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심야 교통으로 즐기는 바 호핑 노하우
서울에서 밤을 길게 쓰는 법을 익히면, 같은 동네라도 풍경이 달라진다. 마지막 주문에 맞춰 잔을 비우고 허겁지겁 지하철 막차를 타던 시절이 있었다. 한 잔 더가 아쉬워 택시를 기다리다 바람만 마시고 돌아오기도 했다. 그 사이 서울의 심야 교통은 조금씩 넓어졌고, 바 씬은 훨씬 다채로워졌다. 지금은 시간과 동선만 잘 짜면 강북에서 시작해 강남으로, 다시 성수나 연희동으로 넘어가며 잔의 성격을 바꿔 갈 수 있다. 안전을 지키면서, 비용을 아끼면서, 오래 기억에 남는 밤을 만드는 바 호핑 노하우를 정리했다. 현장에서 겪은 시행착오와 작은 디테일을 곁들였다.
언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낼지, 리듬 먼저 정하기
밤을 길게 쓰려면 페이스가 중요하다. 저도 처음에는 칵테일 바에서 바로 하이볼 두 잔을 비우고 옮겼다가, 두 번째 바에 도착하기도 전에 템포가 무너졌다. 보통은 저도 늦은 저녁 겸 1차를 소박하게 시작한다. 간단한 안주를 곁들여 술의 베이스를 깔아두면 이후의 선택 폭이 넓어진다. 소맥부터 가볍게 갈 수도 있고, 논알코올 칵테일로 목을 푼 다음 본게임으로 넘어가는 방식도 좋다.
출발 시간을 21시 전후로 잡으면 막차와 심야버스, 심야 택시 선택지를 동시에 활용하기 좋다. 종착지는 대중교통이나 택시 수급이 비교적 안정적인 곳을 권한다. 강남역, 홍대입구, 시청, 왕십리, 건대입구, 합정 같은 환승 허브를 마지막 바 근처로 두면 귀가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반대로 심야 택시가 잘 잡히지 않는 주택가 골목, 경사 심한 언덕 위, 골목이 복잡한 상권 깊숙한 위치는 마지막 코스로 잡지 않는 편이 낫다.
서울 심야 교통의 뼈대 이해하기
심야 이동은 크게 네 축으로 나뉜다. 지하철 막차, 심야버스, 택시와 대리, 그리고 짧은 거리 이동용 공유 모빌리티다. 각 수단의 강점과 약점을 알고 조합하면 이동이 부드럽다.
지하철은 자정 전후까지 노선마다 막차 시간이 다르다. 평일과 주말, 방면에 따라 10분 이상 차이 나기도 한다. 일행이 많고 이동 거리가 길면, 한 번은 지하철로 큰 축을 옮겨 두는 전략이 유리하다. 예를 들어 을지로에서 강남으로 넘어갈 때, 23시 30분 안팎에 2호선이나 3호선 막차를 타고 강남역으로 미리 내려놓으면 이후 동선이 가벼워진다. 막차 시간을 확인할 땐 굳이 모든 역을 외울 필요는 없다. 카카오맵, 네이버 지도 둘 다 실시간 막차 안내가 쓸 만하고, 각 역 플랫폼 전광판의 마지막 열차 표시는 비교적 정확하다.
심야버스는 예전보다 노선 수가 줄었다가, 주요 도시축 위주로 유지되는 편이다. 보통 00시 이후부터 05시 사이에 20분에서 40분 간격으로 다닌다. 강남역, 시청, 홍대입구, 신촌, 건대입구, 잠실 일대는 심야버스 정류장이 겹쳐 있어 환승도 가능하다. 체감상 배차가 들쑥날쑥할 때가 있는데, 정류장 도착 예정 시간이 5분 내로 가까워졌을 때는 신뢰도가 꽤 높다. 한두 정거장 앞으로 걸어가면 노선이 더 다양해지는 구간도 있으니, 지도 앱에서 정류장 아이콘 밀도를 확인해 보자.
