한다 (3)

개인 투자자인데 회사의 초청을 받았다? 이건 1, 2억 투자가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미옥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물었다.

"어, 얼마나 투자했는데......?"

"우선 50억 투자 예정이었습니다만......, 생각보다 괜찮아서 80억까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치 커피 메뉴를 고르듯 담담한 대꾸에 미옥의 턱이 떨어졌다. 허억!

'재벌! 얘, 재벌이다! 말로만 듣던 재벌! 사고 쳐서 뉴스에 뜰 때 말고는 재벌 못 봤는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던 미옥이 다인의 왜 저러시지? 하는 눈길을 받고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은룡은 이때까지도 달콤한 눈빛을 흘리며 예의 바른 미소를 띠고 있었다.

"부, 부모님은 강녕하시고?"

'거기서 부모님 얘기가 왜 나와?'

은룡의 얼굴에 처음으로 약간 난처한 표정이 실렸다.

"그게......."

자연스레 긴장하는 미옥에게 은룡은 송구스럽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일 년에 한두 차례씩밖에 연락을 주지 않으셔서...... 잘 모릅니다. 두 분이 오지로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시거든요."

'얘, 시월드도 없나 봐.'

쿠궁! 한 얼굴로 갈등하는 미옥을 보며 다인은 힐끗 은룡을 쳐다보았다. 싱긋 웃고 있는 얼굴이 뭔가 알고 저러는 것 같다.

"하, 하지만 한국에는 오래 머물지 않을 거 아냐."

유혹을 애써 끊어 내듯 미옥이 말했으나 은룡은 부드럽게 미옥의 마음을 붙잡았다.

"투자처를 확인하는 일로 일 년에 3개월 정도만 한국을 비울 겁니다. 제가 다인 씨를 많이 사랑해서 그 기간 동안 데려갈 것은 맞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다인 씨와 같이 한국에 있겠습니다."

허억. 천연덕스러운 은룡의 거짓말에 미옥은 이미 넘어간 눈치였다. 일 년에 3개월이라니. 어차피 곁에 끼고 살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3개월 정도 못 보는 건 견딜 수 있었다. 저렇게 부자라니 영상 통화는 되겠지.

바들바들 떨리는 손이 다인의 팔을 잡았다. 미옥은 은룡을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잠깐 다인이랑 얘기 좀......."

"천천히 말씀하십시오."

어디까지나 예의 바른 구혼자의 태도를 버리지 않은 채 은룡이 말했다. 미옥은 얼른 다인을 데리고 다시 현관 앞으로 갔다.

"저 사람 하는 말 다 진짜야? 믿을 수 있어?"

미옥의 추궁에 다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은룡의 모든 말이 진실은 아니라 해도 그가 부자이고 영향력이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무려 용왕이 아닌가.

다인이 보증하자 미옥의 눈이 번쩍였다.

"해라, 이 결혼. 엄마가 허락한다!"

"어......, 이렇게 바로?"

미옥은 은룡을 향해 다정한 눈길을 보내며 다인에게 속삭였다.

"기회 있을 때 잡아야지. 네 평생에 이런 기회가 다시 있을 것 같아? 아빠는 내가 설득할 테니까 아무 걱정 말고!"

외국인이란 사실은 여전히 불안했다. 이성이 은룡이 말한 것들이 거짓일지도 모른다고 경고해 왔다. 그러나 은룡이 다인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거짓이 없었다.

사랑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진득한 사랑일수록 눈에 보인다. 시선에, 손끝에, 목소리에......, 모든 것에서 애정을 가늠할 수 있고 볼 수 있다. 숨길 수 없는 것이야말로 사랑이었다.

미옥은 은룡이 평범한 사람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장모인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유순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그의 눈빛이며 몸에서 풍겨 오는 기백이 여느 젊은이들과는 달랐다. 그녀는 단순히 그것이 성공한 사람들 특유의 영향력이라고 생각했다. 일종의 카리스마 같은.

그런 사람이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생판 처음 보는 자신에게 공손하게 굴고 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다인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다인이 얼핏 보이는 호감에 가까운 애정보다도, 저 은발의 청년은 수십 배는 더 다인을 사랑하는 듯했다.

"그런데......."

미옥이 진지한 얼굴로 다인을 보았다.

"저 청년 이름이 뭐라고 했지?"


"인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머님. 진은룡이라고 합니다."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는 은룡을 미옥은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저걸 언제 시집보내나 싶었던 다인이 이렇게 번듯한 신랑감을 물고 있을 줄이야. 외국인이라는 게 좀 걸리지만, 세상에 완벽한 사윗감이 어디 있겠는가!

"근데......, 진은룡? 이름이 좀 특이하네?"

"하, 한국계라서 그래."

옆에서 다인이 잽싸게 거들었다. 그러나 미옥은 갸웃하는 얼굴이었다. 듣고 보니 동양적인 구석이 있는 것도 같은데...... 솔직히 은룡의 얼굴은 예쁘고 남자답다는 걸 제외하면 어느 인종과도 비슷해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머뭇거리는 은룡에 다인이 홱 미옥을 쳐다보았다.

"미국."

"너는, 너한테 물어봤니?! 왜 자꾸 네가 대답하고 난리야!"

"엄마야말로 처음 본 사람한테 웬 질문 세례야! 사람 난처하게!"

발끈하는 다인에 미옥은 눈을 부라리고는, 은룡을 향해 부드럽게 물었다. 세상 다시없는 인자한 표정이었다.

"난처했는가, 진 서방?"

"아닙니다, 어머님."

진 서방이라는 말에 다인은 오싹한 표정이었다.

"언제 봤다고 진 서방이야?"

"오늘 봤으니까. 내 마음에 들었으니까 진 서방이다! 콱 반대할까 보다. 아까부터 톰방톰방......."

하다가 문득 다인을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근데 너 왜 이 시간에 집에 있어? 너 없는 새 청소하고 근처 마트에 들러서 반찬 좀 만들어 놓으려고 했더니......."

"어, 어어......, 몸이 안 좋아서 월차 냈어. 으, 은룡도 그래서 와 있는 거야."

"몸이 안 좋다고?"

의심의 빛이 한층 짙어진 눈으로 미옥은 다인을 보았다.

"몸이 안 좋은 것치고는 혈색이 너무 좋은데......, 피부도 반지르르한 것이 꼭......."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다인은 긴장했다. 들켰나? 미옥은 팍 인상을 찌푸렸다.

"너, 데이트 하려고 월차 낸 거 아냐? 맞지?"

"어? 어어?"

다가온 미옥이 철썩 하고 다인의 팔을 쳤다. "으이그! 이 철없는 것아! 그러다 회사 잘리면 어쩌려고....... 좀 힘들게 들어간 회사야? 나이를 먹어도 이건......." 하다가 어차피 회사 그만두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은룡의 스케줄대로 해외로 쫓아다니려면 회사를 다니기는 어려울 거였다.

'그래도 사람이 힘이 있으려면 일을 하는 게 좋은데. 하는 수 없지.......'

미옥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는 일어났다. 다인은 반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미옥을 쳐다보았다.

"버......, 벌써 가게?"

홱 돌아서 다인의 얼굴을 돌아본 미옥이 못마땅한 얼굴로 다인의 뺨을 잡았다.

"말로만. 좋냐? 아주 연애한다고 얼굴이 번드르르해져서는....... 으이그."

뺨을 놓고는 톡톡 두드리고는 은룡을 보았다.

"우리 딸, 회사생활 성실하게 했는데. 이렇게 월차까지 내고 데이트하는 거니까 확실하게 책임져야 해, 자네. 알겠지?"

"알겠습니다."

"혹여 결혼 승낙 받았다고 여기서 자고 가지는 말고. 나 친구들 만나고 여기로 와서 자고 갈지도 몰라. 다인아, 엄마 알지? 불시 기습 방문한다!"

"하하......."

이미 여러 날 은룡과 같이 밤을 보냈던 다인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엄마가 아파트 사람들과 얘기하면 난 죽었다. 사망이야.'


미옥을 보내고 다인은 겨우 한숨을 돌렸다. 아직 몸이 성치 않았기에 멀리 배웅할 수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꼴을 미옥에게 보일 수 없어서 인내와 끈기로 버텼지만 그도 한계였다. 돌아오는 길에는 은룡이 안아 올리는 것에도 뭐라 불평하지 못했다.

'쪽팔려. 아파트에 소문 다 났겠다.'

일이 되려고 하니 한꺼번에 휘몰아치는 기분이었다. 다인은 은룡의 품에 안긴 채로 힐끗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미옥에게 결혼할 사람이라고 소개시켰는데도 은룡은 이렇다 할 반응이 없다. 뭔가 물어볼 법도 하지 않나?

엘리베이터가 8층에서 멈췄다. 벨이 울리자 은룡은 다인을 안아 든 채로 움직였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익숙한 실내가 보였다. 요 며칠 사이 은룡이 도술로 바꿔 놓은 내부에 길들여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다인에게 가장 친숙하고 현실적인 풍경은 이것이었다.

'몇 주 만에 보는 건데도 몇 년은 된 것 같아. 여전히 진짜 좁다.'

안으로 들어온 은룡은 다인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원래대로인 다인의 월셋집은 침대도 없고 바닥에 방석이 전부였다. 물론 이불 정도는 갖춰 놓고 있지만.

"다인, 내게 해야 할 말이 있지 않나?"

"어, 어떤 거요?"

"왜 나를......,"

긴장해서인가, 기대했기 때문인가. 목이 멘다는 사실에 은룡 본인도 약간 당황했다. 그는 목을 가다듬고 다시 물었다.

"결혼할 남자라고 소개했지?"

"바, 반려의 계약 맺었으니까? 저......, 결혼식은 안 하는 거였어요?"

"아니. 할 거다. 난 네가 시룡에게 부탁해서 반려의 계약을 깰 거라고 생각했다. 아닌가?"

반려의 계약을 맺을 무렵 은룡이 그런 말을 하기는 했다. 그러나 다인은 거기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은룡을 쫓아 이세계까지 들어온 것은 일시적인 기분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은룡의 곁에 있고 싶고, 그의 힘이 되고 싶은 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걸.......

'어떻게 말해!'

가뜩이나 마주 보고 있기만 해도 떨리는 용모인데, 이렇게 지척에 앉아서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벌써 한 달도 넘게 매일같이 안기고 있는데도 그랬다. 거기다 그 말을 하면 어떻게 될지.......

'이번에야말로 침실 밖으로 못 나갈지도. 한...... 일주일쯤?'

"다인?"

고개를 기울이며 시선을 맞추려는 은룡의 파란 눈동자가 보였다. 그의 오뚝한 콧날과 고혹적인 선을 그리는 입술, 마음만 먹으면 머릿속을 흐물흐물하게 녹여 버릴 수 있는 목소리가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헉. 자각하고 나니 더 가슴이 떨려 왔다. 어떻게 이제까지 이 사람 앞에서 태연할 수 있었을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숨쉬기가 버겁다.

다인은 당황한 얼굴로 홱 고개를 돌렸다. 도저히 은룡과 눈을 맞추고 얘기할 수 없다. 심장이 주체 못 할 만큼 뛰어 죽을 것 같았다.

"저, 저리 가요!"

제40화

7장. 신부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 절을 한다 (4)

"뭐?"

은룡의 잘생긴 얼굴이 찌푸려졌다. 문제는 찌푸린 얼굴조차도 매력적이라는 데 있었다. 다인은 거의 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원래 잘생긴 거야, 내가 좋아하게 돼서 더 잘생기게 보이는 거야!?'

아무튼 누군가 심장에 발길질을 해대는 기분이라, 다인은 고개를 돌린 채로 방구석으로 달아나려고 했다.

'심장 폭행!'

"......대체 왜 이러는 거지?"

방구석에 손끝이 닿기도 전에 은룡의 손에 붙잡혔다. 순식간에 끌어당겨져 품에 갇힌 다인은 새빨갛게 물들었다.

'히이익!'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기세였다. 대체 그동안 어떻게 이 남자한테 이런 짓 저런 짓 당하고도 멀쩡할 수 있었던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인은 눈을 질끈 감은 채로 고개를 돌렸다.

'열이 있는 건가?'

새삼스러워도 너무 새삼스러웠으므로 은룡은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새빨갛게 물든 다인의 얼굴을 보고는 이마를 짚어 보았을 뿐이다. 약간...... 뜨끈하기는 했으므로 다인의 몸 상태를 의심했다.

'그럴 리가. 반려의 계약을 맺으면 잔병치레도 사라질 텐데?'

감기는 물론 여러 전염병에 걸리는 일도 없었다. 칼로 그어져도 생채기조차 안 나게 되는 것이 반려의 몸이었다. 용과 살을 맞대고 부대끼며 살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했다.

'이상하군. 표정은 나쁘지 않은데?'

혹시 자신이 모르는 병이 생긴 것은 아닌가 싶어 은룡은 다인의 옷을 들추기 시작했다. 다인은 은룡의 손이 제 피부를 더듬자 애먼 것을 상상해 버렸다.

"그, 그런 거 아니에요!"

"......뭐가 아니라는 거지?"

다인의 피부는 따뜻했지만 얼굴만큼은 아니었다. 체온보다 살짝 높은 정도? '얼굴만 저렇게 뜨거운 병이 있을까......?' 하고 바라보던 은룡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푸른 눈동자가 한층 짙어지며 뚫어질 듯이 다인을 쳐다보았다.

숨이 막히고 떨려 다인은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린 상태였다.

"다인."

그윽한 속삭임에 다인의 몸이 움찔 떨었다.

"이쪽을 봐."

"시, 싫어요......."

울 듯한 목소리에 담긴 부끄러움과 떨림, 망설임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를 깨달은 은룡은 목이 탔다. 몸이 홧홧해지며 그의 심장도 다인의 것만큼이나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목구멍이 긴장으로 말라붙었다. 마른침을 삼키며 은룡은 다인을 바싹 품으로 당겼다. 절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것인지 고개를 돌리고 있던 다인이 질끈 눈을 감았다. 그 표정과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의 속눈썹까지도 가까이 들여다보고 있던 은룡은 잠시 멍해졌다.

'이건.......'

'설마.......' 하고 떠오른 생각에 쌓아 왔던 인내심이 와르르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다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언제 인내했느냐고 항의할지 모르지만, 은룡의 입장에서는 그랬다. 하루하루 인내하고 또 참는 심정으로 견디고 있었다.

"다인."

턱을 매만지던 손끝이 다인의 입술로 올라왔다.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것처럼 다인의 입술에도 힘이 들어와 있었다. 강제로 빼앗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녀니까. 내가 사랑하는 여자니까.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키스도 허락해 주지 않는 건가?"

"그건......."

머뭇거리며 벌어진 입술로 은룡의 입술이 포개졌다. 뜨거운 입술 감촉에 품에 안긴 다인이 펄쩍 뛰는 것이 느껴졌다. 은룡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핫......."

당황한 듯 떨리는 입술을 핥으며 천천히 혀를 밀어 넣었다. 점막이 그 여느 때보다 달고 감미로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미끄러지듯 파고들어 온 혀끝이 농밀하게 감기며 애무하듯 다인의 혀를 희롱해 왔다.

"으흣......."

바싹 긴장하고 있으니 더 느낄 것이다. 숨이 막히고 몸이 떨리고...... 모든 신경이 내게 쏠려 있으니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되겠지.

은룡의 예상대로였다. 평소보다도 느끼는지 다인의 얼굴이 붉어졌다. 뒤섞인 타액을 마시도록 유도하며 은룡은 다인의 혀를 음란하게 빨아들였다. 일부러 젖은 물소리를 더 내며 쪼옥거리며 점막의 약한 곳을 핥았다.

"음흣....... 으흑, 응...... 으흑......."

품에 안긴 다인이 몸을 벌벌 떨며 입술을 내어 주고 있었다. 은룡의 혀를 깨물지도, 그렇다고 입을 다물지도 못한 채로 허덕였다.

'너무 귀여운데.'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참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브레이크가 듣지 않게 되어 버린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은룡은 다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순간에 손을 놓아 버린다는 건 멍청이나 할 법한 짓이었다.

"후아....... 읏......."

쪼옥 하고 입술을 빨리며 다인은 부족했던 숨을 몰아쉬었다. 질끈 감았던 눈은 촉촉하게 젖은 채로 은룡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입 맞추는 사이 은룡이 그녀를 바닥에 눕힌 탓이다.

"이제...... 겨우 나를 봐 주는군."

녹아내릴 듯한 미소를 흘리며 은룡은 다인의 손을 잡아 입 맞췄다. 손끝에 젖은 입술을 가져가고는 어느새 풀려 버린 다인의 바지를 잡았다. 어? 옷의 이곳저곳이 풀린 줄도 몰랐던 다인의 눈이 커졌다.

은룡은 야릇한 시선을 보내며 다인의 바지를 벌리고 천천히 끌어당겼다. 당황한 다인이 몸을 떨었다. 지금 상태에서 은룡에게 안길 수 없다. 심장이 터져 버릴 것이다.

"으, 으은룡!"

"음?"

이미 허벅지 아래까지 끌어내려진 바지가 종아리 아래로 내려왔다. 벗기는 손길도 관능적이었지만 핥는 듯한 시선도 무척이나 야했다. 오늘따라 색기가 충만한 은룡에 다인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지, 지금은 좀......."

"어째서?"

달콤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어쩐지 놀리는 듯했다. 그러나 다급한 다인은 그것을 지적할 여유조차 없었다.

"이, 이계에서 잔뜩 했잖아요! 그러니까......."

"부족해. 시간제한이 있어서 만족하지 못했어."

냉큼 대답하는 말에 다인은 얼이 빠졌다. 이쪽 시간으로는 나흘이었지만, 그쪽에서는 거의 2주를 보냈다. 그 시간을 은룡은 정말이지 다인의 온몸 구석구석까지 탐하며 충실하게 보냈다.

'거, 거짓마아아아알!!!'

머뭇거리는 사이 이번에는 블라우스가 벗겨졌다. 정신 차리지 못하는 사이 벌써 단추를 다 풀어서 오래 공을 들일 필요도 없다. 다인으로서는 은룡의 손이 닿기만 해도 떨려서, 블라우스를 벗기는 그의 손을 막을 수가 없었다.

"으, 은룡!"

"음?"

쳐다보는 시선에서 그야말로 꿀이 떨어질 듯했다. 이만큼 기분이 좋은 은룡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바, 방이요! 아직 도술을 걸어 놓지 않아서......."

"그렇군."

씨익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은룡은 브래지어 훅을 풀었다. 출렁 흔들리듯 튀어나온 유방에 야릇한 시선을 보내며 브래지어도 벗겨 냈다.

"널 잔뜩 탐식한 후에."

'으윽.'

상상이 되어 더 미칠 것 같았다. 양팔로 가슴을 가리며 쩔쩔매는 다인을 은룡은 그야말로 행복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단숨에 달려들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먹어치우고 싶었지만, 이 순간을 오래도록 음미하고도 싶었다.

은룡의 손끝이 팬티 속으로 들어오자 다인은 다급해졌다.

"여, 여기선 안 돼요!"

다인의 외침에 이미 엉덩이 아래까지 팬티를 끌어내렸던 은룡이 멈칫했다.

"어째서지?"

"그......, 그건......."

이미 혼란과 떨림에 뒤범벅되어 아무 생각할 수 없었던 다인은 머릿속에 흘러 다니는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여기서 하면....... 지, 진짜 같아서......!!"

"......뭐?"

와그작 일그러지는 은룡의 표정에 다인은 흠칫했다.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했지? 은룡의 파란 눈이 그야말로 무섭게 타오르고 있었다. 다인은 벌벌 떨면서 은룡을 보았다. 무서워서 떠는 게 아니라 두근거려서!

'뭐지? 뭐지? 내가 뭔가 잘못 말했나?'

"진짜 같다고......? 이제까지는 가짜 같았다는 건가?"

무섭게 을러대는 은룡의 목소리에 다인은 눈을 깜박거렸다. 그게 화낼 만한 말인가?

"아....... 조, 조금?"

밤을 보내는 상대가 용이기도 했고. 이제까지 비현실적인 장소에서만 안겼다. 주향의 궁전이라든가, 도술로 바꿔 놓은 침실이라든가, 이세계라든가.......

'아. 그러고 보니 계속 그랬네?'

물론 욕실에서 안길 때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새삼 익숙한 자신의 월셋집에서 은룡에게 안기려니 부끄러운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 상태로는 어디서든 떨려서 못 해!'

"그렇다면......."

으득 하고 은룡이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움찔하며 쳐다보니 은룡의 푸른 눈동자가 무섭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어라? 나 데드플래그 밟은 듯?

"지금부터 그 몸에, 내가 현실임을 새겨 주면 되겠군?"

"네......?"

얼빠진 얼굴로 쳐다보았으나 소용없었다. 이미 허벅지를 반쯤 내려온 팬티가 그대로 종아리와 발목을 통과하여 빠져나갔다.

"자아......, 어떤 체위가 가장 네 머릿속에 생생히 새겨질까?"

입술을 핥으며 음산하게 속삭이는 모습이 왜 이다지도 섹시해 보이는지. 다인은 꿀꺽 침을 삼키며 은룡을 쳐다보았다.

"아, 아무 체위도 아닌데요!"

"호오~ 이제까지 내가 해 준 것들이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소린가?"

눈을 번뜩이며 은룡이 말하자 다인은 이번에는 진심으로 소름이 돋았다. 은룡이 진짜로 화났다는 게 보였다.

"아, 아닙니다! 전부 기분 좋았습니다!"

"흥. 늦었어." 하고 말하며 은룡이 다인의 종아리를 잡았다. 크게 좌우로 벌어진 다리에 다인은 무심코 꺄악! 하고 비명을 울렸다. 다인의 다리를 한껏 벌린 은룡이 음란한 시선으로 허벅지 사이를 응시했다.

"......뭘 상상했기에 이렇게 젖은 거지?"

제41화

7장. 신부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 절을 한다 (5)

'아앗!'

새빨갛게 물들었던 다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은룡에게 키스 받으며 느낀 것이 고스란히 흔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당황하여 다리를 오므리려 했으나 허벅지를 움찔거린 것이 전부였다.

"보, 보지 말아요!"

"이것보다 더 음란한 순간에도 보였잖아. 아아~ 보기만 한 것도 아니었군. 네가 녹아 흐트러질 때까지 핥기도 했었지."

하며 은룡은 입맛을 다셨다.

"지금도 같은 맛인가?"

"뭣?! 와앗!"

은룡이 바닥에 주저앉더니 다인의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버둥거리던 다리가 자연스레 앞으로 미끄러지면서 엉덩이만을 높이 들어 올린 음란한 자세가 되었다.