택시는 패턴을 읽는 것이 핵심이다. 비 오는 금요일 밤 1시 전후, 강남대로에서 을지로 가는 택시는 대기 시간이 20분을 넘어간다. 콜을 잡아도 배차 취소가 잦다. 반면 홍대입구나 합정에서 마포대로 라인으로 빠져 지도로 나가면 수급이 나아진다. 시내를 동서로 가르는 큰 도로를 먼저 잡고, 골목으로 들어가는 방식이 성공률이 높다. 합승을 허용하는 서비스도 있지만, 낯선 사람과 동선이 겹치지 않으면 오히려 시간이 늘어지니, 일행이 둘 이상이면 목적지 분리보다는 동선 통합이 현실적이다.
공유 킥보드와 자전거는 짧은 보행 구간을 줄여 준다. 역에서 바까지 700미터, 심야버스 정류장까지 1킬로 정도라면 킥보드로 5분 만에 해결된다. 다만 심야 시간에는 주정차 차량이 도로 가장자리를 가득 메우고, 보행자도 골목에 흩어져 있어 시야가 좁다. 음주 상태에서 킥보드를 타는 것은 법적으로도 위험하고 실제로도 사고 확률이 높다. 이 구간은 술을 마시지 않은 일행이 맡거나, 킥보드 대신 천천히 걷는 쪽을 권한다.
구역별 동선 설계, 상권의 호흡 읽기
서울의 바 상권은 각각의 호흡이 있다. 마감이 빠른 지역, 야식이 강한 지역, 심야 교통이 유리한 허브. 서로의 리듬을 잇는 방식으로 코스를 묶으면 호핑이 자연스럽다.
을지로, 충무로, 광화문을 잇는 오피스 벨트는 퇴근 시간대부터 빨리 달아오르고, 일부 바는 23시 이전에 라스트 오더를 받는다. 중간에 문 닫는 집들을 걸러내면 심야까지 이어지는 곳이 분명 있다. 을지로3가 일대의 스탠딩 바, 종로쪽 오랜 호프, 시청 근처 호텔 바. 낮에 봐둔 계단, 간판 없는 입구,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 같은 디테일을 머릿속에 그려두면 방황을 줄일 수 있다.
홍대입구와 합정은 심야에도 넉넉하다. 새벽 2시 이후에도 바텐더가 잔을 내려놓는 집이 적지 않고, 라스트 오더를 유연하게 받아 주기도 한다. 다만 주말에는 유동 인구가 폭발적이라, 두 번째 바까지는 예약이나 웨이팅 등록을 권한다. 합정에서 상수까지는 도보 이동이 자연스럽다. 동교동 쪽으로 넘어가면 공간이 넓어지고 루프톱이나 와인바의 선택지가 늘어난다. 심야버스가 잘 잡히고 택시 수급도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라, 마지막 코스를 이쪽으로 잡아도 부담이 덜하다.
성수는 평일과 주말의 편차가 크다. 주말 초저녁은 북적이지만 자정이 가까워지면 확실히 한산해진다. 마감이 빠른 카페형 바들이 많아 밤늦게는 선택지가 급격히 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건대입구로 한 정거장만 옮기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건대는 늦은 시간에도 술집이 살아 있고, 라면이나 만둣국 같은 야식 옵션이 풍부하다. 성수역 - 건대입구역 사이의 이동은 지하철 막차를 놓쳤을 경우 택시로 10분 내외, 심야버스도 잇는 편이다.
강남 압구정, 신사, 청담은 의외로 지역마다 리듬이 다르다. 압구정 로데오는 스피키지와 클래식 칵테일 바가 모여 있어 라운딩이 좋지만, 일부 바는 좌석이 적고 예약을 요구한다. 신사 가로수길은 와인바, 버거와 페어링 하는 펍이 많아 초반 페이스 만들기에 맞다. 청담은 하이엔드 술 리스트가 특징이라 마지막 하이볼을 고급 위스키로 올리면서 마무리하기에 좋다. 다만 택시 수급이 좋은 편이 아니라, 귀가 계획을 조금 일찍 잡아 두는 쪽이 안전하다.
연희동, 연남, 망원은 동네의 결이 비슷하면서도 분위기가 다르다. 연희동은 조용하고, 소물리에 운영 와인바나 위스키 셀렉션이 독특한 집이 많다. 연남은 펍과 자연와인 바가 조밀하고 길이 복잡해 길을 잃기 쉽다. 망원은 밤이 깊어지면 빠르게 정리되는 편이다. 세 동네를 한 번에 묶기보다, 연남에서 시작해 합정으로 내려가거나, 연희동에서 홍대로 넘어가는 식으로 큰 도로를 목표로 두면 이동이 수월하다.