"에엣, 잠......, 아아앗!"

다인의 허리를 쭉 잡아당긴 은룡이 그녀의 엉덩이를 자신의 가슴께에 기대게 했다. 그러고는 바로 시야 아래에 있는 다인의 은밀한 곳을 들여다보았다.

'우와아아아아앗!'

경악과 수치와 떨림에 다인은 심장이 멎을 뻔했다. 은룡이 손가락으로 젖은 꽃잎을 벌리고 씰룩거리는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자, 자자자잠깐!"

"지금 버둥거려서 자세가 흐트러지면......."

은룡이 음산하게 경고했다.

"하루 종일 빨 거야."

"히끅!"

딸꾹질이 나왔다. 딸꾹질을 막은 것도 아니건만, 다인은 반사적으로 제 입술을 눌렀다. 다인이 얌전해지자 은룡은 심술궂게 웃었다.

"착한 아이로군. 그대로 즐기고 있어. 네가 맛있어하는 곳은 전부 알고 있으니."

"힉."

뜨거운 숨결이 젖은 꽃봉오리를 덮쳤다. 느끼지 않으려고 했건만, 잔뜩 긴장된 비부는 그 자극만으로도 벌름벌름 격렬하게 수축했다.

"......유혹하는 건가?"

"그, 그런 거 아니......, 아앗!"

아니긴, 하고 퉁명스럽게 내뱉으며 은룡은 갈라진 틈새로 혀를 밀어 넣었다. 두꺼운 혀가 파고들어 오는 감촉에 발끝에 힘이 들어갔다.

"아...... 아아......!"

혀가 젖은 속살을 가르며 깊숙이 파고들어 왔다. 손가락이나 페니스와는 다른 음란한 감촉에 몸이 벌벌 떨렸다.

"으음......."

신음하느라 은룡의 혀가 달싹여 몸이 파드득 놀랐다. 은룡은 다인이 움찔거리는 것을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평소에도 해 주었을 텐데? 지금은 뭔가 다른가?"

허벅지 안쪽의 부드러운 피부를 쓸며 은룡이 말했다. 그가 말할 때마다 혀가 젖은 속살을 쓸어 다인은 미칠 것 같았다. 그의 말이 맞다. 이런 체위도 처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에는 이 정도까지 은룡을 의식하지 않았었다.

'그때보다 지금이 몇 배는 더 기분 좋은 듯한.......'

그때도 호감이 있고 좋아하기는 했으나 지금은 달랐다. 좋아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평생을 같이 해도 좋을 정도로.......

"흐읏....... 앗......."

간질간질하면서도 부드러운 자극이 젖은 속살을 넓혀 간다. 은룡은 혀로 원을 그리듯 깊숙이 밀어 넣은 상태에서 질벽의 이곳저곳을 빨았다. 그에 반응하듯 속살이 꾸물꾸물 달라붙어 오자 혀끝에 힘을 주어 긁어내렸다.

"아흑!"

쑤욱 빠져나갔다가 다시 느리게 들어오는 감촉에 안달이 났다. 다인은 홧홧하게 데워진 숨결을 내뱉으며 움찔거렸다. 더 강하게, 격렬하게 핥아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그 말을 은룡에게 할 수는 없었다.

'부끄러워 죽어 버릴 거야.'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세를 흐트러트리지 않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제 다리 사이로 시선을 주어 자신의 부끄러운 곳을 핥는 은룡을 보는 것. 그것뿐이다.

'부끄러워....... 부끄러운데....... 기분 좋아.'

사랑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은룡은 화가 난 순간에도 다인을 느끼게 했다.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정말 좋아.......'

꽃잎에 물이 들듯이 뜨거운 감정이 피어났다. 왈칵 밀려오는 샘물에 순식간에 온몸이 젖어 버린 기분이었다.

'좋아해.'

마음속 한구석으로 인정해 버리자 쾌락에 고삐가 풀렸다. 이제까지 누르고 있던 것을 알기라도 한다는 듯이 맛봐 버렸다. 지나치게 달콤한 음란함을.

"아."

깊숙이 삽입된 혀가 민감한 곳을 핥았다. 몸이 바르르 떨리며 비부가 수축하자 달래듯 찌걱거리며 핥아 벌렸다. 녹아내릴 듯한 음란한 감촉에 다인은 달아올랐다. 아직 손대지도 않은 유두가 빳빳하게 일어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응, 으흑......."

몸이 붕 떠오르고 의식이 튀려고 했다. 이미 수백 번도 더 느낀 감각이기에 다인은 이게 무엇인지 알았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다인은 고개를 흔들며 이를 누르려 했다. 그러나 한 번 놓친 고삐는 다시 다인의 손에 잡혀 주지 않았다.

"아, 안 돼......!"

쾌락에 들뜬 목소리로 다인은 신음했다. 그녀가 엉덩이를 튕기며 수축하자 은룡이 얼른 혀를 뽑았다.

"아, 아아, 아앗......!"

움찔움찔 허리를 튕기며 몸이 가볍게 도달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은룡의 눈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으로 느껴 버리고 말았다. 수치심에 눈물이 한가득 고여 버렸다. 은룡은 어쩐지 홀린 듯한 눈으로 다인을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숙였다.

씰룩씰룩 수축하는 젖은 밀부로 혀가 강하게 밀고 들어왔다.

"히익!"

지금은 안 돼! 그러나 말은 형성되지 못하고 신음만 흘러나왔다. 막 도달한 탓에 몸이 너무 민감해졌다. 그러나 은룡은 봐주지 않고 몰아쳤다. 혀가 범하듯이 쑥쑥 들어왔다. 손가락보다는 두껍지만 짧은 그것이 탐욕스럽게 꿀을 빨며 젖은 속살을 문질러 벌렸다.

"흐악! 학....... 아아앗! 아흑......."

참지 못하고 몸부림쳤으나 은룡에게 허리를 잡혀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은룡은 황홀한 듯 눈을 빛내며 격렬하게 혀를 밀어 넣었다. 깊숙이 넣어 질벽을 핥고 빨아대는 놀림에 다인은 좌우로 크게 벌어진 다리를 버둥거렸다.

"으응......응응! 아앗, 아아앙....... 그만......, 미칠 것......, 아아아앗!"

'츄르릅!' 하고 격렬하게 애액을 빨자 의식이 튀는 듯했다. 눈앞으로 반짝거리는 빛이 점멸하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또다시 절정을 맛보는 줄 알았으나 은룡은 멈추지 않았다.

"흐응....... 아아앙......."

허덕이며 다인은 쾌락의 눈물을 흘렸다. 은룡의 타액으로 범벅이 된 비부가 다시 혀로 범해지고 있었다.

"아......아아......."

머릿속까지 핥아지는 듯한 끈적끈적한 자극에 몸이 떨렸다. 음란한 감촉에 얼굴이 달아오르고 온몸이 뜨거워졌다.

"으으응......."

흘러넘칠 듯한 애액이 다인의 배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아......아......, 아학......."

한 팔로 다인의 자세를 고정시킨 은룡이 쑤욱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혀로는 닿지 않던 곳이 괴롭혀져 다인은 몸을 떨었다. 아까의 자세와 달라진 점은 몸이 더욱 밀착되어 은룡의 품에 안겨 있는 것. 그것뿐이었다.

은룡이 한 팔로 다인의 허리를 안아 부담은 없었다. 단지 여전히 죽을 만큼 창피했다.

한 손이 자유로워진 은룡은 애액으로 범벅이 된 꽃술을 빨며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혀로는 닿지 않아 안타까웠던 곳을 자극하며 다인을 한껏 녹였다.

"응, 으으응....... 아앙......."

꽃눈째로 꽃술까지 빨려 다인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미 절정을 맛본 것도 여섯 차례가 넘었고, 일곱 번째도 금방 올 것 같았다.

"아아앗!"

퍼들, 허리를 떨며 다인은 황홀경을 맛보았다. 깊숙이 삽입된 채인 은룡의 손가락을 오물거리는 속살에 은룡의 입가가 느슨해졌다.

"아아....... 아아......."

손가락이 쑤욱 뽑히자 애액이 주르륵 흘렀다. 은룡은 다인의 엉덩이 사이로 흐른 애액을 맛보며 제 옷을 벗기 시작했다. 흥분한 얼굴이, 현실적인 섹스를 해서 다인에게 각인시키겠다는 원래의 목표는 완전히 잊은 듯했다.

다인을 내려놓은 은룡이 서둘러 나머지 옷을 벗었다. 바지를 벗은 은룡의 페니스가 음란하게 까딱거리는 것이 보였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모습이 자못 위협적이다.

"힉."

이미 쾌락에 녹은 몸이었지만 그 광경을 보니 전율이 일었다. 애무에도 이 정도로 느끼는데 은룡의 것이 들어오면.......

은룡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푸른 눈동자에서 욕정이 이글거렸다. 다시 다인의 허리를 들어 올린 은룡이 자세를 잡았다. 비부에 페니스의 선단을 끼우고는 다인을 내려다보았다.

"이쪽을 봐야지."

만족한 듯한 목소리가 얄미웠다. 쾌락으로 젖은 눈매로 흘겨보자 은룡이 낮게 신음하며 다인의 허벅지를 하나씩 나눠 쥐었다.

"허리를 세워. 받쳐도 좋고."

욕정으로 가득 찬 음성이 다인을 흥분시켰다. 다인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끼면서도 제 허리를 양손으로 받쳤다. 은룡이 그 모습을 보고 훗 하고 웃더니 페니스를 쑤욱 밀어붙였다.

"흐아아아아!"

듬뿍 젖은 비부가 크게 벌어지며 안쪽까지 넓혀졌다. 틈새로 애액이 새어 나오며 굵직한 페니스가 점점 더 먹혀 들어가는 광경이 똑똑히 들어왔다.

"아아앙....... 싫어어......."

부끄러움에 시선을 피하려 눈을 가리자 꽃술을 꼬집혔다. 놀라 쳐다보니 은룡이 심술궂은 얼굴을 했다.

"제대로 봐야지. 보지 않으면 하루 종일 이렇게 안을 거야."

"후앙......, 하지만....... 아응......."

뿌리까지 삼켜지며 입구가 점점 더 넓게 벌어졌다. 동시에 가장 깊숙한 곳까지 침전한 페니스의 선단이 그곳을 쿡 찔렀다.

"흐윽......."

표정을 흐리며 다인은 제 비부에 깊숙이 꽂힌 은룡의 페니스를 쳐다보았다. 음부의 속살이 벌써부터 오물오물 경련하는 모양새가 빨리 움직여 달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 몸을 떨며 은룡을 쳐다보자니 심술궂은 표정이었다.

아......, 벌써 갈 것 같아.

순간 은룡의 페니스가 쑤욱 올라왔다. 소실감에 달콤한 전율이 일었다.

"히익, 흐앗?!"

선단만을 남겨 놓고 빠져나온 그것이 단숨에 밀려들어 갔다. 허리가 그 무게와 압력으로 짓눌리려는 것을 견디고 있자니 점점 빠르게 찔러대기 시작했다.

"흑! 아앗......, 앗, 아!"

밀어붙이는 힘을 견디지 못하고 허리를 놓칠 듯하자 붙잡힌 허벅지가 끌어올려졌다. 은룡이 다인의 허벅지를 들어 올린 채로 격렬하게 허릿짓을 했다.

제42화

7장. 신부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 절을 한다 (6)

"학! 흐악! 아학! 앗, 아앙......."

밀어붙여질 때마다 가득 차 있던 애액이 넘쳐흘렀다. 빠져나올 때마다 젖은 속살이 달라붙어 음란하게 번들거리는 광경이 야릇했다. 다인은 홧홧한 얼굴을 감추지도 못한 채로 신음했다. 시각적인 자극과 온몸을 관통하는 쾌락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앙, 아아앙! 아앙! 아하아앙....... 아흐응...... 아앙, 은룡! 아앙!"

입안 가득 차오른 타액을 삼키며 입술을 떨었다. 벌써 눈앞이 희게 흐려지고 흔들리는 발끝에 힘이 들어갔다.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곳을 찔려 허리를 튕기자 푸욱, 푹! 더욱 깊숙한 곳까지 관통되었다.

"아아! 아아아아아앗!"

다인은 절정에 이르며 온몸을 활처럼 젖혔다. 은룡 또한 한계에 봉착한 듯 다인의 안으로 페니스를 밀어붙였다.

"히익!"

뿌리까지 삽입된 것이 기세 좋게 정액을 분출해 냈다. 끈적끈적하고 뜨거운 점액이 가득 차올라 비좁은 질내를 비집고 입구까지 뿜어져 나왔다.

"아아아......."

깊숙이 페니스를 물고 있는 비부의 입구로 백탁액이 새어 나오는 광경은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질 만큼 음란했다. 은룡은 한껏 사정한 이후에야 페니스를 쑤욱 뽑았다.

"힉......."

꿀렁거리며 애액과 정액이 섞인 액체가 새어 나왔다. 은룡은 다인의 허벅지를 놔주지 않은 채로 입맛을 다셨다.

"......한 번으론 너도 만족하지 못하겠지?"

아뇨. 충분히 만족했습니다만!

그러나 그 말을 내뱉기도 전에 은룡의 페니스가 밀고 들어왔다. 여전히 무서운 힘으로 다인의 허벅지를 들어 올린 채로 허리를 내밀었다. 푸욱! 푹 격렬하게 삽입되는 페니스에 의식이 하얗게 물들었다.

"아앙, 응......, 시, 싫어....... 아앗......!"

"얌전히 있어야지."

속삭이는 목소리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좁은 욕실 안. 샤워하는 것이 전부인 좁은 공간에 은룡이 걸터앉아 있었다. 다인은 그의 무릎에 앉은 채로 몸이 씻겨지고 있었다.

다인의 본래 욕실은 변기와 세면대가 전부였다. 세면대 옆으로 샤워기가 딸린 좁은 공간이 있지만 욕조는 없었다. 샤워실을 구분하듯 바닥이 약간 튀어나와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 공간에 걸터앉은 은룡이 다인의 온몸을 주무르고 있었다. 거품투성이인 나신은 5시간이나 은룡에게 시달려 어디를 만져도 느낄 만큼 민감해져 있었다. 그런데도 봐주지 않고 성감대를 자극받아 벌써 두 차례나 절정을 맛보았다.

"이쪽을 봐라."

헐떡이며 쳐다보자 입술을 부딪쳐 왔다. 이미 부끄러워할 여유도 남아 있지 않기에 다인은 그저 입술을 열었다. 음란한 살덩어리가 밀고 들어오며 끈적하게 얽혔다. 그러면서도 거품에 싸인 비부로 손가락이 들어와 괴롭혔다.

"으흐응...... 응음......."

버둥거리며 몸을 꼬자 삽입된 손가락이 다인이 가장 느끼는 곳을 희롱해 왔다. 상처가 나지 않게 긁어내리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쾌락에 내달렸다. 허덕이며 달아나려 했으나 은룡의 무릎에 두 다리가 걸려 움찔거리는 게 전부였다.

"으흐! 으으응!!"

혀를 빨리며 다인은 또다시 절정에 이르렀다. 바르르 떨며 손가락을 빨아들이는 다인의 비부에 은룡의 눈빛이 짙어졌다.

"......역시 손가락만으로는 닿지 않는군."

"아."

쾌락의 여운으로 멍해진 다인의 엉덩이가 들렸다. 그녀의 몸부림에 의해 한껏 성이 나고 단단해진 페니스가 거품에 싸인 비부로 들어왔다.

"아아......아!"

어째서 이것은 매번 적응이 되지 않는 걸까? 불거진 힘줄까지도, 불끈거리는 움직임조차도 전부 느껴져서 더 몸이 떨렸다.

"아앙...... 아흑......."

천천히 허리를 내림에 따라 비부가 페니스를 맛있다는 듯이 삼켜 갔다. 지나치게 느껴 현기증마저 느끼는 다인과는 달리 몸은 음란한 자극에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다인......."

신음하듯 속삭여 불린 이름에 흥분이 느껴졌다. 다인이 멈칫하며 은룡의 페니스를 조여 버리자 예고도 없이 움직였다.

"하악! 읏! 아앗, 아아앗......!"

무르익은 비부로 페니스가 푹푹 박혔다. 그녀 본인의 무게로 한결 깊은 곳까지 농락당하는 느낌에 다인은 고개를 젖혔다.

관능적인 전율이 온몸을 관통하고 발끝까지 저리게 했다. 감당할 수 없어 버둥거리자 은룡이 다인을 끌어안으며 신음하는 그녀의 뺨을 핥았다. 거품에 싸인 결합부로 손을 미끄러트리며 민감해진 꽃눈을 굴렸다.

"히익! 거긴 앙대! 아아아......!"

"너무 조이면 또 안에 해 버릴지도 모르지."

"흐윽, 흑! 아앙......, 그거 앙대....... 으흐응......!"

은룡은 그러면 씻긴다는 핑계로 손가락을 넣어 한참을 지분거리고......, 또다시 지금처럼 안으려 들 것이다.

"아! 아!"

"다인......."

황홀한 듯 신음하며 은룡이 허리를 움직였다. 그의 흥분이 옮겨진 듯 삽입된 페니스가 음탕하게 날뛰는 것이 느껴졌다. 다인은 은룡의 품에서 허덕이며 몸부림쳤다.

"흐앙! 앙앙앙! 아앙......으으응....... 아학......아앗!"

타액이 흐르고 온몸으로 음란한 자극이 돌아다녔다. 손끝까지도 바르르 떨리는 느낌에 다인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흐느꼈다. 이미 은룡의 것을 너무 조이면 그가 또다시 안에 사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지워진 뒤였다.

'좋아, 이거 너무.......'

"히익! 커지면......."

이미 젖은 속살 전부가 다 문질러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큰 은룡의 페니스였다. 그것이 한층 부푸는 느낌에 다인은 기겁했다. 뒤늦게 사정하려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은룡! 흡......!"

'안에다 하면 안 돼!'라는 말이 새어 나오기도 전에 입술을 빼앗겼다. 보드라운 입술을 격렬하게 빨리며 다인은 절정으로 내몰렸다.

"으흐읏, 응읏!!"

발끝까지 꼼지락거리며 도달하는 다인을 은룡은 타는 듯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그가 쪼옥 소리를 내며 입술을 놓아주자 다인이 그대로 늘어졌다.

"안에다 해 버렸군."

"하아...... 하아......."

"전부 제대로 씻겨 줄 테니까."

속삭이며 부드럽게 키스해 오는 은룡에 다인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중간 즈음에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눈을 떴을 때는 익숙한 월셋집의 풍경이었다. 다인은 한순간 은룡에 관한 모든 것이 꿈이었을까 봐 두려워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자신이 벌거벗은 채로 요 위에 누워 있음을 인식했다.

'......라는 건. 또 뭔가 할 생각?'

다인은 옆으로 몸을 굴리며 방 안을 돌아보았다. 미옥이 가자마자 월셋집에 다시 도술을 걸 줄 알았던 은룡은 의외로 잠잠했다.

'하긴. 엄마가 한밤중에 다시 올 수도 있고.......'

옷 입어야겠다 생각하며 일어서는데 은룡이 욕실에서 나왔다. 수건으로 대충 머리를 말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팔을 움직일 때마다 잔근육이 꿈틀거리는 모습이 선정적이었다.

'으아.......'

실컷 해댔으니 한참은 잠잠해야 마땅할 페니스가 흔들거리고 있다. 문제는 다인을 보자마자 그게 일어섰다는 데 있었다.

은룡도 그를 알았고, 다인의 시선도 거기에 꽂혔다. 두 사람 사이로 상당히 민망한 침묵이 흘렀다.

"......."

바닥에 침구가 깔려 있기는 하지만 요만 있었다. 위에 덮는 건 아예 꺼내 놓지도 않았다. 은룡의 속셈이 보이는 듯해서 다인은 급한 대로 베개로 몸을 가렸다.

"더, 더는 안 돼......."

헉. 저거 더 커지는 듯한.......

은룡이 수건을 떨어트리고는 다가왔다. 한밤중이 되어 환하게 켜진 형광등의 불빛 아래에 놓인 나신이 선명했다. 다인은 차마 마주 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몸도 훤히 보일 거라고 생각하니 얼굴이 홧홧해졌다.

"그거 그렇게 가리고 있으면 유혹하는 걸로밖에는 안 보이는데."

'좀 치우지?'라는 듯한 뉘앙스로 은룡이 말했다. 다인은 베개가 마지막 보루라도 된다는 듯이 꼬옥 끌어안았다.

"추, 추워서......."

"따뜻하게 해 주면 그걸 놓을 생각인가?"

짓궂게 웃더니 다가와 다인을 덥석 끌어안았다. 다인은 포개지는 피부에 화들짝 놀라며 은룡을 쳐다보았다. 자연광보다도 선명한 전등 불빛이 부끄러웠다.

"요, 욕실에서도 잔뜩 했잖아요!"

"아아......, 정말 맛있었지. 너도 사랑스러웠고 말이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은룡이 다인의 목덜미에 입 맞췄다. 끌어안고 있던 손이 다인의 허리며 종아리로 옮겨졌다.

"아앗......."

"너도 느꼈다고 생각했는데....... 내 노력이 부족했나?"

아무리 베개를 세게 끌어안아 봐도 허벅지 사이로 들어오는 은룡의 손을 막을 길은 없었다. 이미 민감하게 달아오른 비부는 약한 터치에도 금세 젖어들었다.

"그, 그런 게 아니라....... 아앙......, 거기 만지지...... 말아....... 으응......."

"여기가 싫다면 여긴 어떻지?"

갈라진 틈새를 오가던 손가락이 젖은 속살로 파고들었다. 다인이 뒤늦게 다리를 오므렸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하응....... 엄마가 돌아오면......, 아아......."

"장모님께는 사람을 붙였으니 안심해도 된다."

"네? 어, 언제....... 아앗?!"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을 훑어 허리가 튀었다. 은룡은 다인의 팔에서 힘이 풀린 틈을 타 베개를 빼앗아 복도로 던져 버렸다.

"네가 잠들었을 때."

속삭이며 은룡은 다인을 눕혔다. 젖은 속살을 어루만져 조임을 확인했으니 바로 해도 좋을 만큼의 상태라는 걸 들켜 버린 뒤였다.

"앗."

환한 불빛 아래에 온몸이 드러나는 것이 부끄러웠다. 이제껏 은룡에게 안기기는 했으나 이렇듯 선명한 불빛 아래에서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임을 깨달았다.

"부, 불 꺼 줘요!"

"왜지?"