라스트 오더와 웨이팅, 시간을 절약하는 승부처
심야의 가장 흔한 실수는 라스트 오더 타이밍을 놓치는 것이다. 바 호핑을 계획할 때는 각 바가 라스트 오더를 언제 받는지, 마감 절차가 빠른지 느린지 감으로라도 파악해 둬야 한다. 골목 깊숙한 스피키지는 주문 마감 후 문을 닫아버리기도 한다. 반면 대로변의 넓은 펍은 라스트 오더 이후에도 30분 정도의 완충 시간이 있다. 바텐더의 손목이 바쁜 23시대에는 맥주나 하이볼처럼 빠른 메뉴를 고르면 주문 성공률이 높다. 반대로 시그니처 칵테일은 재료 준비와 장식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카운터에 앉아 바로 주문하더라도 대기 시간이 15분 이상 나올 수 있다.
웨이팅은 여기서 변수가 된다. 예약이 불가한 집이라면, 첫 집에서 음료가 절반쯤 남았을 때 다음 집 웨이팅을 건다. 두 명이라면 15분, 네 명이라면 20분 이상 여유를 잡는다. 경험상 웨이팅 앱의 예상 시간이 30분으로 떠도, 현장 회전이 빠르면 15분 만에 들어가는 경우가 흔하다. 반대로 10분으로 뜬 상태에서 일행이 뒤섞이면 20분 이상 밀리기도 한다. 자리를 잡은 뒤에는 주문을 끊지 말고, 하이볼처럼 빠르게 나오는 음료로 첫 라운드를 맞춘다. 공간과 대화에 적응한 뒤 다음 잔을 천천히 골라도 늦지 않다.
잔을 고르는 순서와 컨디션 관리
밤을 길게 가져가려면 잔의 강도를 조절해야 한다. 라거나 필스너 같은 도수 낮은 맥주로 시작해, 톰콜린스나 하이볼처럼 탄산이 있는 칵테일로 발을 딛고, 그다음 위스키 니트나 진 리키 같은 향이 분명한 잔으로 넘어가는 순서가 몸에 부담이 적다. 자연와인을 좋아한다면 산도 높은 화이트로 시작해 라이트 레드, 그다음 오렌지나 펫낫으로 분위기를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중요한 건 음식과 물. 물 한 잔을 잊는 순간 밤이 짧아진다. 바 마다 물잔이 제공되지 않는 곳도 있으니, 요청하는 습관을 들이면 확실히 컨디션이 다르다.
안주는 과하지 않게,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적절히 끼워 넣는다. 치킨 한 마리를 1차에 비우면 이후 칵테일의 섬세함이 무뎌진다. 반대로 배가 너무 고프면 취기가 빨리 오른다. 바에서 나오는 간단한 크래커, 올리브, 치즈, 견과류도 충분히 역할을 한다. 이동 구간 중간에 김밥이나 토스트, 주먹밥을 나눠 먹는 것도 좋다. 새벽 2시 이후에는 라면이나 순대국 같은 진한 음식으로 마무리하면 속이 편하다.
안전과 매너, 심야일수록 신경 쓰는 기본기
밤이 깊어질수록 공간의 결이 섞인다. 흡연이 가능한 루프톱, 스탠딩 위주의 작은 바, 테이블 간격이 넓은 라운지. 각각의 규칙이 있고, 심야에는 종종 느슨해진다. 흡연 구역과 비흡연 구역을 구분하지 않는 손님이 늘어나고, 볼륨이 올라간다. 이런 시간대에 작은 배려가 큰 차이를 만든다. 통로 쪽에 가방을 두지 않고, 카운터에 서서 사진을 길게 찍지 않고, 라스트 오더 직전에 무거운 칵테일을 연달아 주문하지 않는 것. 바텐더와 플로어 스태프 모두 심야에는 회전과 정리, 손님 안전까지 신경 쓸 일이 많다. 간단한 감사 인사와 눈맞춤만으로도 기분 좋은 상호작용이 된다.
이동 중 안전도 빼놓을 수 없다. 택시를 잡을 때는 큰 길로 나가는 것이 기본이다. 앱 호출이 계속 취소된다면 행선지를 인근 대로의 랜드마크로 바꾸고, 탑승 후 목적지를 기사님께 직접 말씀드리는 편이 배차 성공률이 높다. 혼자 이동할 때는 휴대폰 배터리가 변수다. 여분의 배터리를 챙기거나, 이동할 때 10분만이라도 충전할 수 있는 C타입 케이블을 갖고 다니면 결정적인 순간이 편하다. 보조배터리가 없다면 바에서 콘센트가 있는 좌석을 요청해도 된다. 의외로 흔한 요청이라 스태프가 자연스럽게 도와준다.
시간대별 교통 팁, 실제로 도움이 되는 디테일
자정 무렵은 막차와 심야버스가 겹친다. 홍대입구, 강남역, 시청, 고속터미널 같은 거점에서 방면별로 승차 인원이 한꺼번에 몰리기 때문에, 버스가 만석으로 출발하는 경우가 있다. 다음 차를 노리는 대신 승차 정류장을 한두 정거장 앞쪽으로 옮기는 것이 성공률을 올린다. 예를 들어 강남역에서 잠실 방면 심야버스를 타려면 강남역 사거리 대신 교대 방향으로 한 정거장 앞서 올라타면 앉을 확률이 높다.
새벽 1시 30분에서 2시 30분은 택시 공급이 가장 불안정하다. 이 시간대에는 목적지를 구체적인 동으로 적기보다 큰 축을 적는다. 기사님이 꺼리는 구간, 예를 들어 극단적으로 짧은 거리나 막히는 골목은 피하고, 큰 도로까지 이동한 다음 하차 후 걸어 들어가는 편이 낫다. 심야 할증은 이동비를 빠르게 올린다. 을지로에서 합정까지 7킬로 남짓한 구간이 2만 원대 후반에서 3만 원 중반까지 치솟을 때가 있다. 이런 날은 중간에 지하철 환승 허브까지라도 버스나 킥보드, 도보를 섞어 비용을 낮춘다.
새벽 3시 이후에는 상황이 반대로 간다. 승객이 급격히 줄고 도로가 텅 빈다. 택시는 잡히기만 하면 이동이 빠르다. 다만 이 시간대에는 기사님 휴식이 겹치기도 하고, 배차 반경이 넓어 픽업까지 시간이 길다. 콜이 잡히면 위치를 크게 움직이지 말고, 건물 앞 번호 표기나 편의점 간판처럼 시인성이 높은 포인트에서 기다리자. 어두운 골목길에서 자리 옮기다 콜이 취소되는 경우가 잦다.
코스 예시, 서로 다른 밤의 시나리오
아래의 코스는 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번 다듬은 동선이다. 상권 상황은 바뀔 수 있으니, 구체적 상호명 대신 움직임의 리듬과 교통 포인트를 중심으로 읽어 보자.
한강 북측 라운드. 20시 30분, 시청 근처 가벼운 와인바에서 시작한다. 잔 와인으로 1잔, 올리브와 차가운 전채를 곁들인다. 22시, 을지로 골목의 클래식 칵테일 바로 이동. 이 구간은 도보 10분 내외라 걷는 게 낫다. 카운터석에 앉아 마티니나 하이볼로 1잔. 23시 10분, 라스트 오더 전 메뉴를 확인하고 한 잔을 더 가려다가, 다음 코스 웨이팅을 건다. 23시 40분, 청계천을 건너 종로 쪽 펍에 도착. 탄산 맥주로 페이스를 낮추고, 물 한 잔을 곁들여 컨디션을 조절한다. 0시 30분, 홍대입구로 이동한다. 지하철 막차가 가능한 날이면 1호선을 타고 2호선으로 갈아타지만, 막차가 끊긴 날에는 심야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공유한다. 1시, 합정의 스탠딩 바에서 가벼운 하이볼로 마무리. 귀가는 합정역 심야버스 정류장 또는 마포대로에서 택시.