납득할 수 없다는 듯이 말하며 은룡이 다인의 다리를 벌렸다. 그대로 삽입하려는 듯하여 다인은 다리를 오므렸다.

"너, 너무 밝아서......."

"난 지금이 좋아."

말하며 은룡이 다인의 다리를 붙잡아 올렸다.

제43화

7장. 신부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 절을 한다 (7)

젖은 비부로 다시 손가락이 들어오며 음란하게 꿈틀거렸다.

"아흑, 읏......, 무슨 짓......, 아앙......."

자극을 피해 몸을 꼬는데도 손가락이 따라붙었다. 은룡은 짓궂은 장난을 하는 듯한 표정으로 달라붙으며 손가락의 개수를 늘렸다. 허리를 비틀어 피하려 해도 교묘하게 손끝을 구부려 추삽하자 온몸이 바르르 경련했다.

"흐아아앙! 으응......."

도달해 버리면 그대로 안길 태세라, 다인은 필사적으로 요 위를 기어갔다. 엉금엉금 움직이는 다인의 뒤로 은룡이 쫓아오며 꽃잎을 날름날름 핥았다. 음란한 감촉에 다인은 기겁하며 은룡을 돌아보았다.

쪼옥!

"아아앗!"

날름 꽃술을 핥아 입에 머금고는 강렬하게 빨아대는 느낌에 절정을 맛볼 뻔했다. 다인은 겨우 견디고는 전등 스위치가 있는 곳까지 기어갔다. 무릎을 꿇은 모습으로는 스위치까지 손이 닿지 않아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자 애액에 젖은 손가락이 쑥 빠져나오며 엉덩이를 잡혔다.

"아앗?!"

뜨거운 숨결이 비부를 덮치는 듯싶더니 마구 핥아지기 시작했다. 다인은 휘청거리며 벽에 몸을 기댔다. 손을 뻗어 스위치를 누르려 했지만, 그때마다 젖은 속살을 헤집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어졌다.

"아앙! 은룡...... 장난하지......, 으흐으응......!"

허덕이며 몸을 떨고 있자니 애액에 젖은 손가락이 꽃술을 비벼댔다. 꽃눈까지도 달콤하게 괴롭히는 손끝에 다인은 신음을 흘렸다. 혀가 질척질척하게 갈라진 틈을 핥고 애액을 맛본다. 비부를 가득 채우는 음란한 자극에 다인은 표정을 흐리며 안간힘을 다했다.

'조금만 더.......'

내뻗은 손끝이 전등 스위치에 닿을 듯 말 듯 휘청거렸다. 이윽고 혀가 갈라진 틈새로 파고들어 오는 것을 견디며 스위치를 눌렀다.

탁.

"아아아아앗!!"

불빛이 사라졌다. 동시에 비부를 강렬하게 빨린 다인은 절정을 맛보았다. 혀가 수축하는 비부에서 뽑혀 나오며 그 이상의 질량과 크기를 가진 것이 덮쳐 왔다.

"흐앗!"

밀어붙여 오는 페니스가 흠뻑 젖은 비부를 가르고 깊숙이 들어왔다. 출렁거리는 유방을 움켜쥐고는 한 번에 다 삽입하지 않고 심술궂게 허리를 흔들었다. 덕분에 귀두가 속살의 중간 부분을 훑으며 긁어내리는 듯한 움직임에 다인의 허리가 튀어 올랐다.

"흐앙, 읏! 아아아아!"

지나친 자극에 몸을 빼려 하자 엉덩이가 끌어당겨졌다. 은룡은 그대로 페니스를 박으며 빳빳하게 선 유두를 희롱했다. 품 안의 다인이 허덕이며 페니스를 조이는 것이 느껴졌다.

은룡은 허리로 다인의 엉덩이를 밀어붙이듯 움직이며 추삽했다. 질척이는 비부가 은룡의 페니스에 달라붙으며 경련하고 있었다.

"으흥, 응! 으읏...... 아아앙! 아앗......."

밀어붙이는 허리 힘에 밀려 다인은 벽에 뺨을 댄 채로 신음했다. 은룡은 다인의 자세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끌어당겨 허리를 잡고는 방향을 틀었다.

"흐아응! 아앙......."

밤늦게 쳐들어올지도 모르는 미옥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면, 은룡과의 정사를 거부할 이유도 없었다. 다인은 은룡에게 허리를 잡힌 채로 신음했다. 은룡이 페니스를 밀어붙여 그녀의 깊은 곳을 농락할 때마다 너무 느껴 죽을 것 같았다.

"아! 아아아....... 아! 아앗......!"

지탱할 곳을 잡지 못한 손이 허공에서 흔들렸다. 은룡은 다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격렬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푹푹퍽, 푹! 젖은 속살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페니스의 움직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다인의 신음 소리에 젖은 물소리가 겹치며 천장을 울렸다.

"으응! 으으응! 앗, 아아앗......."

한껏 몰아세워진 몸이 절정에 이르며 튕겨졌다. 활처럼 몸을 젖히며 바르르 떠는 다인을 끌어당기며 은룡 또한 절정을 맛보았다. 페니스가 파고들며 기세 좋게 백탁액을 뿌리자 다인의 다리가 풀렸다.

"하으......아앙......."

"허억, 헉......."

뜨거운 숨결을 흘리며 다인의 뒤에서 헐떡이던 은룡이 요 위에 주저앉았다. 끌어안은 팔은 여전하여 다인 또한 은룡의 무릎 위에 앉았다. 은룡은 반쯤 페니스를 뽑으며 다인의 몸을 옆으로 돌렸다.

"으흡......."

포개지는 입술 틈새로 거칠어진 숨이 뒤섞였다. 다인은 은룡의 목을 끌어안으며 부드러운 키스를 받아들였다. 다시 가슴을 만지기 시작한 손길에 다인은 뺨을 물들였다.

"또......?"

"싫은가?"

짓궂은 미소를 띤 얼굴이었지만 어둠 속이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목소리만으로도 그가 웃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으~."

물어보면 싫다고는 말해지지 않는다. 은룡이 주는 쾌락이 워낙 강력한 것이기도 했고, 그의 손길도 속삭여지는 말도 전부 좋았다. 은룡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로는 그가 주는 쾌락의 한 자락도 놓치고 싶지 않아졌다.

"그, 그럼 조금만......."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이자 다시금 입술이 부딪혔다. 달콤하게 뒤엉키는 숨결에 허덕이는 사이 다인을 보는 은룡의 눈빛이 야릇하게 빛났다.

"얼마든지. 나의 아가씨......."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다인은 은룡의 가슴에 이마를 기대며 한숨을 쉬었다. 좀 지나치게 한 거 아니야?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은룡은 좁은 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다인을 안았다. 다양한 체위를 시도했다기보다는 그 위치에 맞게 했던 것 같다. 당연히 요 위는 물론 요 밖에도 체액이 흩뿌려지고, 장롱이며 서랍장이 정액으로 뒤덮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어젯밤에야 은룡에게 안겨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정신이 들고 나서 집 안 꼴을 보니 할 말이 없어졌다. 벽지에까지 튄 정액 자국을 지울 생각을 하니 아득했다.

'이건 남에게 보일 수도 없고.......'

은룡에게 도와달라고 할 수는 더더욱 없으니 꼼짝없이 뒤집어쓰게 생겼다. 사역인형이 생각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겉모습이 인간과 같아서 창피했다. 오래 주인을 곁에서 모신 사역인형에게는 혼이 생긴다고까지 하니....... 어떻게 그냥 인형처럼 대할 수 있겠는가.

'아우~ 진짜.'

눈앞에 탄탄한 가슴이 있었지만 차마 만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계에서 그런 짓을 했다가 필요 이상으로 흥분한 은룡에게 시달렸던 탓이다.

'내 건데 나는 내 마음대로 만질 수가 없네. 누구는 마음대로 만져대는데.'

두 번째로 만났을 때 씻기게 해 줬던 건 그나마 양반이었다. 그때 염치 불고하고 실컷 만질 걸 그랬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띠롱~. 문자 착신음에 다인은 고개를 돌렸다. 머리맡에, 그나마 무사한 공간에 핸드폰과 핸드폰 충전기가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위치라 다인은 은룡의 눈치를 보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미옥으로부터의 문자였다.

'정말 곧바로 돌아가셨나?'

혹시라도 은룡과 지쳐 잠이 든 모습을 미옥이 봤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면 머리털이 쭈뼛 섰다.

[어제는 진 서방이 보내 준 비서가 바래다줘서 집에도 잘 가고 대접도 잘 받았어~. 내 친구들이 진 서방 얼굴 한번 보고 싶다고 난리더라~. 진 서방한테 나 대신 안부 전해~.]

'비서?'

은룡과 내내 같이 지냈지만 그가 사람을 데리고 다니는 것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다인이 늘 은룡과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는 도술을 사용하니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물어보면 가르쳐 줄 테지만.

다인은 잠든 은룡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잘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해지는 사람.

'그치만.......'

은룡이 자신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었다. 은룡이 다인과 반려의 계약을 맺은 건 그녀를 살리기 위함이었고, 주향의 궁전에서 만난 것도 의식 때문이었다. 대체 그 의식이라는 게 뭔데?

'여의주를 주고 인간 신부를 반려로 맞이하는 게 용에게 중요한가?'

계속 은룡은 친절했지만 그게 애정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 사실을 생각하자 다인은 조금 씁쓸해졌다.

'내가 한 짓이 있는데, 날 좋아하지는 않겠지.'

그래도 안겨 있을 때는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착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면 가슴이 서늘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게 다정하게 대해 주고 곁에 있어 준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은룡은 다인과 결혼하려고 하고 있다. 이 이상 바라는 건 욕심이었다.

'역시 만져 버릴까?'

은룡도 매일 멋대로 다인의 몸을 만지고 있지 않나. 다인이 허락한 거긴 해도 은룡은 좀 지나치게 만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 그래. 만져 버리자. 내가 만지면 은룡도 조, 좋아하는 것 같았고.'

지나치게 좋아한 나머지 종일 먹혀 버린다든가, 시달리던 것이 떠올라 다인은 홧홧하게 몸이 달아올랐다.

'마, 만지고 싶은데......, 엄두가.......'

은룡의 탄탄한 가슴 앞에서 머뭇거리던 다인이 손을 뻗었다. 살짝 건드린 것만으로도 탄력 있고 단단한 느낌이 들었다. 그 가슴에 강하게 안기던 것이 떠올라 다인은 확 붉어졌다.

'우으으~.'

떨리는 손바닥을 조심조심 은룡의 가슴에 가져갔다. 힐끗 잠든 은룡의 눈치를 보았지만,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었다. 다인의 체온보다도 약간 높은 듯한 은룡의 체온이 그의 단단한 가슴 너머로 느껴졌다.

살그머니 근육의 결을 따라 움직이는데, 힐끗 본 은룡의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엣?!'

화들짝 놀라 손을 떼자마자 확 끌어안겼다.

"이런."

잔웃음을 흘리며 은룡이 다인을 부둥켜안았다. 놀리는 듯한 웃음소리가 듣기 좋은 반면 다인을 부끄럽게 했다.

"들켜 버렸군. 좀 더 손이 아래쪽으로 내려올 때까지 버텼어야 했는데."

제44화

7장. 신부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 절을 한다 (8)

"아, 저, 그, 그게......."

은룡은 당황하는 다인을 이부자리에 눕히며 눈을 맞췄다. 즐거운 듯한 푸른 눈동자가 달콤하게 일렁였다.

"사과할 필요 없다. 얼마든지 만져도 좋아. 너라면 내 몸 어디에 손을 대도 날 황홀하게 할 테니. 여기보다 더 은밀한 곳에 손을 대 주면 즐거울 거다."

속삭이는 농밀한 말에 두 뺨이 달아올랐다. 그를 본 은룡의 웃음이 잦아들면서 푸른 눈동자가 무섭게 타올랐다. 그의 단정한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침부터 내게 이런다는 건....... 그 의미로 생각해도 되는 거겠지?"

"에......엣, 저......."

역시 이쪽이냐! 하는 다급한 생각이 떠올랐으나 둘러댈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 마디도.

"그럼......."

빨간 혀를 내밀어 입가를 핥는 은룡의 모습에서 색기가 넘쳤다.

"맛있게 먹겠다."


안전벨트가 이토록 든든하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인은 겨우 은룡에게서 벗어났다는 생각에 한숨을 쉬었다. 물론 옆자리에는 은룡이 앉아 있지만, 그의 무릎에 엉덩이를 붙이지 않고 좌석 시트에 엉덩이를 대는 게 꽤 오래간만으로 느껴졌다.

"다인."

눈길이 닿자 은룡은 달콤한 미소를 보냈다.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얼굴에 다인은 홱 고개를 돌렸으나 손이 잡혔다.

"안전벨트가 방해로군."

키스하고 싶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은룡이 다인의 입술을 응시했다. 그 노골적인 시선에 다인은 앞좌석의 운전기사와 비서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들은 이쪽을 쳐다보고 있지는 않지만 다 들릴 것이다.

"어, 어제 엄마가 은룡 님의 비서를 만났다고 하던데."

"아."

은룡이 힐끗 앞좌석을 쳐다보았다. 조수석에 앉은 남자가 살짝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용비님. 시량이라고 합니다."

파란 테의 안경에 약간 마른 듯한 느낌을 주는 남자였다. 바깥으로 뻗친 듯한 머리 스타일은 공을 들여 만든 것으로 보였다.

"이쪽 운전기사는 흑범입니다. 그저 이름에 범자가 들어갔을 뿐, 진짜 호랑이거나 한 것은 아니니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라는 건. 진짜 호랑이인 사람도 있다는 건가? 놀라며 다인이 은룡을 보자 은룡이 시량을 향해 눈살을 찌푸렸다.

"시량."

"이거 실례. 저는 물새고, 이쪽 흑범은 곰입니다."

무슨 뜻일까? 설마 진짜 물새로 변하고 곰으로 변한다는 건가? 당황하는 다인의 기분을 알아차린 듯 은룡이 말했다.

"수인족일 뿐이다. 동물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니, 그리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그렇지 않습니다, 용왕님. 그리 말씀하시면 저희가 동물의 흉내를 내는 인간 같지 않습니까!"

"그럼 인간의 흉내를 내는 동물이라 할 참이냐?"

은룡의 싸늘한 반응에 시량이 생각을 짜내듯 갸웃했다.

"그렇다기보단......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물에서 진화한 한 종족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에."

그저 인간과 다른 눈으로 보거나 다른 눈으로 취급하지 말아 달라, 다인은 그렇게 판단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엄마는 어떻게......."

"아아!"

대화의 주제가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음을 깨달은 시량이 목소리를 높였다. 어제 다인은 은룡과 같이 엘리베이터 앞까지만 미옥을 배웅했었다.

"은룡 님께서 용비님의 어머님을 약속 장소까지 바래다드리고, 혹여 친구분을 만나시면 지켜보고 있다가 편의를 봐 드리라고 말씀하시기에......."

언제? 은룡은 다인과 줄곧 붙어 있었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다든가 하는 일은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하는 건 보지 못했다.

은룡을 보는 다인의 시선에서 느낀 것인지 시량이 웃음을 흘렸다.

"무협지의 전음 같은 겁니다. 도술을 사용하시는 분이라면, 그것도 꽤 지위가 높은 분이시라면 굳이 말로 전하지 않으셔도 뜻을 전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평상시에 은룡 님을 가까이서 모시기에......."

시량의 말을 듣던 다인의 표정이 굳어지며 얼굴이 달아올랐다. 설마 다 들었을까? 내가 소리 지르고 은룡에게 매달려.......

"가......, 가까이라면? 얼마나 가까이?"

제 발 저리는 구석이 있어선지 은룡이 다인의 표정을 보고 흠칫했다.

"아니. 백 미터 밖이다!"

다급히 변명하는 은룡을 다인은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시량은 어? 하고 놀란 얼굴로 다인과 은룡을 보았다. 제 주인이 저리도 당황하는 것을 처음 보는 탓이었다.

"제가 가까이 있으면 안 될 이유라도 있습니까?"

놀리는 것이 아닌 표정. 정말로 모르는 눈치였다. 다인은 안도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에요. 말씀 끊어서 죄송해요. 계속 말씀해 주세요."

"이제 용비님이시니, 제 주인이시기도 합니다. 편히 말씀해 주십시오."

"그, 그래도......."

다인이 눈치를 보자 은룡이 싱긋 웃었다.

"반말을 하든 하대를 하든 상관없다. 네가 편한 대로 해. 당장 바꿀 필요도 없고 지금부터 그렇게 불러도 된다."

"그럼 저......, 나, 나중에."

"용비님께서 그것이 편하시다면 그리하십시오."

시량은 시원스레 웃으며 말했다. 그러며 아까 하던 얘기로 돌아갔다.

"머릿속으로 은룡 님의 지시가 떨어지기에 단지 앞으로 차를 몰고 갔습니다. 다인 님의 가족분들 얼굴은 이미 사진으로 익혀 두었기에 그분께 다가가서 은룡 님의 말씀을 전하고 차로 약속 장소까지 모셨습니다."

은룡이 제공해 준 차를 타고 친구들의 약속 장소까지 간 미옥은 신이 났다. 시량은 바래다주는 선에서 그치지 않았다. 예약해 놓은 레스토랑으로 미옥과 미옥의 친구들을 모셨고, 거기서 그녀들이 모임을 가지게 했다.

그냥 레스토랑이 아니었다. 레스토랑 하나를 완전히 비워서 그녀들만이 사용하게 했다. 익숙지 않은 대접에 긴장했던 미옥은 친구들의 부추김에 들뜨기 시작했다. 와인도 마음대로 시킬 수 있어서 그녀들은 모두 값비싼 와인에 흠뻑 취했다.

시량은 다른 운전기사들을 불러서 미옥의 친구들을 집까지 바래다주게 했다. 물론 미옥은 시량이 직접 집까지 모셔 갔다.

......시량은 이런 사항은 쏙 빼놓고 모임에 데려다준 것까지만 얘기했다.

"아......, 감사해요."

"아닙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시량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미옥과 그녀의 친구들이 술에 취한 것을 보기는 했으나 시량은 그걸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무려 용왕을 사위로 두게 생겼는데, 기쁘지 않다면 그게 인간이겠는가.

물론 은룡이 용왕임을 알게 되는 일은 결코 없을 테지만 말이다.


"내가 왜 그랬을까아아아~~~."

테이블에 뺨을 댄 채로 미옥이 우울하게 뇌까렸다.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으로는 다른 연락이 없다. 그 비서가 은룡에게 말했고 은룡이 다인에게 말했다면, 지금쯤 다인으로부터 무슨 연락이 왔어야 정상이었다.

"그 비서가 진 서방한테 내가 추태 부린 거 다 말했겠지?"

"아, 그러게 술은 왜 마셔!"

영인의 핀잔에 미옥은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와인이 술이야? 그리고! 내가 마시고 싶어서 마셨겠어?! 친구들이 축하한다고! 축하주 받으라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거절해!"

"그래도 작작 마셨어야지! 예비사위 비서가 지켜보고 있는데, 무슨 와인을 취할 때까지 마셔!"

"아아~ 몰라. 평생 안 하던 실수를 왜 어제에~~~. 이제 진 서방 얼굴을 어떻게 봐아아~."

미옥은 핸드폰 쥔 손으로 탁자를 탕탕 두드리며 억울해했다. 통증 문제만 없었더라면 머리를 박았을 거란 표정이었다.

점심 장사 준비에 여념이 없던 진석이 바깥에서 가게 안으로 삐죽 얼굴을 내밀었다.

"괜찮을 거예요, 장모님. 장모님 술주정은 그래도 귀여운 편 아닙니까."

"으흐흐......."

얼굴을 든 미옥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허리에 앞치마를 두른 영인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미옥에게 다가갔다.

"설마 노래 부른 거 아니지?"

"으흐흑......." 하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가게 앞에 펼쳐 놓은 의자를 정리하고 돌아온 진석이 미옥을 살폈다.

"그래도...... 테이블 위로 올라가신 건 아니잖아요. 거기 레스토랑이었다면서요."

창피한지 미옥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췄다.

"으......."

"으?"

영인과 진석이 귀를 쫑긋 세우며 미옥의 대답을 기다렸다. 고개를 숙인 미옥이 딸과 사위의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돌렸다.

"의자 위에 서서 불렀어."

"아, 엄마!"

"......그래도 테이블 위는 안 올라가셨네."

8장

신접살림은 펜트하우스에서 (1)

은룡은 목적지가 어디인지 말해 주지 않았다. 단지 보여 주고 싶은 곳이 있다고 말했을 뿐이다. 시량도 목적지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문 채로 다른 이야기에 대해서만 떠들었다. 날씨가 맑고 내일까지 비가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얘기나, 혼례식을 시룡이 주관하고 싶어 한다는 얘기였다.

그사이 그들이 탄 차량은 매끄럽게 목적지로 향했다.

"여기다."

시량이 먼저 내려 재빨리 차문을 열어 주었다. 다인은 차에서 내려 눈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거대한 위용의 빌딩을 올려다보았다. 고개를 드는 것만으로는 눈에 다 담을 수가 없어서 한참을 올려다봐야 했다.

"여기요?"

여기 어디? 전망대라도 올라가자는 얘긴가? 갸웃하는 다인을 향해 은룡이 의미심장한 시선을 보냈다.

"올라가자."

내밀어진 손을 다인은 잡았다. 그 손을 당연하다는 듯이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다인의 표정을 본 은룡은 어딘지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시량이며 흑범을 쳐다보았다. 시량은 잽싸게 눈치를 채고 꼬리를 내렸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이제까지는 있는 줄도 몰랐던 은룡의 가신이었다. 면접을 보러 갈 때도 사람을 붙여 주지 않았던 은룡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뭐가 달라진 걸까?

"가자."

은룡은 다인의 어깨를 감싸 빌딩으로 이끌었다.

제45화

8장. 신접살림은 펜트하우스에서 (2)

다인은 멀어지기 전 자신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는 시량과 흑범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은룡을 따라 걸었다.

빌딩으로 다가가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나와 문을 열어 주었다. 문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고개 숙여서 인사까지 했다. 다인이 당황하여 마주 인사하는 것을 은룡은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이쪽이다."

은룡이 향하는 곳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그러나 빌딩의 높이나 규모를 생각하면 엘리베이터가 여러 대여야 마땅한데, 그가 향하는 곳에는 엘리베이터가 하나뿐이었다.

"......엘리베이터가 하나네요?"

"하나면 충분하니까."

"건물이 이렇게 넓은데요?"

다인이 되묻자 은룡이 씨익 웃었다.

"다른 층으로 가는 입구는 빌딩 뒤에 있다. 거기도 궁금하면 나중에 보여 주지."

안으로 들어간 넓은 통로 한가운데에 커다란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은룡이 버튼을 누르자 바로 열렸다. 1층에 있었던 모양이다.

은룡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오른 다인은 버튼이 세 개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지하 2층과 1층, 그리고 36층이었다.

'어?'

은룡이 36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중간의 어느 층에도 멈추지 않고 위로 올라갔다. 층수가 높아 꽤 걸릴 줄 알았으나 상당히 빨랐다.

띵. 문이 열리고 은룡이 먼저 내렸다. 다인은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들어서 한발 늦게 은룡의 뒤를 쫓았다. 설마...... 아니겠지.

엘리베이터 앞의 공간은 상당히 넓었다. 마치 대저택의 홀이라도 되는 양 천장이 높고 화려한 샹들리에까지 달려 있었다. 은룡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기에 다인은 걸음을 서둘렀다. 은룡의 곁에 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벽면은 엘리베이터와 가까운 부분이 온통 유리창이라 환한 햇살이 비쳐 들었다.

"여긴 어디예요?"

"어디라고 생각하지?"

바라보는 얼굴이 자신만만해 보였다. 다인이 좋아할 거라고 확신하는 표정이었다. 언뜻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으나.......

"누구...... 만나러 가는 거예요?"

"비슷해."

웃으며 은룡은 현관문 앞에 섰다. 아마도 이 층에 있는 공간은 이곳 하나인 듯싶었다.

'이 빌딩 어마어마하게 컸는데.'

몇 평쯤 될까? 어림짐작으로도 계산이 되지 않았다. 생각하는 사이 은룡이 도어록 뚜껑을 열고 비밀번호를 눌렀다. 아는 사람 집인가? 하고 쳐다보는데 은룡이 문을 활짝 열며 비켜섰다.

"들어와라."


그곳을 1층이라 부르는 것은 이상했지만, 어느 저택 1층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복층형 펜트하우스인지 현관홀의 1층부터 4층까지 뚫려 있었다.

넓은 복도를 지나 거실로 들어서자 시야가 탁 트였다. 웬만한 아파트보다도 높은 빌딩이기에 그 앞으로 시가지가 굽어 보였다. 특수 처리된 유리가 자외선을 차단해 주어서 눈이 부시지도 그렇다고 어둡지도 않다.

거실을 싸안는 듯한 형태로 놓여 있는 거대한 소파와 홈시어터 세트. 그 가운데에는 발목까지 잠길 듯한 두툼한 카펫이 깔려 있었다.

안으로 좀 더 들어가면 널찍한 주방과 옆으로 긴 간이 식탁이 있고, 덧문을 열고 들어가면 식당이 있었다.

복도로 들어가면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는데, 멋스럽게 좌우로 굽어져 올라가는 모양이 꽤나 고풍스러웠다. 거실과 주방에서 현대적인 설비와 인테리어를 보았던 다인은 이런 형태가 뜻밖에도 잘 어울려서 놀랐다.

1층에도 침실이며 방이 많았지만 위층에는 더 많은 것 같았다. 다인은 2층으로는 올라가지 못하고 은룡을 돌아보았다. 계단으로 올라가는 곳의 천장은 기이하게도 스테인드글라스로 되어 있었다. 용을 형상화한 알록달록한 빛이 다인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다른 용이 사는 곳인가요?"

혹시 은룡의 부모님이 사는 집? 아니면 형제라도? 예비 시댁식구를 만날 생각에 긴장하며 물어보는 다인에 은룡은 웃음을 보였다.

"마음에 들어?"

"어......, 예쁜 것 같아요."

예비 시댁식구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자 집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은룡이야 다인을 그저 예쁘다 예쁘다 해 주지만, 다른 식구들의 마음은 다른 법이다.

"흠, 아닌 것 같은데....... 미흡하군."

턱을 매만지며 은룡이 눈살을 찌푸렸다. 미흡하다니?

"무슨 말씀이신지 통....... 여기가 어딘데요?"

"우리가 이제부터 살 집이었지."

하고는 은룡이 가볍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음에 들 줄 알았는데....... 나가지. 다른 거처를 구하도록 할 테니."

이미 턱이 떨어진 다인은 급히 입을 다물었다.

"어....... 어어......, 여, 여기서 산다고요?"

은룡이 다인의 표정을 살폈다. 눈동자에 이채가 돈다.

"네 마음에 든다면."

"마, 마음에 들긴 하는데....... 그래도 되는......."

당황하는 다인에 은룡은 웃음을 터트렸다.

"내 본궁은 주향의 별궁보다 훨씬 넓은 곳이야. 겨우 이 정도에 당황하면 안 되지. 이곳은...... 내 침실하고 서재를 합친 정도인가?"

집 안을 가볍게 돌아보며 은룡이 말했다. 다인은 생각했다. 그건 은룡 님의 궁전이 터무니없이 넓어서 그런 거라고.

"지, 진짜...... 여, 여기서?"

"아아."

싱긋 웃으며 고개를 기울여 비스듬히 쳐다보는 시선이 무척이나 야릇했다. 다인은 그 눈빛에서 무언가를 감지하고 무심코 물러설 뻔했다.

"너와 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 최대한으로 줄이게 한 거다만."

하며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아니면. 더 좁은 집에서 나와 딱 붙어 있고 싶은가?"

그저 대화를 나눌 뿐인데도. 어째서. 다인은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은룡을 쳐다보았다. 어쩐지 그가 다인의 옷을 벗기고 싶어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요즘...... 너, 너무 자주 하는 거 아냐?!'

밤에도 당연한 듯이 하면서 낮에도 약간만 방심하면 곧바로 옷이 벗겨졌다. 다인은 정신 바짝 차리자고 생각하며 은룡을 노려보았다. 아니, 기분 좋은 건 사실이지만 다리 힘이 풀릴 정도로 해댔으면 좀 봐줘야지. 이러고 밤에도 또 할 거잖아!

은룡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다인이 경계하는 꼴이 귀여워 죽겠나 보다.

"흐음~ 날 노려보는 표정이 잠시도 나와 떨어져 있는 것을 못 견디겠나 보군. 나와의 거리가 먼 것이 그리도 가슴 아픈가?"

하며 성큼성큼 걸어왔다. 다인은 잡히면 벗겨진다는 걸 깨닫고 물러났다. 순간 은룡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왜 도망치지?"

"도, 도망 아닌데요? 뒷걸음질이지."

"그렇게 뒷걸음질 치면 넘어진다. 이리 와."

"뒤, 뒤로 걷는 건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호오?"

싱긋 은룡이 엉큼하게 웃었다.

"좋아. 내 품에 안긴 채로 뒤로 걷게 해 주지."

허억. 순간 그에게 선 채로 안겨 쳐올리는 힘에 밀려 뒷걸음질 쳤던 순간이 떠올랐다. 순식간에 귓불까지 물든 다인이 소리쳤다.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내 말이 어디가 어떻다는 건지 모르겠군."

씨익 웃으며 다가오는 은룡과의 거리가 이제는 서너 걸음 정도였다.

"무슨 상상을 했기에 그리도 얼굴이 붉은 거지? ......말하지 않아도 말하게 할 거다만."

전부. 털어놓게 될 거야. 속삭이는 말에 다인은 더할 나위 없이 뜨거워졌다. 더듬더듬 뒤로 물러나던 그녀가 등을 돌려 계단을 올라가려고 하자 은룡이 쫓아 올라왔다.

"오, 오지 마세요!"

"싫다만. 아까 무슨 생각을 했기에 그리도 얼굴이 붉은 건지 말해 준다면 생각해 보겠다."

생각만 하고 안 들어줄 거잖아! 발끈하며 돌아본 다인은 은룡이 어느새 바로 뒤에 서 있음을 깨닫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분 좋은 듯 은룡이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앗."

순식간에 턱을 잡혀 입맞춤을 당했다. 밀어붙여진 뜨거운 입술이 입술 틈새로 파고들며 다인의 혀를 휘감아 왔다. 타액을 마시고 점막을 핥으며 바싹 붙어 안는 팔에, 온몸이 관능적인 전율로 달아올랐다.

"으흣......, 음......, 흐읍......."

숨이 부족해질 때까지 숨결을 빼앗겨 다인은 약하게 버둥거렸다. 은룡은 한참 만에 다인의 입술을 놓아주었다. 타액에 젖은 입술에 갈망 어린 시선을 던지며.......

"세 번만 풀어 주지......."

네 번째에는...... 나도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욕정이 진득하게 묻어나는 목소리에 다인은 전율을 느끼고 은룡에게서 물러났다. 타다닥 계단을 올라 달아나는 다인을 은룡은 즐거운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2층은 넓은 복도와 침실이 거의 전부였다. 방마다 호사스럽게 꾸며져 있는 것은 분명했으나 이렇게 많은 방이 필요할까 싶었다.

'그나저나...... 내가 왜 달아나야 되는 거야?'

복도로 들어가 어느 방에 숨으면 좋을까 고민하면서도 다인은 불만스럽게 생각했다. 달아나지 않으면 은룡에게 붙잡힐 테고, 붙잡히면.......

'옷이 벗겨지고, 그리고.......'

거절한다는 선택지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은룡이 야릇한 눈으로 들여다보며 속삭이고, 만지고, 유혹해 온다면, 솔직히 거절 못 하겠다. 손끝에 미약이라도 묻히고 다니는지 손길이 어찌나 달던지. 거기다 바라보는 눈길은 어떠한가. 아직도 은룡을 보면 가슴이 주체 못 할 정도로 뛸 때가 많은데,

'그런 눈으로 보면 싫다고 못 하겠다고~.'

"흐응~ 벌써 항복인가?"

"히익!"

귓가에 불어넣는 숨결에 다인은 화들짝 놀랐다. 은룡은 웃음을 흘리며 뒤에 선 모습 그대로 다인을 껴안았다. 옷 위로 가슴을 크게 움켜쥐고는 주무르는 손길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앗, 잠깐......, 아직 두 번째......."

"조금 맛만 보려는 거야."

진정하라는 듯이 속삭이며 셔츠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브래지어가 젖혀 올라가며 이미 뾰족하게 선 유두가 만져졌다.

제46화

8장. 신접살림은 펜트하우스에서 (3)

"으응......."

헐떡이며 다인은 몸을 비틀었다. 곧바로 자극을 주지 않고 유륜의 둘레에서 부드럽게 덧그리며 스치는 손끝이 안타까웠다.

"......부족한가?"

다인의 목덜미를 핥아 움츠러들게 만들며 은룡이 말했다. 다인은 하마터면 그렇다고 말할 뻔했으나 입을 다물었다.

"네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빨아 줄 수도 있지만."

은근하게 덧붙이는 말에 몸이 떨렸다. 은룡이 만져 주고 핥아 주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다인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셔츠, 벗겨도 되겠지?"

"으......."

머뭇거리는 사이 유륜을 자극하던 손이 빠져나갔다. 아쉬움에 한숨을 흘리던 다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도 빛이 들지만 1층만큼 밝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거부감이나 부끄러움도 한결 덜했다.

"자."

은룡이 다인의 셔츠를 벗겼다. 브래지어를 내려준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 아래에 노출된 채인 유방에 공기가 닿았다. 다인이 브래지어를 내리려는데 훅이 풀렸다. 은룡이었다. 쳐다보니 은룡이 웃음 지었다.

"핥아 달라고 했잖아."

"그, 그런 말 안 했어요!"

"흐음......, 그렇다면 핥지 않아도 되나?"

"읏."

머뭇거리는 사이 은룡이 다인의 브래지어를 완전히 벗겨 냈다. 갈등하는 듯한 다인의 까만 눈을 들여다보며 은룡은 한숨을 쉬었다.

"못 참겠군."

"예? 앗......."

다인을 돌려세운 은룡이 그녀를 보았다. 양팔로 가슴을 감추고 있던 다인의 눈 속에 당황과 주저, 기대와 어렴풋한 정욕이 느껴졌다.

'괜히 세 번 봐준다고 해서.......'

내 신부는 왜 이다지도 귀엽단 말인가. 또 한 번 한숨을 쉬며 은룡은 다인의 허리를 안았다.

"핥아 줄 테니까 보여 줘."

"시, 싫어요."

"원하는 것 아니었나?"

지그시 눈을 들여다보며 놀리자 울상이 되었다. 이러다 토라진 듯 고개를 돌리기라도 하면 진짜로 잡아먹고 말 것 같다. 이 복도에 다인을 눕히고 그녀의 교성이 현관문 밖을 적실 때까지 괴롭혀 줄 자신이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안 돼."

부끄러워졌는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하자 은룡은 훅 숨을 멈췄다. 언제나 현실이 상상보다도 자극적이었다.

"조금만 하겠다."

타는 듯한 목소리로 말해 봤자 조금도 믿음이 가지 않을 테지만,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귀여워서...... 단숨에 그녀를 삼켜 버릴 듯한 자신을 억누르며.

"조금만...... 맛볼 테니까."

이 말을 믿는 건 아니겠지? 넌 도저히 조금만 맛을 보고 멈출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핥으며 은룡은 초조한 눈길을 보냈다. 그를 본 다인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팔을 푼다.

'미치겠군.'

목구멍이 뜨겁게 데워졌다. 은룡은 더는 흥분을 누르지 못한 채로 다인의 허리를 당겼다. 출렁이는 가슴에 얼굴을 묻고는 뺨에 닿는 빳빳한 유두에 입을 맞췄다.

"힉......."

긴장했는지 다인의 반응이 예민했다. 은룡은 자신이 웃는 줄도 모른 채로 관능적인 웃음을 흘렸다. 더는 못 참아.

"학!"

크게 유방의 정상을 물며 혀로 빨아댔다. 자신도 모르게 격렬하게 그것을 핥고 쪼옥거리며 빨고 혀로 당기자 다인이 숨을 삼켰다. 새빨갛게 물든 그녀의 얼굴이 쾌락으로 젖는 것을 은룡은 황홀한 듯이 올려다보았다.

"조금만...... 하기로......, 흐읏......."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입 밖으로 새어 나오지 못했다. 은룡은 제 입안에서 더욱 단단해지는 돌기가 사랑스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다인을 안은 팔에 더욱 힘이 들어가고 그녀의 몸이 가볍게 들렸다.

"엣?! 흑......."

당황하며 은룡의 어깨를 잡은 다인의 유방을 혀와 입술로 마구 탐닉하며, 은룡은 가까운 침실로 걸음을 옮겼다. 은룡의 의도를 깨달은 다인이 주위를 돌아본다.

"아, 아직 두 번째야! 하윽!"

급한 나머지 경어를 쓰는 것도 잊은 듯했다. 아프지 않게 깨물린 유두를 핥아져 다인의 몸이 떨렸다. 한 팔로 다인을 안은 은룡이 다른 손으로 허겁지겁 그녀의 바지를 풀었다.

"나중에......."

흥분한 은룡의 표정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기겁해야 할지, 어이없어 해야 할지 모르는 가운데 바지가 순식간에 허벅지 아래로 미끄러지고 팬티도 내려갔다.

"앗?!"

맨살에, 정확히는 엉덩이에 은룡의 손바닥이 닿았다. 당황하여 버둥거리는 사이 바지며 속옷이 완전히 벗겨졌다. 곧바로 청결하고 부드러운 침대 시트가 등에 닿아 다인은 휘둥그레졌다.

"하아......."

다급한 숨결이 다인의 입술로 쏟아지더니 입술이 포개졌다.

"흡?!"

놀라 벌어진 입술 틈새로 파고들어 음란하게 혀를 섞었다. 황홀한 듯 몸을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져 다인은 몸을 비틀었다.

"하읏, 음......."

젖은 물소리가 울리고 혀가 달아나지 못한 채로 탐해졌다. 미끄러져 내려간 손길이 다리 사이를 보듬자 다인은 허리를 움찔거렸다. 그곳이 젖었음을 다인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들키는 것은 부끄러웠지만 은룡은 기뻐할 터였다.

"힉."

갈라진 틈을 매만져 손가락을 흠뻑 적신 은룡이 다인의 꽃술에 애액을 발랐다. 미끈미끈하게 듬뿍 묻혀 엄지와 두 손가락으로 비볐다. 핥는 듯한 정교한 손가락 놀림에 다인은 당황했다.

"후으...... 으응......."

마치 세 개의 혀가 희롱하는 것 같다. 놀라 다리를 버둥거렸지만, 이미 은룡의 몸이 다인의 다리 사이에 들어와 있었다. 벌리라는 듯 무릎을 이용하여 다인의 다리를 크게 벌렸다.

"흐읏, 읏...... 으으응......!"

미끈미끈한 감촉이 미칠 것 같았다. 혀와 입술을 빨리면서도 다인은 아찔함에 질끈 눈을 감았다. 그녀를 집어삼킬 듯 응시하는 은룡의 눈길도, 쾌락을 자아내는 음란한 손끝도, 모두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그녀를 두근거리게 했다.

"후으......읏! 으흐으응...... 으으응......!"

키스당하고 있는 얼굴을 약하게 흔들며 다인은 도달했다. 움찔움찔 허리를 튕기는데도 꽃눈째로 꽃술을 농락하는 손길은 멈춰지지 않았다. 질척질척하게 점막이 마찰되는 소리에 귀가 녹아 버릴 것 같았다.

"학!"

입술이 풀리며, 꽃눈을 튕기듯 놓아준다. 그러고는 갈라진 틈으로 쑤욱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하으응......."

음란한 감촉에 다인은 벌벌 허리를 떨었다. 손가락 하나가 들어와 미끈미끈하게 문지르다가 금세 두 개, 세 개째로 늘어났다.

"아, 아아......."

생리적인 눈물이 흐르자 다인의 뺨으로 은룡의 입술이 떨어졌다. 달아오른 뺨을 핥는 숨결에 다인은 숨을 헐떡였다. 기분 좋아.......

"힉......."

손가락이 쑥 빠져나왔다. 은룡이 상체를 일으키더니 다급히 바지 지퍼를 열었다. 다인은 멍한 얼굴로 은룡이 페니스를 꺼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 안 벗을 건가?'

은룡의 벗은 몸을 보는 건 꽤 즐거운 일이라, 아쉬웠다. 그렇다고 은룡이 옷을 입고 있는 태가 나지 않는다는 건 전혀 아니지만.

"아흑......."

제 손으로 페니스에 애액을 바른 은룡이 다가와 비부에 눌렀다. 선단이 애액으로 가득 찬 입구를 벌리고 들어오는 감촉에 탄성이 흘러나왔다. 은룡은 짙은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밀어붙였다. 입구가 크게 벌어지며 거대한 열 덩어리가 들어왔다.

"흐으읏......."

젖은 속살이 한계까지 늘어났다. 은룡은 가볍게 페니스를 흔들어 내부를 넓히려는 듯 움직였지만, 다인에게는 크게 내부를 휘젓는 것으로 느껴졌다. 매일 녹아내릴 때까지 사랑받던 몸이라 아프지는 않아도 압박감이 대단했다.

"흐윽, 앗......."

푸욱, 뿌리까지 밀어 넣은 은룡이 다인을 보았다. 다인 또한 젖은 눈동자를 들어 은룡을 쳐다보았다.

'지금 이 사람이 좋다는 생각을 떠올리는 건 이상한 짓일까?'

멍하니 쳐다보며 다인은 그런 생각을 했다. 자신에 대한 욕정을 숨기지 못하고 밀어붙이면서도 그녀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 남자. 그런 남자를 어쩌면 소유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상이 다인을 기쁘게 했다.

"옷...... 안 벗어요?"

은룡은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처럼 눈을 깜박였다. 그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는 거칠어진 숨을 내뱉었다.

"나중에." 하며 허리를 끌어당겼다. 페니스가 딸려 나오며 내벽을 긁었다. 다인은 신음을 터트리며 몸을 비틀었다. 다인의 허벅지를 크게 벌린 은룡이 다시 밀어붙였다. 숨을 삼키려던 찰나 그가 급하게 끌어당겼다. 그리고 다시 허리를 박았다.

"흐읏, 앗! 아아......아아앗!"

쾌락으로 부푼 젖은 속살로 페니스가 문질러졌다. 아찔할 정도의 쾌락이 달콤한 물결이 되어 밀려들어 왔다. 다인은 그 물결에 휘말린 듯 퍼덕거렸다. 몸이 점점 격렬하게 앞뒤로 흔들리고...... 비부가 감미롭게 녹아내리듯 애액이 흘러넘쳤다.

"아......아아아! 아앗......아아, 앙......!"

다인의 양 허벅지를 움켜쥔 은룡이 격렬하게 허리를 썼다. 페니스가 푹푹퍽푹 삽입되며 음란한 쾌락이 배 속을 가득 채웠다. 견딜 수 없어서, 다인은 손을 뻗었다. 자신의 다리를 들어 올린 채로 허리를 흔드는 은룡의 소매 끝을 잡았다가 그의 팔을 잡았다.

"후아! 으응...... 아흐, 아아앙!"

어디가 스위치인지는 모르겠으나 은룡이 매우 흥분한 것은 알겠다. 옷자락 너머로도 은룡의 근육이 불끈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다인은 차오르는 타액을 삼키며 은룡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근사하고 예쁘다. 그가 자신 때문에 흥분한 것이 좋았다.

"흐앗?! 앗, 아아아아......!"

절정에 오르며 다인은 음란하게 몸을 휘었다. 은룡이 페니스를 밀어붙이며 뿌리까지 파고들어 오는 것에 헉 하고 숨결이 떨렸다. 이때에 선단이 가장 깊고도 은밀한 곳에 닿으며 온몸이 펄쩍 뛸 만큼 관능적인 자극이 척추를 관통했다.

제47화

8장. 신접살림은 펜트하우스에서 (4)

"히익......."

몸을 떨며 은룡의 페니스를 집어삼킬 듯이 조이자 그것이 펄떡거렸다. 기세 좋게 뿜어내는 정액이 깊은 곳은 물론 입구까지 가득 적시는 것이 느껴졌다.

"아아아......."

활처럼 몸을 휘었던 다인이 풀썩 쓰러졌다. 하아, 하아 하는 가쁜 숨결을 흘리며 은룡이 삽입된 채로 상의를 벗었다. 그가 바지를 벗기 위해 시선을 허리춤으로 주는 것을 보고 다인이 손을 뻗었다. 근육의 결을 따라 손가락을 놀리자 은룡이 흠칫 다인을 보았다.

"읏......."

마음이 급한 듯 은룡이 급히 페니스를 뽑았다. 그 감촉으로 다인이 화들짝 놀라며 손을 멈췄다. 은룡은 표정을 흐리며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황급히 바지를 내렸다. 이미 노출된 상태의 페니스에서 백탁액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이 무척이나 음란해 보였다.