강남축 라운드. 21시, 신사 가로수길에서 버거와 라거로 1차. 22시, 압구정 로데오의 스피키지로 이동. 예약이 안 되면 현장 웨이팅, 대기 시간 동안 근처 바틀샵에서 논알코올 진 토닉을 한 잔으로 목을 적신다. 23시, 클래식 위스키 하이볼로 기어를 올린 뒤, 과하지 않게 1잔에서 멈춘다. 0시, 청담의 라운지 바로 이동. 택시로 10분 내외, 도보는 비효율적이다. 라스트 오더를 1시까지 받는다면, 니트로 향을 확인하고, 마지막 잔은 알코올 도수를 낮춘 칵테일로 정리. 1시 30분, 귀가 동선에 맞춰 삼성역 혹은 강남역으로 방향을 틀어 심야버스 혹은 택시를 잡는다.
성수 - 건대 변주. 20시 30분, 성수의 자연와인 바에서 글라스 두 잔을 나눠 마신다. 성수의 밤은 마감이 빠르니 23시 이전에 다음 코스로 이동. 건대입구로 넘어가면 선택지가 넓다. 펍에서 간단히 안주를 더하고, 라스트 오더 직전 칵테일 바로 이동해 1잔만 깔끔하게. 귀가는 건대입구역 심야버스 정류장 활용. 이 구간은 킥보드 유혹이 크지만, 취기가 올랐다면 과감히 걷는 편이 낫다.
돈 쓰는 순서와 체력 관리, 끝까지 즐기기 위한 현실 감각
바 호핑은 결국 시간과 에너지, 예산의 분배다. 초반에 값비싼 병을 열면 뿌듯하지만, 이후의 선택지를 줄인다. 반대로 끝에 비싼 잔을 남겨두면 피로가 누적되어 섬세한 풍미를 느끼기 어렵다. 저는 보통 두 번째 바에서 가장 신경 쓴 잔을 마시고, 첫 바와 마지막 바는 가벼운 메뉴로 균형을 맞춘다. 예산은 1인 기준으로 6만 원에서 12만 원 사이로 잡는 편이다. 세 바를 돌면 잔 세 개와 안주 하나 또는 둘이 적당하다. 더 마시고 싶다면 한 바에서 시간을 늘리기보다, 물과 식사로 템포를 낮춘 다음 다른 날을 기약하는 것이 체력에도, 기억에도 좋다.
피로는 발에서 시작한다. 오래 걷는 날은 신발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 가죽 구두는 미끄러운 골목에서 위험하고, 굽 높은 신발은 발목을 혹사한다. 4, 5킬로 정도는 걷게 된다는 가정으로 편한 운동화를 추천한다. 의외로 얇은 카디건이나 가벼운 아우터가 도움이 된다. 바의 냉방은 강하고, 이동 중 골목 바람은 체온을 빠르게 떨어뜨린다. 체온이 내려가면 술이 빨리 오른다.
커뮤니케이션과 정보 수집, 현장에서 답 찾기
지도 앱의 평점과 리뷰도 참고가 되지만, 심야에는 라이브 정보가 중요하다. 탐색이 일상이 된 단골 바가 있다면 바텐더에게 물어보자. 오늘 요일에 어디가 열려 있는지, 새로 뜬 바가 어디인지, 웨이팅이 길지 않은 집이 어디인지. 내부자 정보는 의외로 개방적이다. 서로의 업계를 돕는 문화가 있어, 친절하게 좋은 방향을 알려준다. 라스트 오더가 임박했을 때도, 다음 집으로 갈 동선을 말하면 호출해 주거나 예약을 연결해 주는 경우가 있다.
일행 간 소통도 디테일이 좌우한다. 취향이 다른 인원이 섞이면, 한 바에서 모두 만족하기 어렵다. 첫 잔은 모두 가벼운 것으로 통일하고, 두 번째 잔부터 각자 취향을 탄다. 메뉴를 고를 때는 과욕을 피한다. 하이볼과 시그니처, 에일과 사워, 와인과 샴페인을 한꺼번에 돌리면 입이 산만해지고 대화가 분절된다. 잔을 비우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이동을 미루고, 대신 바의 분위기를 더 즐긴다. 여기서 성격이 갈린다. 잔을 남기는 사람을 재촉하면 밤의 템포가 깨지고, 무리하게 이사하면 취기가 솟는다.