바지를 침대 밖으로 내던진 은룡이 다가왔다. 다인의 시선을 느낀 듯 제 아래쪽을 내려다보고는 뺨을 물들였다.

"널 원해서 이렇게 된 거다."

그 말에 다인은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몰랐다. 그저 멍하니 은룡을 쳐다보았을 뿐이다. 은룡은 그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숨을 삼켰다.

"나는......."

다인의 몸을 뒤덮을 듯 은룡이 몸을 낮췄다. 형형한 그의 푸른 눈동자가 달콤하게 이글거렸다. 무시무시할 정도의 정욕이 담겨 있었지만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평생 널 이기지 못할 것 같다."

껴안아 오는 강인한 팔에 힘이 실렸다. 녹아내릴 듯한 시선에 다인은 눈도 깜박이지 못하고 은룡을 마주 보았다.

"은애한다. 다인....... 나를 안아 다오."

뜨거운 속삭임과 고백에 다인은 완전히 함락되어 버렸다.


시트는 보드랍고 침대의 쿠션감도 훌륭했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은룡의 단단함과 매끄러운 피부, 적당히 달큰한 열기가 좋았다. 다인은 은룡에게 몸을 기댄 채로 그가 자신에게 해 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은애한다. 다인....... 나를 안아 다오.'

비명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 다인은 입을 틀어막았다. 발을 동동 구르고 싶지만, 제 다리에 은룡의 다리가 얽혀 있어서 그러면 은룡이 깰 것 같았다. 은애한다니. 그거 그거겠지? 그런 거겠지? 아니면 나 죽을지도.

은애의 뜻은 알지만 단어란 게 그렇잖은가. 한 단어에 여러 가지 뜻을 담을 수 있는 거.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이니 내가 모르는 새에 다른 의미가 생겼을지도 몰라! 무언가의 줄임말이라든가! 가능성이 아예 없는 생각이었지만, 이런 생각마저 안 했다면 가슴이 터져 버렸을 것이다.

'우와......, 우와!'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안기는 도중에도 분명 이렇게 뛴 것 같았다. 느낄 때도 심박이 엄청 빨라지고 그랬으니 분명 심장에 무리가 갔을 거다.

그래도 좋은걸. 가슴이 아린 것도 같고 배 속이 찌르르하게 달콤하게 울리는 것도 같았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기뻤다.

'응. 그래서 그런지, 아까는 최고였습니다.'

나도 말해야 하는데. 은룡이 자꾸 페니스를 움직여대서 신음만 나왔다. 그것도 기뻤지만......, 절정 즈음에는 고백해야 한다는 인식도 날아가 버렸다. 그저 쾌락으로 물들어 은룡에게 매달렸다. 그것을 은룡이 짙푸른 눈동자를 좁히며 흡족하게 바라보던 것이 생각나 얼굴이 홧홧해졌다.

'아니, 뭐....... 나도 비슷하지만.'

은룡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몰두하는 것을 보면 기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도 섹시하고.

깨면 말하자. 이번에야말로 나도 말해 보자.

'은룡의 태도로 봐서는 이미 들킨 것도 같지만.......'

다인이 빨갛게 볼을 물들인 것을 보며 비식비식 웃고 놀리는 것이 딱 그 짝이었다. 그래도 제대로 말하는 것도 중요했다.

'기뻐해 줄까?'

두근거리며 다인은 잠든 은룡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저보다 지친 것은 난데, 꼭 만족한 것처럼 잠이 든단 말이지. 놀리고 싶은 마음에 다인은 은룡의 가슴으로 손을 뻗었다. 쭉 뻗은 쇄골까지도 단정하고 예뻤다. 쇄골이 어떻게 단정한가 싶지마는.

"으음......."

간지러운지 은룡의 표정이 흐트러졌다. 그 얼굴도 서늘하게 아름다워서 다인은 정신없이 눈길을 빼앗겼다. 서서히 손을 내려 가슴을 어루만지는 것에 은룡의 표정이 변했다. 미약하게 찌푸려졌다가 입술이 열리며 달뜬 숨결이 새어 나오는 것을 다인은 홀린 듯 바라보았다.

입 맞춰도 될까? 은룡이 왜 그렇게 자신을 보면 만지고 싶어 안달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흐려지는 표정 하나하나가 기껍고 사랑스러워서 가슴이 떨렸다.

단단한 복부의 근육까지 쓸어내렸다가 멈칫했다. 은룡의 그것이 어느새 일어나서는 다인의 손등을 찔렀던 탓이다. 흠칫 손을 빼려다가 치골 주위로 손을 뻗었다.

'이, 이쪽은 안 되겠어.'

만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닌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려웠다. 아무리 은룡이 깊게 잠이 들었다 해도 거길 만지면 깨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엉덩이...... 만져 본 적 없는데.'

어쩐지 치녀가 된 것 같다. 다인은 꼴깍 침을 삼켰다. 은룡이 눈을 뜬 다음에 만지게 해 달라고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은룡한테 그 소리를 한다고? 할 수 있을 리가.

'창피해서 죽을지도....... 아아니, 자고 있을 때 엉덩이 만지는 것도 창피하긴 마찬가지네.'

부드럽게 허벅지를 맴돌던 손끝이 엉덩이로 가지 못하고 허리로 올라왔다. 다시 탄탄한 복근을 쓸자 페니스가 바싹 올라왔다. 다인은 순간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거의 매일같이 자신의 몸에 받아들이는 것이었지만, 새삼 너무 가까이에 보이는 듯했다.

"......마음에 드나?"

짓궂은 목소리에 다인은 화들짝 놀랐다. 고개를 들자마자 꽉 끌어안겨 다인과 은룡의 사이에 페니스가 눌렸다. 다인은 당황하여 버둥거렸다.

"으, 은룡 님!"

"이번이 두 번째지? 첫 번째는 어땠더라?"

허리를 끌어안은 손이 엉덩이로 내려오더니 다인의 엉덩이를 꽉 쥐었다. 꺅! 하고 소리 지르는 다인에 은룡은 쿡쿡 웃었다.

"농담이다.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하루에 몇 번씩 덮치지는 않아."

"이따가 밤도 있고......." 하고 속삭이는 말에 다인은 뺨을 물들였다. 은룡은 다인의 손을 잡아 가볍게 손가락을 깨물었다.

"이 집은 마음에 드나?"

"그, 그럼요! 펜트하우스는 드라마나 쇼프로그램에서밖에 못 봤는데...... 이상한 기분이에요."

이 펜트하우스는 드라마나 쇼프로그램에 나온 펜트하우스보다도 컸다. 미드에 나온 펜트하우스보다도 클 것 같았다.

"그래? 이건 진짜 같은가?"

"엣, 네에......."

너무 넓어서 비현실적이라는 말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인은 다짐했다. 다인의 표정에 은룡은 확신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진심인가?"

"진심이에요. 저, 그리고...... 으, 은룡 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은룡이 다인을 보았다.

"말해."

"그......, 오, 옷 다 입고요."

지금 이 상태에서 그 말을 했다가는 도로 침대에 눕혀질 것 같았다. 은룡은 의아하게 쳐다보면서도 수긍했다.

"좋다. 대신...... 씻어야겠지?"

"어, 예? 꺄악?!"

은룡이 다인을 번쩍 안아 들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는 침실에 붙어 있는 욕실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드레스룸을 채워 놓으라고 지시했으니 네 옷도 있을 거다. 씻고 나서 그걸 입으면 된다."

"아니, 저, 제, 제가 할 수 있는데......."

당황하는 다인에게 은룡은 어림도 없다는 듯이 씨익 웃어 보이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우와아......, 이거 명품이네.'

브랜드 별 신상품이 죄다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전부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핸드폰으로 각 브랜드를 검색해 보면 나올 것 같다.

'하긴. 이 집을 살 수 있다는 시점에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겠지.'

자신의 이전 월급으로는 이 집의 관리비도 내지 못할 거다.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패배감에 다인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비교해서 무엇 하랴. 상대는 용. 그것도 용왕이었다. 경쟁하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잘못되어 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지!'

자신도 뭔가 은룡에게 해 주고 싶었다. 받기만 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느 한쪽이 지나치게 애정을 쏟아부으면 그 사이는 결국 삐걱거리지 않나. 사랑받는다고 해서 무턱대고 퍼 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수는 없었다.

'내가 뭘 해 주면 기뻐할지.......'

다인은 고민하며 마음에 들었던 연한 분홍색의 원피스를 입었다. 구두는 물론 핸드백까지 전부 구비되어 있어서 황송했다.

'일부러인가. 가격 택이 없어. 이거 반품도 안 되겠네.'

만지작거리다 내려놓고 드레스룸을 나갔다. 침실로 들어갔지만 은룡은 거기에 없었다. 먼저 옷을 입고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두근거리는 한편 긴장으로 마음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기뻐할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의 마음은 변한다. 한곳에 있지 않고 계속 이리저리 흘러간다. 그걸 알기에 다인은 자꾸만 불안해졌다. 은룡이 보여 주는 명백한 호의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대단한 것이 없다는 것을 그녀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는 탓이다.

"다인."

거실로 나가자 은룡이 그녀를 불렀다. 소파에 앉지도 못하고 서성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인의 모습을 보자마자 냉담한 얼굴에 미소가 돌았다.

"이리 와."

그저 부르는 것뿐인데도 왜 이렇게 가슴이 뛸까.

다인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은룡의 앞으로 다가갔다. 자신을 향해 뻗은 손을 잡자 은룡이 다인을 부드럽게 끌어당겨 안았다.

"앗?!"

그러고는 냉큼 안아 올려 소파에 앉는다. 다인을 제 무릎에 올려놓은 채로. 다인이 놀란 얼굴로 은룡을 보자 은룡이 서늘하면서도 달게 웃었다.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제48화

8장. 신접살림은 펜트하우스에서 (5)

"그, 그렇긴 한데......."

이런 자세로는 무리다. 그렇잖아도 고백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머릿속이 터질 것 같은데, 필요 이상으로 심박수를 올릴 필요는 없잖은가.

"저......, 저쪽에 앉고 싶은데요."

굽어지는 형태의 소파 반대쪽 끝을 가리키며 말했다. 은룡이 다인을 안고 있던 모습 그대로 일어섰다. 다인은 당황했다.

"그, 그게 아니라! 저, 저만 저쪽에 앉고 싶다고요!"

그러나 은룡은 이미 반대편 끝자리에 도착한 참이었다. 은룡은 그 자리에 앉으며 안아 들고 있던 다인을 품으로 끌어당겼다. 다인의 허벅지를 받치던 손이 올라와 다인의 뺨을 감쌌다. 부드럽게 저를 쳐다보게 한 은룡이 다인과 눈을 맞췄다.

"비의 자리는 여기다. 알고 있을 텐데?"

"보, 보통은 옆자리잖아요!"

"보통이 의미가 있나? 내가 원하는 건데."

하며 쪽 하고 다인의 뺨에 입 맞췄다. 다인은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돌렸다.

"무, 무릎 아프실 거예요. 허벅지도......."

"차라리 묵직했으면 좋겠군. 그대가 너무 가벼워서 불안할 지경이야. 손을 놓아 버리면 사라질 것 같아. 앞으로의 일도 있고....... 체중을 늘려야겠어."

머리털 나고 처음 들어 보는 소리라 다인은 얼이 빠졌다. 체중을 늘리라니. 빼라는 소리는 많이 들어 봤어도 늘리라는 말은 또 처음 듣는다.

"그 말씀......, 나중에 후회하셔도 전 몰라요."

"후회하게 해 봐, 어디. 난 네가 귀엽게 오물거리는 걸 지켜보고 있을 테니."

귀엽게 오물거렸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만. 사역인형들이 차려 준 밥상을 맛있다고 아무 생각 없이 먹다가 은룡의 뚫어질 듯한 시선을 받고 목이 멘 적은 한 번 있었다.

"아, 아무튼 내려갈래요."

기어코 허리를 안은 은룡의 팔을 풀고 그의 무릎에서 일어났다. 힐끗 은룡을 보자니 언짢은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

다인은 눈치를 보다가 아까 은룡이 앉았던, 떨어진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러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은룡이 다가왔다.

'어? 잠.......'

곁에 앉는 것도 아니고 다인의 다리 사이 빈 공간에 한쪽 무릎을 걸쳤다. 그러고는 상체를 기울여 다인이 앉은 소파 등받이에 양손을 기댔다. 물론 그 사이에는 다인의 몸이 끼어 있었다. 키스할 듯 말 듯한 위치에 다인은 굳어 버렸다.

"뭐, 뭐 하시는......."

"비야말로 뭐 하는 거지?"

언짢은 기색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은룡이 물었다. 그럼에도 짙은 냉기보다는 장난기가 묻어나는 것이 그 뒤로 웃음이 언뜻언뜻 비치기 때문일 것이다.

"......네?"

"우리는 혼례를 앞두고 있는 사이지."

"어. 네."

"반려 의식은 이미 치렀고."

"네."

순순히 답하자 씨익 웃는 은룡의 몸에서 어쩐지 검은 오라가 폴폴 새어 나오는 듯했다. 그 압도적인 기세에 다인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런데 어째서 내외하는 건가. 매일 밤 몸을 맞대고 있는 사이에. 새삼스럽게."

"제, 제 심장을 위해서요!!"

다급한 나머지 소리를 지르자 은룡의 표정이 굳었다.

"뭐?"

창피했지만 이미 쏟아 버린 뒤였다. 다인은 새빨갛게 물든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은룡 님의 얼굴은 진짜 심장에 안 좋단 말이에요! 시도 때도 없이 두근거리는 말씀을 하시면서! 그냥 가만히 있어도 목소리가 그렇게 좋은데! 여, 여기서 더 가까이 다가오시면 제 심장이......, 으힉!"

"으힉이라니......."

다인의 뺨에 입 맞췄던 은룡이 키득거리며 다인을 끌어안았다.

"내가 곁에 있는 게 그렇게 떨린다면....... 내가 만질 때는 더 떨리겠군?"

옆자리에 바싹 붙어 앉으며 은근한 목소리로 은룡이 말했다. 다인은 당황한 얼굴로 옆으로 슬금슬금 달아났다.

"그, 그렇지요."

은룡이 비식거리며 다인을 따라 몸을 움직였다. 소파 끝까지 몰린 다인은 아예 소파 끝에 아슬아슬하게 엉덩이만 걸친 꼴이 되었다. 자리가 부족하여 멈칫하는 다인에게 은룡이 속삭였다.

"그럼 내가 삽입했을 때는 어땠지?"

"네? 앗!"

은룡의 말에 정신이 팔린 다인이 소파 밖으로 떨어졌다. 은룡이 잽싸게 그녀를 안아 제 무릎에 올려놓지 않았다면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다인은 다시 원상 복귀되었음을 깨닫고 은룡을 쳐다보았다.

"놔, 놔주세요!"

"또 소파 밖으로 떨어지려고 그러나? 이번에는 안 되지. 자꾸 그렇게 도망치려고 들면......."

다인의 손을 잡아 그 손바닥을 자신의 얼굴에 대며 은룡이 나른하고 유혹적인 시선을 보냈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아 다인은 정신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나도...... 진심으로 그대를 쫓게 돼....... 그걸 원하나?"

그 끝에 뭐가 있는지 너도 알잖아, 하고 은룡이 덧붙이자 다인은 새빨갛게 물들었다. 다인은 은룡을 똑바로 보지 못한 채로 고개를 숙였다.

"아......, 아니요."

"유감이로군."

다인의 손을 놓아주며 은룡이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살피는 듯한 시선으로 다인의 표정을 살피며 턱을 매만졌다.

"그래서?"

나머지 팔로는 여전히 다인의 허리를 안은 채였다.

"내게 하려던 말이 뭐지?"


'나중에 말할 걸 그랬나.......'

거실에 들어섰을 때, 자리에 앉지 말고 그냥 말할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미 뽑은 칼이었다. 무는 못 썰 망정 두부라도 썰어야 하지 않겠나.

"제, 제가요."

"음."

왠지 너무 궁색한 것 같다. 누구는 멋들어지게 극적으로 고백을 잘만 하던데.

'현실은 이런 거지.'

다인은 어쩐지 울고 싶어졌다.

"으, 은룡 님을...... 조......."

말을 꺼내며 힐끗 은룡을 본 다인은 놀랐다. 은룡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다인을 보고 있었다. 다인이 말을 멈추자 은룡이 당황한 듯 다인을 보았다.

"......."

겹쳐지는 침묵 속에서 다인은 멈칫거렸다. 입을 꽉 다물고 인내하던 은룡이었으나, 더는 침묵을 참을 수 없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조...... 다음에 뭐지?"

"어."

홱 다인이 고개를 돌렸다. 은룡은 미칠 것 같았다. 이 분위기며 첫 단어의 음절이 제가 바라는 그것 같은데, 말을 해 주지 않았다. 자존심도 없이 독촉하는데도 그랬다.

"조......."

심장이 타들어 가고 목구멍이 바싹바싹 메말랐다.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보는 다인 또한 비슷한 기분인지 목덜미와 귓불까지 빨갛게 물든 것이 보였다. 재촉하면 안 된다고 제 허벅지를 찌르는 심정으로 은룡은 참고 또 참았다.

"......."

말이 나올 듯 말 듯 입술을 달싹이던 다인이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은룡은 바싹 신경을 곤두세웠다.

"조,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앗."

확 부둥켜안은 은룡이 아프게 껴안아 왔다. 놀라 쳐다보는 다인과 은룡의 시선이 부딪쳤다. 새파란 눈동자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으로 흔들렸다.

"다시 말해 봐."

너무 가까워서 숨결이 뺨에 닿았다.

"너무 작아서 제대로 안 들렸어. 다시."

다급한 음성 곳곳에 조급함이 묻어났다. 애원하는 듯한 안타까운 시선에 은룡을 보는 다인의 눈이 커졌다. 이건.......

다인이 대답하지 못하고 눈을 깜박였다. 자신이 본 것이 잘못되었나 싶었다. 저런 표정으로 그런 말을 할 리 없는데. 은룡이 한숨같이 중얼거렸다.

"내가 잘못 들었나......."

"좋아해요."

가슴이 뜨겁다. 다인은 어느새 은룡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부끄러웠지만, 지금 그의 눈빛과 표정을 놓치면 후회할 걸 알았다. 마주 봐야 했다.

"......."

은룡이 다인의 짙은 다갈색 눈을 들여다보았다.

"......다시."

"조......."

내려 뜬 다인의 눈동자가 숨 막히게 고혹적이었다. 그녀가 눈을 깜박이며 사랑스러운 빛깔로 뺨을 물들이며 은룡을 보았다.

"좋아해요....... 은룡 님."

떨리는 목소리로 분명하게 전한 말에 은룡의 가슴이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렸다. 홧홧해진 얼굴이 타는 듯이 뜨거워져 은룡은 전에 없이 당황했다. 이토록 기쁘고 격렬한 감정의 변동을 그는 겪어 본 일이 없었다. 벅차오르는 감정의 열기에 폭발해 버릴 듯했다.

"나도 사랑해."

쏟아 내듯 고백하자 다인의 눈이 커졌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달싹이는 입술이 그를 바라보는 은룡을 매혹시켰다.

"저도 사......, 사랑해요....... 음......."

그 마지막 음절을 듣는 것까지가 한계였다. 이끌리듯 짧게 입 맞추고 보드라운 입술을 마음껏 핥고 빨며 그녀의 달콤함을 취했다. 밀어붙여진 힘을 이기지 못한 다인이 자꾸만 뒤로 몸이 기울어지자 아예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끌어안았다.

당황한 다인의 눈빛이 떨렸다.

"아, 안 돼요....... 또 그런......."

"밤에는 되나?"

부드럽게 어르는 목소리로 은룡이 속삭였다. 마치 맹수가 갸르릉거리는 것을 듣고 있는 듯한 기분을 맛보며 다인이 끄덕였다.

"참아 보지. 그치만...... 날 기다리게 하는 대가는 치러야 할지도 몰라."

하며 웃는 은룡의 눈빛에서 광기마저 느껴졌다. 다인이 긴장한 듯 침을 꼴깍 삼키자 은룡이 고혹적인 웃음을 흘렸다.

"그렇다고 무서워할 건 없어. 나는 그대의 노예니까......."

"알잖아?"라고 속삭이며 은룡은 다인의 뺨에 입 맞췄다. 허리의 잘록한 부분으로 은룡의 팔이 감기고 다시 입술이 포개졌다.

"그대가 내게 사랑을 주는 동안은...... 나는 완벽히 그대만의 것이야."

그러니 날 놓을 생각 마.

제49화

8장. 신접살림은 펜트하우스에서 (6)

입술이 얼얼했다. 껴안긴 채로 정신없이 키스당하고 얼러져 다인은 은룡이 무얼 원하는지도 모른 채로 안겨 있었다. 애원하는 대로 좋아한다는 말을 속삭이고 다시 키스 받고......, 그러는 사이 머릿속으로 무슨 연락이라도 닿았는지 은룡이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은룡 님?" 하고 묻자 은룡이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다인을 보았다. 손을 놓고 다인의 위에서 몸을 일으켜 소파에서 내려갔다.

"시룡 님이 만남을 청했다는군. ....... 되도록 빨리 끝내고 돌아오겠다."

은룡은 다인의 입술에 부드럽게 한 번 더 키스를 하고는 현관으로 향했다. 정신이 없어서 은룡이 나가는데 제대로 배웅도 하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현관으로 나갔을 때는 은룡이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도술을 썼나?'

그쪽은 다인에게 있어 완전한 미지의 세계였다. 마법이라고 하면 온갖 판타지 소설에서 읽어라도 봤지.

은룡이 좋기는 했지만 아직은 긴장되는 상대였다. 그 은룡이 사라진 덕분에 다인은 마음 편히 펜트하우스를 구경하기로 했다. 1층부터 4층까지 뚫려 있는 현관홀 때문에 1, 2층짜리의 펜트하우스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인은 1층 복도 끝까지 가 본 후에야 뒤쪽에도 방과 복도가 더 있음을 알았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은 총 3개였다. 장식적인 의미까지 더해진 화려한 계단과 그 절반 정도의 크기인 것이 두 군데 있었다.

안쪽 숨겨진 장소에는 엘리베이터도 있었다. 문처럼 생기지 않은 장식 패널에 가려져 있어서 자동으로 열리지 않았다면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엘리베이터는 5층까지였다. 다인은 아래에서부터 한 층 한 층 올라가는 것보다 위로 올라가서 한 층씩 내려오기로 마음먹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층을 누르자 엘리베이터는 소음도 없이 위로 올라갔다.

1, 2층은 많은 물건으로 채워져 있었는데 5층은 아니었다. 급하게 준비한 곳일 테니 차라리 이런 점이 더 마음에 들었다. 이곳까지도 온갖 가구와 물건으로 꽉꽉 채워져 있었다면 오히려 남의 집에 놀러온 듯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2층에서 본 침실도 넓었지만, 5층은 더욱 큰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두 개의 방은 채워져 있지만 나머지 방은 비어 있었다. 다인은 그중에서도 벽 한 면이 완전히 유리로 되어 있는 커다란 방이 마음에 들었다.

그곳에 서서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무언가 팔랑거리며 시선을 끌었다. 옅은 황금빛을 뿌리며 가볍게 날아다니는 나비였다.

'어?'

진짜 나비가 아님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빛나는 나비 같은 건 실제로는 없으니까. 다인은 휘둥그레져서 그것이 허공을 배회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나비는 다인의 시선을 끌듯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위치에서 춤을 추었다. 그러고는 어딘가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뭐지? 따라오라는 건가?'

막 용궁에서 도망쳤을 때에, 다인을 데리러 왔던 자들이 나비를 전령으로 삼아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보았다. 다인은 이번 또한 그것의 일종인가 하여 쫓아갔다.

나비는 복도를 가로질러 정원으로 통하는 거실로 날아들었다. 다인은 아까 이 복도를 지나며 5층에 정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유리문 너머로 정원이 보였다. 다인은 그것을 떠올리며 거실로 들어갔다.

'저건.......'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위치에 그것이 있었다. 다인은 유리문을 열고 옥상 정원으로 나갔다. 정원은 야트막한 화단이 조성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나무들이 제법 컸다. 그 나무들 사이로 양팔로도 다 감쌀 수 없을 것 같은 크기의 그것이 있었다.

무지개.

'어디선가 무지개는 용의 권속이라는 내용을 읽은 적은 있지만.......'

다리 한쪽이 옥상 정원의 난간에 걸쳐져 있다. 당연히 자연스러운 모습은 아니었다. 다인은 이것이 은룡이 자신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라 짐작하고 웃음 지었다.

'무지개를 보고 싶다는 말은 안 했던 것 같은데.'

무지개 끝에는 요정이 황금 항아리를 숨겨 놓았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다인은 호기심에 차서 난간 끝으로 다가갔다.

이것도 도술로 만들어 낸 것일까? 무지개를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다니 신기하기만 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무지개의 끝이 난간에 바로 닿아 있지 않고 약간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무지개의 끝에서는 각각의 색깔에 따른 옅은 입자가 흩어지고 있었다.

'신기해라. 진짜 무지개도 이런 느낌일까?'

바라보고 있자니 아까의 나비가 무지개 속에서 나타났다. 다인을 유혹하듯 팔랑팔랑 춤을 추더니 정확히 무지개 위에 앉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위치.

마치 그녀에게 온 메시지를 받으라는 듯이 나비는 얌전히 앉아 있었다. 난간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 15cm정도 떨어져 있을까? 다인은 의심하지 않고 나비를 향해 난간 밖으로 손을 뻗었다.

【용비님.......】

소름이 끼칠 만큼 매혹적인 목소리로 누군가 다인을 불렀다. 흠칫 정신을 차렸을 때는 강한 힘에 의해 손이 당겨져 난간 밖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무지개도 황금빛 나비도 물거품처럼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함정. 깨달은 순간 거대한 용의 손이 떨어지는 다인을 낚아채 구름 위로 올라갔다. 다인은 그 손이 발하는 힘에 의해 정신을 잃었다.


"은룡 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시종의 알림에 주향과 대화를 나누던 시룡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녀들이 문을 열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리며 은룡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상당히 언짢은 표정이었다. 시룡은 피식 웃으며 은룡을 맞이했다.

"뭐야? 마침 잘 왔다고 하려던 참인데. 나한테 따질 얼굴이네?"

"혼례 날짜를 결정하셨다 들었습니다."

"뭐?"

순간 정적이 일었다. 놀란 주향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은룡의 얼굴이 일변했다. 분노로 타는 듯한 그의 눈동자에 주향은 당황했다. 은룡이 홱 몸을 돌렸다. 그의 눈동자가 금빛으로 변하며 반듯한 이마로 뿔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은룡! 진정해!"

주향의 외침에 은룡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돌아보았다. 그는 주향이 아닌 시룡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죽일 겁니다! 말리지 마십시오!】

"은룡!!!"

시룡이 소리쳤지만 은룡은 듣지 않고 방을 나갔다. 남아 있는 사람들이 당황한 듯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시룡이 자신의 시종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용연은 아직 근신하고 있지?"

"예....... 궁으로 돌아가신 후에 두문불출하신다 들었습니다."

용들의 혼례 날짜를 정하는 것은 시룡의 권한이었다. 용왕의 혼례에 감히 잡스러운 것들이 끼지 못함은 당연한 일이지만, 경사스러운 날을 골라서 식을 올리게 수호해 주는 것이 수장인 시룡의 역할이기도 했다.

"감히 나를 사칭하다니......."

다인은 이미 자의로 은룡과 반려의 계약을 맺었다. 그러하다면 권리는 당연히 은룡에게 있었다. 또한 이 권리와 용의 신부인 다인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수장인 시룡의 의무였다.

"은룡의 행위는 비난할 수 없으나 인간의 땅에서는 안 돼. 주향,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지?"

"하지만....... 상대도 용왕일 겁니다."

일반 용을 처벌하는 것과 용왕에 대한 처분은 무게가 달랐다. 용왕은 세계의 기둥 일부를 담당하는 자들이었다.

"최악의 경우...... 새로운 용왕을 뽑아야겠지."

시룡이 힐끗 주향을 쳐다보았다. 주향의 표정이 뭔가 불안해 보인 탓이다. "누군지 짐작하는 자가 있나?" 하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진룡인가?"

"아직 확신할 정도는 아닙니다."

주향이 재빨리 말했다. 그러나 시룡 또한 어느 정도는 진룡으로 생각을 굳힌 표정이었다.

"신부를 고를 때에 그가 가장 먼저 다인을 선택했다 들었다. 자신이 선택했으니 제 신부라는 의식이 자리 잡았을 수도 있지."

하며 주위로 고개를 돌렸다. 시룡이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

"진룡은 지금 어디에 있나?"


창밖으로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밝은 빛 속을 걷는 사람들, 모두가 하나같이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고 있어 주변 어디로도 시선이 닿지 않았다. 오로지 앞과 뒤, 한 방향만을 쫓아 걸어가고 있었다.

여긴 어디지?

다인은 창문 안쪽에 있었다. 이쪽은 어두웠다. 텅 비어 있는 실내로 창밖의 불빛이 스며들고는 있지만, 해질녘이 훌쩍 지나가 버린 듯이 어둡다. 혹은 태양이 건물의 반대편으로 넘어가 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림자가 깊고도 짙게 깔려 있었다.

[용비님.......]

물속에서 울리는 것이 아닌가 싶은 먼 데서 울리는 목소리. 다인은 자신에게 말을 건 남자가 있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그는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앉아 주시겠습니까?]

자신을 향해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이 어쩐지 보이지 않았다. 눈의 윤곽과 코의 윤곽, 입이 움직이는 것이 보이는데 어딘가 뚜렷하지 않다. 어둡기 때문에? 이유를 모르겠다.

문득 누군가를 두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지? 뜻밖에도 그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다인은 당황했다. 무언가 소중한 것이 있었는데, 그걸 잊어버린 기분이었다.

[저와 이야기하면 기억나지 않을까요?]

유혹하듯 달콤하게 울리는 목소리를 듣고 다인은 그를 쳐다보았다.


"폐하....... 폐하! 그것은 안 될 일입니다!"

"그분은 이미 반려를 선택하셨다 들었습니다!!"

"폐하! 멈추십시오!!"

굳게 닫힌 문 너머로 신하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진룡은 그 목소리들을 한 귀로 흘리며 팔걸이의자에 앉아 있는 다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진룡의 도술에 의해 정신을 잃은 채로 꿈을 꾸고 있었다. 그 꿈이 깨어나면 그녀는 은룡에 관한 모든 기억을 잃게 될 것이다.

"미안합니다. 은룡의 기를 너무 많이 받아서...... 일이 더디군요."

속삭이며 진룡은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그는 다인의 바로 앞에 의자를 둔 채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건 도술로 인해 상태가 변할 수도 있었으므로 곁에서 계속 그녀의 안색을 지켜봐야만 했다.

"당신이 도망쳐 나왔을 때에 내가 당신을 보호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을......."

뻗어 온 희고 우아한 손가락이 다인의 이마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많이 사죄하고...... 사랑해 드리겠습니다. 다인......."

제50화

8장. 신접살림은 펜트하우스에서 (7)

앉을까? 그의 맞은편에. 그러나 문득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다인은 걸음을 멈춘 채로 무언가를 떠올리려고 애썼다.

뭐지? 떠올리려고 하면 할수록 누군가가 머릿속에서 기억을 빼내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무엇을 잃었는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사람인지, 물건인지......, 아니면 날짜인지, 시간인지, 자기 자신인지까지도.

다인은 가만히 테이블 너머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창으로 들어온 햇살에 그의 머리카락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색이 옅은 금발이 찬연하게 빛나는 광경은 그와는 다른 서늘한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누구지? 멍하니 바라보는 사이 테이블 너머의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다인은 그의 손을 잡기 위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 멈칫하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감미로운 목소리가 부드럽게 울렸다. '이 사람이 아니야.......' 하고 다인은 생각했다. 그녀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였더라?

다인은 눈을 깜박였다. 가슴속이 어쩐지 뜨거웠다. 간질간질하는 것 같기도 하고......, 두근두근하고 울리는 심장의 박동 위로 무언가 겹쳐졌다. 어쩐지 알 것도 같아서 다인은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심장에 새겨진 무언가가 그녀의 손바닥으로도 옮겨 갔다. 다인은 손을 들어 자신의 손바닥에 새겨진 각인을 바라보았다. 서늘한 푸른빛을 머금은 은빛이 서서히 강해지며 주변을 태울 듯 번져 갔다. 다인은 자신을 집어삼킬 듯 커져 가는 빛 속에서 가만히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인 님!]

테이블 너머의 그가 불렀으나 다인은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제 가슴속에서 옮겨져 온 각인이 무엇인지 떠올리고 있었다.

용의 각인. 또한 용왕의 각인이기도 했다. 그 주인을 닮은 푸르도록 시린 은빛. 푸른빛을 머금은 은빛 용의 기운.

다인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은룡...... 어디에 있어요?]


다인이 번쩍 눈을 떴다. 그녀의 무릎 앞에 의자를 두고 앉아 있던 진룡이 흠칫 그녀를 보았다. 무언가 잘못되었나? 한순간 은룡의 기운이 방출되었다가 다인의 안으로 갈무리되는 것 같았다.

"다인......."

기간을 요 몇 주로 한정을 두었다. 그러니 그녀의 가족과 일상에 대한 기억 대부분은 남아 있을 터였다. 지워진 것은 용 축제 의식과 용에 대한 것들뿐이다.

다인은 대답하지 않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높은 천장과 기둥을 가진 거대한 방이었다. 장식으로 보아 어딘가 궁전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알았다.

"여긴 어디예요?"

그녀가 크게 당황하고 겁먹지 않을까 긴장했던 진룡은 안도했다.

"제 사저입니다."

대답하는 순간 다인의 질문이 평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더더군다나 그를 알아보는 것 같은 눈치였다. 역시나 다인은 진룡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한테 뭔가 했어요?"

차가운 목소리였다. 순간 수치심과 자괴감에 진룡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곳으로 모셔오고......."

당신의 기억을 지우려 했습니다. 이 얼마나 뻔뻔하고 무례한 행위인지. 알고 있기에 진룡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도술로...... 당신의 기억을 지우려 했습니다."

"기억, 전부요?"

"은룡에 대한 것......뿐입니다."

다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위를 돌아보고는 문을 향해 움직였다.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던 진룡이 그녀를 쫓았다.

"어디를 가려는 겁니까?"

"돌아가야 해요. 지난번 용연 님이 비슷한 짓을 저질렀을 때, 은룡 님이 했던 걸 아시잖아요. 또 싸우게 되면 안 돼요."

시룡이 또다시 은룡을 다른 차원에 가둘 수도 있다. 거기다 진룡과 싸워서 크게 상처 입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어느 것이든 다인이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다인 님."

뒤따라오는 진룡을 무시하고 다인은 문으로 다가갔다. 양각이 되어 있는 문은 손잡이가 달려 있지 않았다.

'어떻게 여는 거야? 밀면 되나?'

다인이 문에 손을 대기도 전에 진룡이 다인의 등 뒤에서 손을 뻗었다. 문을 열지 못하게 하려는 듯 문을 누르는 손길에 다인은 그를 노려보았다.

"뭐 하는 거예요?"

"왜 그에게 돌아가려 하십니까? 이미 한 번 도망쳐 나오신 것으로 압니다."

다인은 진룡이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감정적으로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 진룡과 다인은 친구는커녕 서로 인사말을 나눈 사이도 아니었다.

'내가 은룡을 좋아하는 걸 스톡홀름 신드롬 같은 걸로 생각하는 거 아냐?'

홱 몸을 돌려 진룡과 마주 보자 진룡이 동요하듯 다인을 보았다.

"은룡 님이 싫어서 도망친 게 아니에요. 대체, 누가 만난 지 한 달도 안 돼서 결혼하자는 소리를 해요? 전제부터가 잘못되었어."

하고는 문의 튀어나온 부분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인은 다시 진룡을 노려보았다.

"열어요."

"돌아가지 마십시오. 당신은 지금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면서도 진룡은 다인의 몸에 손을 대지는 못했다. 그녀가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음을 진룡은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손을 잡는 것은커녕 머리카락 끝에 닿는 것에도 다인의 경멸을 불러올 것임을 알고 있었다.

"착각하는 건 진룡 님이세요."

다인은 문의 조각을 더듬으며 어느 것이 문의 개폐 스위치일까 고민했다.

"처음부터...... 내가 은룡 님을 선택했다고요."

안으로 움푹 들어간 공간을 발견한 다인이 그곳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안을 누르자 문이 소리도 없이 열렸다.

"은룡 님이 날 선택한 게 아니라."

다인이 문을 활짝 열었다.

"내가 은룡 님을 선택한 거예요."

그리고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밖으로 나갔다.


"용비님!!!"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문 밖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눈치를 보며 잽싸게 다인의 발치에 머리를 조아렸다. 눈살을 찌푸린 다인은 슬금슬금 그들을 피해 복도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거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은룡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인!!!】

쿠웅! 하고 건물이 조금 흔들렸다. 천장에서부터 돌 부스러기가 떨어져 다인은 벽 쪽으로 달려가 붙었다. 복도 끝에 창문이 있는 벽이 통째로 뜯겨 나갔다. 열린 공간으로 용의 거대한 몸체가 보이자 다인은 반색했다.

"다인!!"

새하얀 빛으로 변한 용이 복도로 흘러들어 왔다. 순식간에 줄어든 그것은 은발을 늘어트린 청년의 모습으로 변하여 다인에게 달려왔다.

다인은 자신도 모르게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은룡의 목에 매달렸다. 은룡은 다인의 몸을 끌어안으며 그녀가 겁먹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 하나에 감사했다.

은룡이 문득 다인을 자신의 품에서 떼어 내어 등 뒤로 감췄다. 어느새 방에서 나온 진룡이 타는 듯한 시선으로 두 사람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째서......."

목이 멘 듯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언제나 절제된 모습만을 보여 온 진룡이기에 그는 스스로 자신이 낸 목소리에 놀라고 있었다.

"은룡입니까?"

납득할 만한 대답 같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진룡도 알았다. 그러나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갖고 싶었으니까."

무심코 튀어나온 본심에 다인은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늦었다. 진룡은 물론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던 진룡의 신하들까지도 멍하니 다인을 쳐다보았다. 은룡은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풀리려 해서 표정을 가다듬었다.

다인은 창피해졌다. 은룡의 옷자락을 당기며 말했다.

"빠, 빨리 돌아가요. 집으로."

"그래."

힐끗 진룡을 노려본 은룡이 다인에게 다정한 시선을 던졌다. 은룡은 다인을 한 팔로 안아 들고는 자신이 뚫어 놓은 벽의 구멍 속으로 몸을 날렸다.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이 아닌가, 긴장했던 몸은 둥실 떠올랐다.

하늘 위, 구름 아래쪽에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가마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때의 가마와는 장식이나 색이 좀 달랐고, 가마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인은 은룡에게 안긴 채로 돌아보았다. 자신이 납치된 곳이 백 층이 넘을 듯한 거대한 빌딩이었음을 깨닫고 놀랐다.

"저런 거...... 서울에 없는데. 여기 어디예요?"

"서울 맞아. 환술로 감춰 둬서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뿐이야."

그들의 몸이 가까워지자 가마꾼들이 가마의 문을 열었다. 은룡은 다인과 같이 가마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에 등이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불빛 외에도 등불이 은은한 빛을 주위로 뿌리고 있었다.

"괜찮은가?"

다인을 끌어안은 채로 가마 바닥에 앉은 은룡이 부드럽게 물어 왔다. 실은 괜찮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전혀 모르는 곳에 와 있었다. 당연히 놀랐고 무서웠다. 다인은 대답하지 않고 은룡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가 이렇게 빨리 와 주어서 안심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서웠다는 사실을 말해 은룡을 괴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금방 내가 있는 곳을 알았어요?"

"반려의 계약을 맺으면 상대가 있는 곳을 알 수 있어. 너도 느끼지 않았나?"

느꼈다. 그리고 진룡에게 억류된 상태임에도 은룡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기분이 다인을 침착하게 행동할 수 있게 했다.

"은룡."

"응."

대답하며 은룡이 다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뭐든 말해. 뭐든 들어 주마."

"이 일로 진룡과 싸우지 말아요."

다인을 바라보던 은룡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짧은 사이에 무언가 있었나 하는 불안감과 분노가 스치는 것을 보고 다인은 은룡의 옷깃을 잡았다.

"그게 아니라, 용끼리 싸우면 안 된다면서요. 지난번에 다른 세계로 쫓겨났었잖아요."

지난번에는 시룡이 같이 가는 것을 허락해 주었지만 이번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나는 그렇게 되는 거 원치 않아요. 은룡이 계속 내 곁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어요.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고......."

나 때문에 곤란해지지 말았으면 좋겠어.

제51화

8장. 신접살림은 펜트하우스에서 (8)

탁하게 가라앉은 푸른 눈동자에서 어두운 빛이 진득하게 일렁였다.

"......싸우지 않는다는 말은 못 해. 하지만....... 처벌받지 않는 선에서 움직인다는...... 노력은 해 보지."

은룡의 성정에 그 자리에서 진룡을 찢어 죽이지 않고 다인만 데리고 온 것만도 대단한 일이었다. 단지 다인이 그곳에서 가고 싶다고 했기에. 그녀의 의사와 감정이 우선이어서 다인을 데리고 자리를 피했을 뿐이었다.

그의 안에 복수심과 증오는 아직 남아 있었고, 그 불길은 태울 대상을 향해 뻗어 나가지 못해 분노하고 있었다.

"용족에게 법률은 없나요?"

"있지. 수장이 그를 집행하는 존재야. 그러나 대부분은 자신의 힘으로 되갚아 나가는 걸 선호한다."

용은 강대한 힘과 권력을 가진 것이 당연한 존재였다.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했을 때에도 외부의 힘을 빌리기보다는 스스로 처벌하는 것을 원했다. 그러나 용과 용이 싸움을 벌이면 인계에 막대한 피해가 일어나므로 수장이 움직여 싸움을 중재하고 처벌했다.

'지금쯤 시룡이 당도했겠군.'


둥실 떠오른 발끝이 금이 간 바닥에 사뿐히 내려섰다. 감상하는 듯한 눈으로 돌아보는 듯하면서도 시룡의 눈은 냉정했다. 그를 따라 빌딩의 부서진 벽 안으로 들어서며 주향은 신경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진룡의 가신들은 모두 고개를 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들은 벌벌 떨며 바닥을 기고 있었다. 시룡이 제 기운을 갈무리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에. 주향조차도 숨을 쉬기가 버거웠다.

"......도망 안 갔네?"

"시룡 님."

진룡은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로 시룡을 응시했다. 보고 있되 생각은 다른 곳에 가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네 놈이 이것보다는 약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

"......."

뚜벅뚜벅 걸어오는 시룡의 옷자락이 펄럭였다. 시룡은 자신보다도 키가 큰 진룡을 쳐다보며 짜증스레 미간을 찌푸렸다.

"이미 경고했을 것이다, 진룡. 두 번의 기회는 없다. 용왕으로서 마땅히 다른 용의 반려를 보호해야 하는 책무를 잊고 경거망동했으니....... 그 죄를 엄히 다스려야 함을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명색이 용왕이니."

시룡의 빈정거림에 진룡은 입을 다물었다. 시룡은 그 얼굴을 보고 용연의 처벌을 뒤로 미룬 것을 후회했다.

경사스러운 일을 앞두고 있기에 처벌을 미뤄 두었을 뿐, 용연이 은룡의 연인이 된 다인을 납치한 것을 용서한 것은 아니었다.

진룡이 비단 그런 이유로 이런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닐 테지만, 용연에 대한 처벌을 서둘렀다면 진룡이 그때에도 이런 짓을 저질렀을까 싶었다.

"판결을 내리겠다."

서릿발 같은 목소리에 진룡의 신하들이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진룡 또한 무형의 기운에 의해 어깨가 짓눌려 강제로 무릎을 꿇게 되었다.

"용왕 용연에게는 다른 용의 연인을 해하려 했던 죄를 물어, 금고 5천 년 형에 처할 것이다. 다만 그의 직위가 용왕이고, 그가 해야 하는 본분이 있으니. 그의 연금을 용연이 머무는 용궁으로 할 것이며, 차후 3천 년간 인간세계에 올라오는 것을 금할 것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엄한 처벌에 주향은 몸을 움츠렸다. 시룡이 서릿발 같은 시선을 들어 진룡을 바라보았다.

"용왕 진룡. 처벌을 받기에 앞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없습니다."

진룡이 무감한 목소리로 말하자 신하들이 펄쩍 뛰었다. 진룡 님! 하는 외침이 새어 나오자 시룡이 짜증스레 그들을 보았다. 신하들은 얼른 제 입을 막았다.

"좋다. 판결을 내리마."

시룡이 진룡을 내려다보았다.