비 오는 날과 겨울철, 변수 대응
비 오는 밤은 택시 수급이 최악이다. 하지만 바의 컨디션은 오히려 좋아지는 경우가 있다. 웨이팅이 줄고 소음이 낮아진다. 이동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우산을 대여해 주는 바가 있고, 대형 편의점에서 우비를 파는 곳이 많다. 젖은 바닥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매트가 깔린 입구로 드나드는 것이 안전하다. 비가 오는 날은 첫 바와 두 번째 바의 거리를 300미터 이내로 줄인다. 마지막 이동만 큰 길로 잡고, 심야버스나 지하철을 우선 고려한다.
겨울에는 공기가 맑고 야경이 좋다. 루프톱이나 창가석에서 마시는 니트 위스키가 빛난다. 다만 체온 유지가 급선무라, 야외 이동을 최소화해야 한다. 코트 안쪽 주머니에 핫팩을 넣어 두면 손의 감각이 살아 있고, 잔의 온도를 더 정확히 느낄 수 있다. 입구 대기줄이 길면 체력이 급격히 소모된다. 이런 날은 예약이 가능한 바를 중심으로 코스를 구성하고, 웨이팅이 긴 집을 마지막 순서에 넣지 않는다.
초보와 베테랑, 서로 다른 전략
바 호핑을 처음 시도하는 사람이라면, 잔수와 이동 횟수를 줄이는 게 현명하다. 두 곳만 가도 충분히 재미있다. 첫 바에서 한 시간 반, 두 번째 바에서 한 시간. 중간 이동은 15분 내외. 라스트 오더를 확실히 지키고, 식사와 물을 충분히 챙긴다. 심야 교통은 경험치가 쌓이면 감이 생긴다. 어느 정류장에서 버스가 자주 서는지, 택시가 어느 도로에서 잘 잡히는지, 어떤 시간대에 앱 호출이 유리한지.
베테랑에게는 새로운 상권 탐색이 즐겁다. 다만 익숙한 노하우가 모든 동네에 통하지는 않는다. 을지로의 골목 호흡을 강남에 적용하면 엇박자가 나고, 홍대의 탄력성을 연희동에 기대하면 실망이 온다. 새 상권에서는 오히려 바의 밀도를 늘리는 대신, 각각의 집에서 시간을 길게 쓰는 전략이 안전하다. 동선을 아낀 만큼 대화와 맛에 집중할 수 있다.
마지막 잔을 기억에 남기는 법
밤의 기억은 마지막 잔의 여운으로 묶인다. 성급하게 마무리하면 모든 잔이 비슷하게 흐려지고, 천천히 정리하면 각각의 개성이 선명해진다. 마지막 잔은 과하지 않게, 향이 단정하고 도수가 중간인 것이 좋다. 하이볼의 얼음을 작게 요청하거나, 레몬 필을 얇게 트는 취향을 바텐더에게 말해도 좋다. 음악이 조금 낮은 자리, 통로와 멀고 대화가 자연스러운 테이블을 요청한다. 바가 조용해지는 시간에는 바텐더와 짧은 대화를 나눠 본다. 오늘의 추천, 다음 번에 오면 마셔 볼 잔, 새로 입고된 병. 이 대화가 다음 라운드의 힌트가 된다.
체크리스트, 실패 확률을 낮추는 간단한 준비물
보조배터리와 짧은 충전 케이블 얇은 아우터 또는 머플러 소형 우산, 비 예보가 있는 날에는 우비 간단한 탄수화물 스낵, 물 교통카드 잔액 확인, 앱 결제 수단 이중화
심야 교통과 바 호핑의 균형감각
서울의 밤은 교통이 만든다. 막차가 끊기는 시간, 심야버스의 방향, 택시의 무드. 그 사이에서 우리는 잔을 고르고, 동선을 바꾸고, 사람과 대화를 쌓는다. 완벽한 계획은 없다. 다만 작은 판단들이 쌓여 좋은 밤을 만든다. 라스트 오더 5분을 놓치지 않는 집요함, 사람 많은 도로를 향해 한 블록 더 걷는 인내, 물 한 잔을 잊지 않는 실용감각. 이 정도면 충분하다.
여러 번 겪어 보면 자연스럽게 체득된다. 어느 새벽,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이었다. 합정에서 마지막 하이볼을 마시고 마포대로로 걸어 나왔는데, 심야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왔다. 버스 창에 비친 네온과 유리잔의 물결이 아직도 선명하다. 집에 도착해 신발을 벗었을 때, 발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평온했다. 그것이면 족하다. 밤은 이렇게 익어 간다.