"용왕 진룡은 들으라. 모든 용을 이끄는 수장의 권위로 너의 용왕직을 폐할 것이며, 뿔이 잘린 채 8천 년의 시간을 귀옥에서 보내야 할 것이다."

"시룡 님!"

주향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들렸으나, 시룡은 이를 무시했다. 시룡은 진룡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룡은 각오한 일인 듯 웃음을 흘렸다.

"......무르시군요. 저는 제 목을 잘라 가실 줄 알았습니다."

"경사스러운 날을 앞두고 피를 흘릴 필요는 없지. 네 목숨은 귀옥의 악귀들이 알아서 하지 않겠느냐?"

"글쎄요......."

뿔이 잘린다는 것은 도술을 사용하지 못함을 의미했다. 신통력을 잃고 인간의 모습으로 8천 년을 귀옥에서 버텨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다른 용의 반려가 된 여인을 잡아가서 어찌하려고? 화풀이로 죽이려 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

"기억을 지우고자 했습니다."

진룡은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 말에는 주향의 표정도 얼어붙었다. 시룡은 그저 차가운 눈으로 진룡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은룡에 대한 기억만을요. 그런데 안 되더군요......."

말하는 진룡의 눈가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시룡은 눈살을 찌푸렸다.

"기억을 지우면 널 사랑하게 될 줄 알았더냐?"

"최소한 제게 기회는 생겼을 겁니다."

"기회가 생겨서 뭐. 평생 나와 은룡에게 쫓기며 살 생각이었나?"

일그러진 웃음이 진룡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그렇다 한들. 뭐가 그리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제 팔 안에 그녀가
있었을 텐데요. 그에 대한 상상이 스치는 것만으로도 한순간 진룡의 얼굴이 환해졌다가 다시 불빛이 사그라들듯 표정이 사라졌다.

"제가 후회하는 것은......."

꿇은 무릎 앞으로 눈물이 한두 방울 떨어졌다.

"좀 더 빨리 이 땅으로 올라와 그녀를 먼저 만나지 못했다는 것. 그저 그뿐입니다."

"그래도 다인은 은룡을 만났을 테고, 결국 그를 선택했을 것이다. 너는 네 스스로 너의 미래마저 닫아 버렸으니. 안타깝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이미 한 번의 기회를 주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에 동정의 여지 또한 없다."

인정한다는 듯이 진룡은 고개를 숙였다. 시룡은 짜증스레 등을 돌렸다.

"집행해라."

주향이 안타까운 듯 진룡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다인은 은룡의 품에 안긴 채로 잠이 들었다. 의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많이 놀라고 지쳤을 것이다. 은룡은 조심스럽게 다인의 몸에 잠들어 있는 제 기운을 확인했다. 여러 날 거듭하며 자신의 기를 불어넣었다. 다른 용이 다인에게 도술을 썼다면 그것과 부딪혀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다.

'머릿속을...... 헤집으려 했나.'

진룡에 대한 분노를 누르며 은룡은 이를 악물었다. 그 외의 곳에서 진룡의 기운은 감지되지 않았다. 용은 그 기가 강렬하여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흔적을 남기고는 했다.

은룡은 진룡이 다인을 직접 옮겼다는 것은 어렴풋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다인의 태도에 흐린 구석이 없었으니 다인이 깨어 있을 때에 무리한 짓은 하지 않았을 거라 확신했다. 그도 용왕이기는 하니 다인이 잠든 사이 무언가 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것을 다인이 믿는 것과는 별개였다.

'진룡.......'

어둡게 끓어오르는 분노가 그를 집어삼킬 듯했다. 은룡의 품에 다인이 안겨 있지 않았다면 그는 곧바로 진룡에게 갔을 것이다.

【폐하.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가마 밖에서 가마꾼들이 물어 왔다. 은룡은 다인을 찾아다니며 이미 마음을 정한 곳이 있었다.

【용궁으로 돌아간다.】

【알겠습니다.......】

깊은 잠에 빠진 다인이 작게 몸을 뒤척였다. 은룡은 다인이 좀 더 편히 쉴 수 있도록 자세를 바로잡아 주며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미안하다, 다인......."

혼자 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시룡을 만나러 가는 길에 다른 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다인을 데려가지 않았다. 다른 용이 다인을 보는 것이 싫었다. 용연이나 진룡과 같은 자가 또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여겼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다."

속삭이며 은룡은 다인의 머리카락 위에 입 맞췄다.

이러는 사이에도 가마는 빠르게 용궁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은룡은 다인이 푹 쉴 수 있도록 그녀에게 숙면을 취하도록 하는 도술을 걸었다.

9장

용왕의 혼례 준비 上 (1)

푹 자고 난 것처럼 개운했다. 다인은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사람이 은룡이라는 사실에 기뻤다. 정신이 들자마자 자신을 싸안고 있는 은룡의 팔과 가슴이 느껴졌다. 눈을 뜨니 부드럽게 바라보는 은룡과 눈이 마주쳤다. 기쁘지만 어딘가 부끄럽다.

"푹 잤나?"

그러고 보니 매일 밤 은룡에게 시달리느라 늦잠을 못 잤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밤마다 은룡에게 시달리는 것치고는 늦게 일어나도 피곤하지는 않았다. 눈을 떴을 때에 드는 기분이란, 감미로운 나른함과 달콤한 열기뿐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안고 자는 것도 좋다.'

다인은 웃으며 은룡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은룡 또한 당연하다는 듯이 다인을 끌어안았다. 다인은 문득 침대 느낌이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펜트하우스의 다른 방인가?

굉장히 넓은 침대였다. 장정 대여섯 명이 함께 누워도 충분한 크기였다. 침대 밖으로 떨어지려면 한참을 굴러야 할 듯한 크기다. 네 개의 기둥이 달리고 두꺼운 커튼이 달린 것이 어딘가를 연상시켰다.

"용궁이다."

다인의 궁금증을 눈치챈 듯 은룡이 말했다. 다인은 휘둥그레졌다.

"어디요? 어느 용궁......."

주향의 궁전도 용궁이기는 했다. 꼭 바닷속에 살지 않아도 용이 사는 궁전이 용궁이니까. 은룡은 다인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답했다.

"당연히 내 궁이지."

제52화

9장. 용왕의 혼례 준비 上 (2)

그동안은 은룡에게 강제로 끌려갈까 봐 경계하고 있던 장소였다. 그와 반려의 계약을 맺고 혼인하기로 결심했으니 이제 무서울 것은 없었다. 오히려 궁금하기까지 했다.

"그, 그러면 펜트하우스는."

"펜트하우스가 마음에 들었다면 다른 곳을 사 주마. 거긴 처분할 거다."

다인에게 끔찍한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을 남겨 둘 생각은 없었다. 다인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처분이라는 말을 썼지만, 아예 무너트려 흔적도 남기지 않을 작정이었다.

'불안해서 여기로 데려왔을까?'

살피는 듯한 시선으로 다인은 은룡을 바라보았다. 은룡의 푸른 눈동자에서 여전한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일렁이는 눈동자가 이전처럼 차분하게 가라앉기를 바랐다.

"나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 사람이 내 기억을 지우려고는 했지만 실패한 것 같고......."

"기억을 지우려 했다고?"

높아지는 음성에 다인은 실수했다 싶었다. 다인이 놀란 얼굴로 입을 다물자 은룡은 후회하듯 다인을 보았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

"실패했어요. 나......, 은룡 님을 전부 기억하니까. 가마에서 잠들었을 때. 꿈을 꿨어요."

되돌아온 기억을 하나하나 복기하듯 하나하나 꼽는 꿈이었다. 주향의 궁전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며 은룡을 만난 것, 그 후의 일까지도 다인의 주변을 맴돌다 그녀에게 흡수되었다. 그래서 기억이 무엇 하나 소실되지 않고 되돌아왔음을 믿을 수 있었다.

"떨어져 있어도 같이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무섭지 않았어....... 화내지 말아요."

거짓말이군. 정신을 잃고 납치를 당했다. 눈을 떴을 때에 낯선 장소에 와 있는데 어떤 사람이 겁을 먹지 않을 수 있는가. 은룡은 다인이 걱정하는 마음을 알았다. 알았지만 자신에게 좀 더 의지해 주었으면 싶었다.

"내가 더 화를 낼까 봐 그러나?"

"아니라고는 못 하겠지만."

"걱정 끼쳐도 돼. 내게 화를 내고 짜증을 부려도 괜찮아. 내 탓을 해."

"은룡 님 탓이 아닌걸요."

"내 탓이야."

은룡은 다인의 손을 잡아 그 손등에 입 맞췄다. 괴로운 듯 흐려지는 얼굴에 다인은 진룡에게 짜증이 났다. 대체 뭐 하자고 그렇게까지 일을 벌였을까.

"내가 네 곁에 없었잖아."

"누가 항상 곁에 붙어 있어요. 각자 생활이 있는데."

"그래도 나는 네 곁에 있어야 했어. 곧 혼례를 치를 예정이었으니까."

용의 신부가 취약한 순간은 용에게 구애를 받을 때뿐이다. 용의 반려가 된 이후로는 모든 용이 반려를 지켜 준다는 것이 원칙이었다.

혼례를 치르고 난 뒤에 차차 용의 기운을 받으면, 반려의 의식 탓으로 그 몸에 용의 기운이 담기게 된다. 그러면 설사 마물이라 하더라도 내뿜는 기운에 짓눌려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했다. 인간조차도 그 기운의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설핏 두려움을 느껴 해를 끼칠 수 없었다.

"두 번이나 너를 위험에 처하게 했다."

"하지만 금방 와 줬잖아요."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할 거야."

어둡게 가라앉은 푸른 눈동자가 거의 검은색에 가까울 정도로 짙어졌다. 다인은 흠칫 은룡을 바라보았다. 한순간이었던 짙은 빛깔은 금세 흐트러졌다. 그러나 다인은 은룡이 무언가 할 생각임을 깨달았다.

"은룡."

다인이 몸을 일으키며 은룡의 팔을 잡았다. 은룡이 놀란 듯 다인을 보며 몸을 일으켰다.

"왜 그러지?"

"하지 말아요."

"뭐?"

당황한 듯한 시선이 다인에게 닿았다. 다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원하지 않아. 뭘 생각하든지 하지 말아요."

"다인."

"수장이 움직일 거라고 했잖아요. 그분에게 부탁할 거예요.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지 마. 내 곁에 있어 줄 거라고 했잖아요."

은룡은 제 안에 가득 찬 분노를 어쩌지 못하는 얼굴로 다인을 보았다. 다인은 그의 반려였다. 그 반려가 두 차례나 납치를 당했다. 분노를 느끼는 것이 당연했고 용으로서, 용왕된 자로서 그자를 처벌해야 했다.

"화풀이하는 것보다...... 내가 더 중요하잖아. 아니에요?"

떨리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다인이 물었다. 다인을 찾으러 갔을 때, 은룡은 진룡에게 덤비는 것보다 다인을 데려가는 것을 우선했다. 다인 또한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날 버리고 가진 않을 거야.

은룡이 쉽게 대답하지 못하자 다인의 눈에 금세 눈물이 고였다. 은룡은 당황하면서도 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눈을 깜박이자 금방 눈물이 떨어졌다. 은룡이 진룡의 빌딩을 부수고 들어왔을 때도 보이지 않았던 눈물이 잘도 흘러 떨어졌다.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하겠다 말했었다.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다음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다인이 매달려 오며 입 맞췄기 때문이다. 은룡은 다인을 밀어내지 못한 채로 그 입맞춤을 받았다. 그에 비하면 서툴렀지만 다인의 키스는 은룡을 달아오르게 하는 데가 있었다.

"다인....... 음......."

의도는 알 수 있었다. 흥분한 그의 기분을 풀어 주려는 것이다. 흥분이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거겠지.

놀라고 겁먹은 것은 그녀일 테니 은룡은 다인이 그렇게까지 하는 걸 원치 않았다. 문제는 다인이 만지기만 하면 쉽게도 흥분해 버리는 제 몸이었다. 벌써 몸에 열기가 모이고 있었다.

"응, 잠깐......."

밀어낼 수도 없고....... 다인이 겪은 일로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았는데도, 다인이 키스해 오는 것이 기뻤다. 그녀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열꽃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머......, 멈춰 봐."

벌겋게 얼굴을 물들인 채로 은룡이 자신을 만지던 다인의 손을 잡았다. 다인이 은룡의 목을 끌어안은 채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촉촉이 젖은 눈동자가 사랑스러웠다. 애원하듯 바라보는 눈길에 주체할 수 없는 흥분이 일었다.

"안 돼요?"

"......."

오갈 데 없었던 분노는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지만, 욕정이 그 불꽃을 밟아 뭉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딱 멍청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고삐를 쥔 것은 그가 아니라 그녀였다.

어떠랴 싶었다. 어차피 시룡이 진룡을 놓쳤을 리는 없다. 그는 구금된 상태일 테고 하루나 이틀쯤 뒤에 찾아간다 하더라도 놓치는 일은 없을 거였다. 당장은 다인을 안심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그녀가 원한다고 하지 않나.

'하루는 상관없겠지.'

다인의 곁에 있는 것보다 진룡을 만나는 것을 우선하는 것도 이상할 터....... 은룡은 마음을 결정했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스스로 제 행동을 비웃어도,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

은룡은 다인을 끌어안으며 그녀를 다시 침대에 눕혔다.


"하아...... 하아....... 아......."

힘없이 늘어진 다인의 몸이 쾌락의 여운으로 파르르 떨렸다. 은룡은 황홀한 듯 그 몸을 어루만지며 촉촉한 입술을 맛보았다. 분노로 인한 흥분 때문인지, 아니면 오래간만에 다인 쪽에서 몸을 원했기 때문인지 평소보다도 흥분해 버리고 말았다.

절정의 여운에 취해 여린 몸이 노곤함에도, 다인은 은룡의 키스에 적극적으로 응해 주고 있었다.

'이제 잠들 때가 됐는데.......'

다인은 은룡에게 한참 시달리고 나면 으레 잠이 들었다. 절정을 맛보다가 정신을 잃듯 잠드는 경우도 있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으로 생긴 반려가 너무 사랑스러워 수시로 괴롭힌 탓에 체력이 부족해진 게 원인이다. 은룡도 그것을 알았지만, 다인을 만지지 않기란 너무 어려웠다.

"이제 무리예요......?"

녹아내릴 듯 달콤한 목소리로 소곤소곤 물었다. 은룡은 순간 심장이 뜯기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다인을 응시했다.

거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어쩐지 갸르릉거리는 듯이 나왔다. 은룡은 뺨을 물들이며 다인을 끌어안았다.

"그런 말을 한 걸 후회하게 돼도 난 몰라."

"후회하게 해 봐요."

진심으로 유혹하는 듯한 야릇한 눈빛에 침이 꼴깍 넘어갔다. 다인은 그저 은룡이 하는 걸 받을 뿐이고 덤벼드는 건 자신인데도, 은룡은 유혹받는 기분을 떨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기분도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좋았고.

'점점 말려들어 가는 기분인데.......'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는지 알 수 없다. 이 방은 궁궐 내에서도 가장 안전한 구역에 속한 곳이라 밖이 내다보이는 창문도 없었다. 어차피 바닷속이라 햇살이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창문을 신경 쓰지 않는 디자인이기도 했다.

"다인......."

완전히 녹아내려 부드럽고 촉촉한 그곳으로 제 일부를 밀어 넣었다. 부둥켜안은 가냘픈 몸이 파르르 떨리며 은룡의 품에 안겨 들었다. 매일 밤 그녀를 안았지만 이렇게 품에 달싹 안겨 든 것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서인지, 기쁨을 누르기 어려웠다.

이미 아플 정도로 흥분한 그것이 더욱 부풀어 다인이 몸을 꼼지락거렸다.

"하으응....... 더 키우면 안 돼에......."

쾌락에 젖은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러면서도 은룡의 욕망으로 여린 속살이 달라붙어 은룡의 숨결 또한 거칠어졌다.

제53화

9장. 용왕의 혼례 준비 上 (3)

"으음......."

마른침을 삼키며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의 아래에서 다인이 반응했다. 젖은 눈동자가 크게 뜨여지고 달아오른 입술이 신음을 토해 냈다. 숨 막힐 정도로 고혹적인 모습에...... 은룡은 눈길을 떼지 못한 채로 다인을 바라보았다.

"흐앗! 응, 아앗....... 아아......, 조......, 좋아....... 으응......."

"읏......."

부끄러움 탓인지 행위 중에 쉽게 좋다는 말을 꺼내지 않는 다인이었다. 다인의 입술에서 튀어나온 그 한마디에 은룡의 몸짓이 빨라졌다. 집어삼킬 듯한 눈길과 욕정으로 이글거리는 푸른 눈동자에 다인은 뺨을 물들였다.

좋다는 건. 한 점 거짓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 얘기 하지 않아도 기분 좋게 해 주니까. 부끄러우니까 굳이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다. 약간만 반응해도 달콤하게 어루만져 주는 은룡이었으니.

약간 부끄러운 것 정도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좋아하는 은룡에게 안기는 것 아닌가. 다인은 거기에 열상을 입거나 허리뼈가 부러져 나가는 한이 있어도 붙잡고 늘어질 작정이었다.

"아, 아아아......아앗! 아아앙...... 으응......."

녹아내릴 듯한 교성에 은룡이 숨마저 멈추고 다인에게 집중했다. 황홀한 듯 바라보는 시선과 집어삼킬 듯한 입맞춤에 다인의 몸도 떨려 왔다. 껴안아 오는 팔의 힘은 대수롭지 않았다. 그러나 어딘가 필사적인 구석이 있어, 은룡의 가슴을 뜨겁게 물들였다.

'가지 않으마.'

은룡은 다인을 끌어안으며 생각했다. 영원히 그러겠다는 답은 못 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다인의 불안이 사그라들 때까지는 곁에 있어야겠다. 진룡의 목은 그 이후에 가져와도 문제가 없으리라 여겼다.

"아앙, 읏......, 아아......."

신음하는 다인의 입술에 입 맞춰 그 신음마저 삼키며 은룡은 전율했다. 이 흥분이 식을 날은 아무래도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바보였던가.'

무려 엿새나 날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깨닫고 은룡은 좌절했다. 방 안에 시간의 경과를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도 그렇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기어코 저를 끌어안고 있는 다인이 사랑스럽고 가여워서 그대로 잠을 청하기는 했다. 깨자마자 다시 다인이 매달려 와서 부드럽게 안았고.......

'이성이 끊어졌지.'

다인이 설마 그런 짓까지 할 줄은 몰랐다. 잠자리를 주도하는 건 거의 은룡이었고, 다인이 주도권을 쥔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그러나 생각해 보면 두 번째 만남 때에 기이한 목욕 시중을 시도했던 그녀가 아닌가.

그러니 무릎으로 페니스를 자극하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목이 마르다고 해서 홍주를 가지고 오게 해서 마시고.......'

이때 즈음에는 은룡도 완전히 흥분해서 침실 밖으로 나갈 생각을 잊었다. 다인이 다치지 않게 배려했지만, 지나치게 많이 하고 있다는 의식은 있었다. 충분히 애액을 흘렸고 정액도 있었으니 심하게 다치거나 하지는 않았겠지만.......

【은룡 님.......】

전음으로 메시지가 들어왔다. 은룡은 기절한 듯 잠이 든 다인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시룡 님께서 오셨습니다.】

【......금방 나가겠다.】

잠시라도 눈을 떼는 것은 불안했지만, 시룡은 진룡에 대한 것, 아니면 그들의 혼례에 관한 소식을 가져왔을 것이다.

다인이 눈치채지 않도록 은룡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녀를 껴안고 있던 팔을 떼며 시달린 나신에 이불을 덮어 주는데, 가느다란 손가락이 은룡의 팔을 잡았다.

"어디 가요......?"

묻는 목소리마저 달콤하게 여겨졌다. 은룡은 키스하고픈 충동을 누르며 잠이 덜 깬 다인의 눈두덩이에 입을 맞췄다.

"시룡 님이 오셨다. 소식을 가져오셨을 거야. 오래 머물지 않으마."

"응....... 믿을게요. 나 기다릴 테니까."

하며 다인이 은룡의 허벅지를 부드럽게 쓸었다. 약한 손길임에도 열이 올라 은룡은 진심으로 당황해 버렸다. 많은 용들이 제 반려에게 꼼짝 못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그래......."

홧홧해진 뺨을 쓸며 은룡은 다인의 뺨에 입 맞췄다. 그가 침실을 나가자 대기하고 있던 시종들이 옷을 입혀 주었다.

은룡은 시종들을 향해 말했다.

"시룡 님은 어디로 모셨느냐?"


귀빈을 모시는 응접실로 가니 시룡이 태평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의 뒤에는 궁녀와 시종들이 그의 시중을 들고 있다. 시룡은 찻잔을 제가 드는 것도 귀찮은지 시종이 먹여 주는 대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거참, 빨리 나온다."

투덜대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시룡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뭐야? 한참 좋을 때 불렀나? 쳇."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시룡이 혀를 찼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리며,

"마누라한테 사랑받는 것들. 다 죽어 버리라지."

"난데없이 행차하셔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다인과의 일이 들킨 것 같아서 은룡은 저도 모르게 짜증을 부렸다. 시룡은 흐응~ 하고 은룡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신수가 훤하구나. 좋은 반려를 얻었어."

"새삼스러운 말씀이십니다."

다인을 칭찬하는 말이라선지 대답도 부드럽게 나온다. 시룡은 은룡의 그런 반응이 마음에 든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 네가 반려를 숨긴 이후에...... 곧장 내 거처로 쳐들어올 줄 알았는데 말이야. 엿새가 지나도록 소식이 없어서 이렇게 직접 왔다."

냉정하게 대응할 수 없는 것이 반려에 대한 것임을, 수장인 시룡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수천 년간 용들의 그런 반응을 보아 왔고 말리고 중재해 온 사람이었다.

"......진룡은 뿔을 자른 채로 뇌옥에 던져 놨다. 8천 년 형이야."

"살려 두셨습니까?"

비난하는 듯한 어조에도 시룡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경사스러운 일을 앞두고 피를 봐서는 안 되지. 진룡은 용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았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지만 말이야....... 인간은 특히나 정이 많지. 네 반려는 자신이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여기고, 진룡이 사형당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

은룡은 입을 다물고 분노를 가라앉히려 애썼다. 시룡은 은룡의 푸른빛이 그가 예상했던 것만큼 탁하지 않은 것을 보고 솔직히 놀랐다.

"질투할 건 없다. 인간의 특성이야. 그들은 동정심이 많지. 힘을 가진 자는 더욱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사실을 동정으로 쉬이 가리려고 들기도 한다. 네 반려도 결국 알게 될 테니...... 귀양 정도로 알리는 게 좋을 거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고."

"귀양입니까?"

귀옥에 8천 년 형이면 살아 나오기 어렵다. 거기다 뿔까지 잘렸으니 목숨을 잃을 것이라 보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도 은룡은 진룡이 죽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살아 나온다 해도 그 즈음이면 네 반려도 힘을 갖췄을 거다."

용과 함께 살며 끊임없이 용의 기를 받으면 반려에게도 신통력이 생겼다. 반려의 계약은 그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기도 했다. 용만큼은 아니라 해도 어느 정도 힘을 가지게 된다.

"벌써 진룡의 도술을 튕긴 걸 보면 큰 걱정은 필요 없을 거라 생각되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무리겠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먼저 알려 주려고 온 거다."

하며 살피는 시선이 은룡의 속내를 떠보는 듯했다. 은룡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하실 말씀은 그게 전부입니까?"

"여전히 귀염성 없기는. 혼례 날짜도 정해 가지고 왔다."

시룡이 손가락을 튕기자 시종들이 황금으로 만들고 진주로 장식을 한 상자를 들고 왔다. 그들은 은룡에게 상자를 내밀며 머리를 조아렸다.

"받아. 5개월 뒤다."


상자 안에는 보라색 비단이 들어 있었다. 비단 위에는 은빛 실로 혼례일이 수놓아져 있었다. 은룡은 시룡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돌려보냈다. 그리고 시종으로 하여금 상자를 들게 하고 다인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문 앞에서 시종들을 돌려보내고 상자를 든 채 혼자 들어갔다.

다인은 침대에 곤히 잠들어 있었다. 은룡은 상자를 가까운 탁자 위에 올려놓고 가운을 벗은 채 침대로 올라갔다.

'유혹해 놓고 먼저 자 버리다니.......'

은룡은 미소를 지으며 다인의 옆에 누웠다. 이불에 싸여 있는 그녀를 이불째로 끌어안자 다인이 품으로 엉겨 붙었다.

"왔어요?"

달콤하게 웃으며 제 가슴에 얼굴을 비비는 다인을 보자니 몸이 뜨거워졌다. 정말 나는 짐승인가...... 싶어서 은룡은 쓴웃음을 지었다.

"지치지 않았나?"

"으응....... 기분 좋아서......."

나른한 목소리가 유혹적이었다. 거기다 체향도....... 은룡은 한숨을 쉬며 다인의 고개를 들게 해서 입을 맞췄다. 시룡의 말대로 8천 년간 다인이 그에게 기운을 받는다면 힘이 생길 것이다. 그러면 지난번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

그걸 위해서 꽤 많이 관계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왜 내가 뻔뻔스러운 놈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제54화

9장. 용왕의 혼례 준비 上 (4)

"시룡 님은 왜 오신 거였어요?"

난 글렀군. 다인의 입에 다른 남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지니. 은룡은 제 권리를 확인하듯 다인을 한층 꼬옥 끌어안으며 말했다.

"혼례 날짜를 주셨다. 그리고...... 진룡에 대해서 알려 주려 행차하셨다더군."

"응......."

다인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8천 년간 귀양을 가도록 했다."

"8......, 8천 년이요?"

인간에게는 역시 지나친 기간이라는 생각이 있는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은룡은 다인을 진정시키려는 듯 뺨에 입 맞췄다.

"그는 용왕이었다. 막중한 의무를 짊어진 자는 그 책임 또한 큰 법이지. 거기다 용은 만 년 이상을 사는 생물이야."

"그래도...... 8천 년......."

큰일은 없었다고 여기지만, 그건 다인이 진룡의 도술을 떨쳐 버렸기 때문이었다. 진룡의 도술이 통했다면 진룡은 기억을 잃은 다인을 속여 다른 차원으로 도망쳤을 것이다. 한참이 지난 뒤에 기억을 되찾은 다인이 어떤 고통을 겪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의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죄를 경감시키기에는, 벌인 일이 너무 컸다.

"......내가 쫓아야 할 진룡을 시룡 님이 먼저 손을 쓰셨으니."

기분을 달래 주려 은룡은 가벼운 어조로 운을 뗐다. 싱긋 웃는 은룡의 푸른 눈동자에 장난기가 어렸다.

"네가 바라는 대로 나를 곁에 붙잡아 두는 데 성공한 셈이다. 만족하는가?"

이불 위로 매만지는 손길이 관능적이다. 다인의 몸에 감겨 있는 이불은 따뜻했지만 얇고 매우 매끄러운 것이었다.

"하윽......."

이불 너머로 은룡이 다인의 등줄기를 따라 손가락을 놀렸다. 미끄러져 내려온 손길이 정확히 아픈 곳을 누르자 다인은 신음을 흘렸다. 은룡은 그 즉시 치유술을 걸었다.

'역시 무리하고 있었나.'

쉬게 해 주고 싶지만 반대로 쉬게 해 줄 수 없는 것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허리는 된 것 같고. 쓰라리지는 않나?"

"네?"

짐승처럼 탐하던 걸 받아 냈으니 거기가 무사할 리 없다. 다인은 식은땀을 흘리며 은룡을 마주 보았다. 이런 경우......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었다.

"그, 그게......."

"씻고 나서 치료해 주지."

"야, 약 같은 걸로 대신하면......."

당황한 나머지 목소리가 커졌다. 은룡은 놀리는 듯한 시선으로 다인을 보았다.

"왜 그래야 하지? 매일 키스 받고 있으니 알 거 아닌가."

입술이 부르트도록 매일 키스해대도 촉촉하니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수인족의 타액이 치유 효과를 가지고 있기에, 핥아진 곳이 무사한 것이다.

"하, 하지만......."

위기를 넘겼으니 수치심이 고개를 들이민다. 울상이 된 다인을 보며 은룡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이쪽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었다.

"내버려 두면 너도 힘들 거다. 어서."

이불을 걷어 낸 은룡이 다인을 번쩍 안아 들었다. 다인은 새빨갛게 뺨을 물들인 채로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아. 아아....... 으으응......."

비부로 파고든 손가락이 달콤하게 매만지는데도 쓰라린 구석이 있었다. 은룡은 그것이 미안한 듯 흐려지는 다인의 미간과 입술에 계속해서 입 맞췄다. 이미 다리가 풀려 힘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이기에 그의 팔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인은 비틀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은룡의 손길에 애액을 흘렸다. 깊숙이 사정되어 흘러넘칠 듯한 정액이 거의 다 빠져나온 것 같았다.

"하으으....... 으응......."

지친 듯한 다인의 뺨에 입 맞추며 은룡은 샤워기를 움직였다. 수압을 조절한 물줄기가 다리 사이를 간지럽히자 다인이 숨을 헐떡였다. 엿새나 시달린 몸은 극도로 민감해져서 그것만으로도 느껴 버리고 말았다.

"하윽......읏....... 아아......앗....... 싫어......."

신음하는 다인을 은룡은 자신도 모르게 타 버릴 듯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이쯤이면 된 것 같아 샤워기를 끄자 다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랑스러워서 그 눈가에 입 맞추자 다인이 은룡의 가슴을 끌어안았다.

"졸려요."

이번에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말이 아닌 진심인 것 같았다. 은룡은 샤워기를 방치하고 다인을 번쩍 안아 들었다.

"침대로 가지."

욕실을 나오자 말끔하게 정돈된 침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욕실을 사용하는 동안 시녀들이 침실을 정리한 것이다. 새로 깔린 침대 시트 위에 다인을 눕히며 은룡은 수건을 가져와 그녀의 머리며 몸을 말려 주었다.

반쯤 잠이 든 다인이 웅얼거렸다.

"......이러면 침대 젖는데......."

"괜찮다. 도술을 사용해서 말릴 테니."

도술이란 거 꼭 마법 같네. 다인은 생각하며 밀려드는 수마에 완전히 몸을 맡겼다. 물기를 말려 주는 은룡의 섬세한 손길이 기분 좋았다.


욕정 어린 숨결이 스칠 때마다 온몸이 떨려 왔다. 쾌락과 여릿한 아픔이 뒤섞인 야릇한 자극에 몸을 비틀며 다인은 시트 자락을 움켜쥐었다.

"히익......."

어쩔 수 없는 신음이 터져 나올 때마다 은룡이 웃음을 흘리는 듯했다. 그게 야속하고 얄미워서 다인은 눈을 흘겼다. 분명 이것도 매번 저렇게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아, 아아......."

혀로 젖은 꽃눈을 떠올려 부드럽게 문질렀다. 하반신이 온통 쾌락으로 녹아 흘러내릴 것 같은 감촉에 다인은 부들부들 경련했다.

"힉, 아흑......."

입술로 물고는 부드럽게 빨아들이자 눈앞이 희게 물들었다. 다인은 가느다란 허벅지를 벌벌 떨며 숨을 삼켰다. 조금만 방심했더라면 그대로 절정을 맞았을 것 같았다.

"으흑......응, 아앙....... 으응......."

다시 핥기 시작하는 은룡에 다인은 신음을 삼켰다. 아픔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고......, 은룡에게 거짓말은 통하지 않았다.

'아직 거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은밀한 곳은 자극으로 벌름벌름 수축하고 있지만, 은룡은 여전히 꽃잎과 그 언저리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이미 즐거움을 알아 버린 몸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달아오르고 있는데, 은룡은 조르듯 씰룩거리는 입구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아, 싫어......, 더는.......'

한계에 봉착한 다인이 울상을 지었다. 다인은 제 비부에 얼굴을 묻고 있는 은룡을 보며 뺨을 물들였다.

"으, 은룡......."

"왜 그러지?"

부드럽게 어르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으로도 오싹 소름이 끼쳤다. 다인은 움찔거리는 제 허벅지를 붙잡고 있는 은룡의 손을 보았다.

"더, 더는......, 아흑......."

고개를 든 은룡이 다인과 눈을 맞추며 천천히 비부의 둘레를 혀로 덧그렸다. 타액에 젖은 혀가 꽃잎을 스치며 피부를 덧쓴다. 야릇한 자극이 퍼져 나가는 감촉에 다인은 바들바들 허리를 떨었다.

"흑......, 아앗....... 제......, 제발....... 으응......."

눈물을 글썽이며 애원하자 은룡의 푸른 눈동자가 야릇하게 일렁였다. 혀를 내밀어 애액으로 가득 찬 틈새를 오르내리자 힉! 하고 다인이 숨을 삼켰다.

"그대의 이곳은 참 달콤해. 여인은 원래 이런 것인가?"

"그, 그런 거 몰라......요....... 으음......, 그런 짓......, 힉, 한 거...... 은룡 님뿐....... 흐윽......."

"그래, 그렇겠지......."

욕정으로 가득 찬 목소리로 뜨겁게 고하며 은룡은 다인의 허벅지를 들어 올렸다.

"아니라면 그대를 놓아줬을 리가 없으니......."

"하악!"

빳빳하게 세운 혀가 파고들며 여릿한 아픔과 쾌락이 밀려왔다. 은룡은 깊숙이 핥지 않고 부드럽게 달래듯 문질렀다. 다인은 안달이 나서 눈물을 흘렸다. 야릇하게 녹아내리는 감촉이 쉼 없이 다인을 괴롭히고 있었다.

"아흐응....... 으응...... 아흑......."

견디고 있자니 젖은 속살이 벌어지며 느릿하게 타액이 흘러들었다. 부끄러웠지만 안쪽의 마찰로 인한 열상이 가라앉으려면 이게 최선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 이 감촉...... 싫어.'

달아오른 얼굴로 눈물을 흘리며 다인은 생각했다. 느릿하게 안쪽까지 흘러드는 감촉에, 있는 줄도 몰랐던 몸의 가장 깊은 곳을 느끼게 되어 버렸다. 간질간질하면서도 야릇한 자극이 흘러넘쳐 은룡을 바라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히익, 읏....... 아앗......."

타액을 흘리며 참고 있자니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울상이 되어 견디고 있는 다인을 은룡이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그 눈 속에 담겨 있는 것은 명백한 욕망이었지만, 다인의 아픔이 완전히 가시기 전에 은룡은 결코 안아 주지 않았다.

'애초에. 은룡이 이렇게 만든 거면서.'

토라진 듯 고개를 돌리자 혀가 한층 깊숙이 파고들었다. 다인은 신음을 흘리며 허리를 튕겼다. 은룡에게 허벅지를 단단히 붙잡혀 엉덩이가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아, 아아....... 아학......힉......."

은룡의 타액이 가장 깊은 곳까지 흘러들며 다인의 애액과 뒤섞였다. 수인족의 타액은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다인의 애액이 가득 차 있는 곳임에도 어쨌거나 퍼져 나갔다. 가장 깊은 곳까지 미치는 영향에 다인은 다리를 바르르 떨었다.

"흐윽......응......으흑....... 아흑......."

아픔이 서서히 녹아내리고 그 자리를 음란한 자극이 대신했다. 다인은 차오르는 타액을 삼키며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은룡을 쳐다보았다. 삼켜질 것 같다. 형형한 푸른 눈동자가 잡아먹을 듯이 다인을 응시하고 있었다. 다인은 홧홧해지는 뺨을 감추며 다리를 버둥거렸다.

"이, 이제...... 아프지 않......, 흐앗?!"

깊숙이 삽입된 혀가 파헤치듯이 젖은 속살을 핥기 시작했다. 반쯤 들렸던 허리가 은룡의 손아귀에 잡히며 완전히 들렸다. 벌름벌름 수축하기 시작한 그곳을 은룡이 혀로 긁어내렸다.

"흐아앗?!"

음란한 자극에 허리가 튀어 올랐다. 은룡은 양손으로 다인의 엉덩이를 받쳐 들고는 탐욕스럽게 젖은 속살을 맛보기 시작했다.

"힉?! 아흑, 앗......, 은룡......, 아앗?!"

평소보다도 몸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다인이 고한 대로 아픔은 없었지만, 음란한 자극에 머릿속이 몇 번이나 하얗게 비워졌다. 다인은 발끝까지 떨며 허리를 튕겼다. 축 늘어진 팔과 다리가 바들바들 떨리고 뺨으로 타액이 흘렀다.

은룡은 질척이는 소리를 내며 음란하게 혀로 그곳을 범하더니, 이내 고개를 들었다.

제55화

9장. 용왕의 혼례 준비 上 (5)

"아흐윽! 아앗!"

반쯤 들린 다리 사이로 페니스가 밀어붙여졌다. 단숨에 뿌리까지 삽입되는 감촉에 다인은 또다시 절정에 이르렀다. 부들부들 떨며 쾌락에 빠지는 그녀의 허리를 잡고, 은룡이 그대로 움직였다.

"히익?! 앗, 아흐흑......!"

타액과 애액이 뒤섞인 음란한 감촉에 페니스의 열기가 더해졌다.

다인은 눈앞이 희게 점멸하는 것을 느끼며 몸부림쳤다. 크게 벌어진 허벅지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발끝이 허공을 할퀴었다.

"아! 아아......, 좋아......, 은룡....... 아앗......."

미칠 것 같은 열기에 다인은 고개를 젖혔다. 어느새 다인을 끌어안은 은룡이 타액에 젖은 유방을 주무르며 그녀의 목덜미에 입 맞췄다. 허리를 끌어당겨 격렬하게 허리를 쓰는 은룡에 다인은 교성을 울렸다.

"하으으...... 아아아앗!"

절정을 맛보며 은룡의 팔 아래 늘어지는 순간 은룡이 페니스를 밀어붙였다. 다인의 안에 사정하며 단단한 팔로 끌어안았다.

"흐으...... 응......, 아아......."

절정의 여운에 신음하며 다인은 숨을 헐떡였다. 거친 숨을 몰아쉰 은룡이 당연하다는 듯이 입술을 포개며 혀를 밀어 넣어 왔다.

"후아......, 으음......."

아직 숨이 부족했기에 약간 귀찮았다. 그러나 은룡은 달래듯 다인의 입술을 핥으며 부드러운 점막을 맛보았다. 야릇한 전율에 다인은 숨을 헐떡였다.

"이번에는 조르지 않는군. 목적을 달성했다는 건가?"

불만스러운 기색을 드러내며 은룡은 눈을 빛냈다. 다인은 멍하니 그의 푸른 눈동자를 올려다보았다. 일렁이는 푸른 눈동자에 이전과 같은 기색은 없었다. 온통 눈앞에 있는 한 사람으로 채워져 있는 것만 같다.

'그걸 알 수 있다는 것도 이상한데.......'

그저 느낌이고 불안이었을 뿐이니까, 확신할 수는 없었다. 다인은 달콤하게 웃으며 은룡을 바라보았다.

"으응. 내 곁에 있어 줘서 감사해요."

정말로 좋다고 속삭이며 다인은 은룡의 목을 끌어안았다. 은룡도 마주 끌어안으며 다인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화를 낼 수 없게 하는군."

하며 허리를 끌어안고 있던 손을 내려 다인의 엉덩이를 주물렀다. 화들짝 놀라는 다인을 끌어당기며 은룡은 페니스를 움직였다. 아직 삽입된 채인 페니스가 점막에 마찰되며 음란한 물소리를 냈다.

"하으응......."

"그래도 오늘밤은 재우지 않을 거지만 말이야."

심술궂게 웃으며 은룡은 다인에게 입 맞췄다.


바닥에서부터 뻗어 나오는 빛이 흐릿하다. 진룡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 둘레를 걸었다. 세계의 기둥을 받치는 결계들 중의 하나. 진룡이 담당하고 있는 용궁의 심처였다.

'진룡의 상태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는데....... 내부에서부터 썩어들어 가고 있었나. 하긴 3만 년에 가까워졌으니.......'

비교적 제 기운을 잘 숨기고 있어 알아차리지 못했다. 진룡의 안에 허무가 자리를 잡고 그가 자신의 책무를 소홀히 여기기 시작했음을. 용왕이라 해도 지나치게 긴 세월을 살게 된 자들이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변이였다.

제게 잘 맞는 반려를 만났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가장 큰 예가 시룡이었다. 그의 나이는 벌써 10만 년을 넘어섰다.

"차라리 나한테 도움을 요청할 것이지, 망할 녀석."

결계를 살피며 시룡은 혀를 찼다. 올해에는 전혀 드나들지 않았는지 용의 기운이 바닥 난 상태였다.

지금은 벌써 7월 말이다. 이런 상태라면 꼼짝없이 3개월을 채워 용의 기를 쏟아부어야 하는데, 새로운 용왕을 뽑기에 너무나 짧은 기간이었다.

'자리를 잡고 결계에 힘을 부으려면 최소한 9월이 되기 전에는 새로운 용왕을 선출해야 한다. 용왕이 될 만한 인재가.......'

수장으로서 시룡은 용왕이 될 만한 자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 자질이 뛰어난 아이가 있다면 장로나 주변 사람들이 그를 추천한다. 시룡은 그 아이의 자질을 시험해 보고 교류하여 그 됨됨이를 확인했다.

떠오른 한 사람에 시룡은 뺨을 긁적였다.

"나, 올해는 은룡에게 고개를 들지 못하는 해였나. 어째......."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석실 밖으로 나오는 시룡을 주향이 맞이했다. 용궁의 심처는 그 용궁을 담당하는 용왕과 그의 반려, 수장만이 드나들 수 있었다.

"어떠셨습니까?"

"......허무가 자리하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새로운 용왕을 뽑아야겠어."

진룡이 도망치지 않고 쉽게 제 목을 내주었을 때에 예상한 바였다. 주향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두신 이라도 있습니까?"

"백룡이 어떨까 하는데."

주향도 백룡을 아는지라 표정이 굳었다.

"왜?"

"할 수는 있겠지만. 하려 들까요?"

"아. 역시?"

용들은 성미가 제각각이고 각자의 까다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백룡은 까다롭다고만은 표현할 수 없는 어려운 구석이 있었다. 시룡의 뜻대로 굴리기 어려운.

"시간이 촉박한데. 어떻게 꼬실까?"

"이미 생각해 두신 바가 있을 거 아닙니까."

주향이 대꾸하자 시룡이 피식 웃었다. 시룡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것도 들켰네. 나 그렇게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남자였나?"

"라기보다는 감출 필요를 못 느끼시는 분이라서 그렇겠죠."

애초에 용이라는 최강의 생물체니 제 불쾌함이나 기쁨을 숨길 이유가 없는 탓이다. 주향의 대꾸에 시룡은 싱글싱글 웃었다.

"그러게 말이야. 용은 이게 보통인데. 요즘 것들은...... 죄 의뭉스러워지기만 해서. 세대 차이를 느낄 때마다 좌절스럽다니까~."

"이미 그걸 능가할 시기도 지나셨잖아요. 벌써 몇만 년째인데."

주향의 통박에 시룡이 홱 고개를 돌려 그녀를 째려보았다. 주향은 못 본 척했다.

"해서 백룡은 무슨 수단으로 불러들이실 건데요?"

"그게...... 은룡을 끌어들일까 하는데. 둘이 사촌이잖아."

주향은 그게 말이 되냐는 표정으로 시룡을 쳐다보았다. 이미 반려가 두 차례나 납치를 당하는 고초를 겪었으니 용궁에 다른 용을 들이려 할 리가 없을 텐데. 시룡은 제가 말하고도 좀 궁색하다 여겼는지 객쩍은 표정을 지었다.

"은룡도 용왕이니 사정을 설명하면 도움을 줄 거야."

"어느 정도야 감안은 해 주겠지만......, 미운 털 제대로 박히겠네요."

"그래서 말인데."

시룡이 진지한 얼굴로 주향을 보았다. 갑자기 덥석 제 손을 양손으로 감싸 쥐는 시룡의 반짝반짝 빛나는 두 눈에 주향은 오싹 소름이 돋았다. 시룡은 주향의 그런 완전 싫다는 시선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네가 나 대신 은룡을 설득해 주면......."

"저도 목숨은 하나뿐이거든요?! 제가 아무리 시룡 님의 핏줄이라고는 해도 적당히 하셔야죠!"

주향은 시룡에게 눈을 흘기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 시룡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백룡을 설득하려면...... 다른 용왕들이 필요한데 말이야. 제 반려한테 착 달라붙어 있을 은룡은 당연히 안 될 테고....... 누가 은룡의 용궁까지 와 주려나......?"

오싹.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에 주향은 시룡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등줄기를 타고 기어오르고 있었다.

"......설마 새로운 용비를 미끼로 천룡과 흑룡을 불러오시려는 건."

"이야~, 나 모르게 새로운 도술이라도 만들어 냈어? 아주 척하면 척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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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 21 Jun 2023 06:41 U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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